간쑤성(甘肃省) 자위관(嘉峪关)을 가다
황톳빛 도시를 떠나는 날 아침, 반가운 비가 내린다. 한국처럼 시원하게 내리붓는 비가 아니라 분무기로 가볍고 부드럽게 홑뿌리는 비다. 우산 쓸 필요도 없다. 그마저도 도로를 다 적시지 못하고 이내 그친다. 연강수량 61.4mm(2024). 한국 1414.6mm(2024)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이 적은 양의 비가 사막과 황무지로 둘러싸인 이 외진 곳에 자그마한 기적을 만들었다.
어쩜 이런 곳에 도시가 있을까!
인구수 31.51만(2024), 총 도시면적 1,224 제곱킬로미터, 시(市) 바로 아래 행정 단위인 현(县) 하나 없이 관할 거리(街道)만 있는 작은 도시. 이 작은 도시에
천하제일웅관
(天下第一雄关)
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있으니 바로 만리장성의 서쪽 시작, 자위관관성 덕분이다. 여기서 시작한 만리장성은 저 멀리 동쪽 끝, 허베이성(河北省) 타이황다오시(秦皇岛市) 바다 위까지 뻗은 산하이관(山海关)에서 끝난다.
명나라 홍무 5년, 1372년부터 건립하기 시작했다는 자위관관성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세계의 끝이요 시작이었다. 자위관을 나가면 익숙한 문명세계가 끝나고 물과 한자가 없는 곳, 황무지, 사막, 각종 이민족의 위협 등이 시작된다. 미지의 세계, 서역(지금의 신장)의 시작이기도 하다.
현재는 웅장한 자위관관성(嘉峪关关城), 흑산(黑山)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현벽장성(悬壁长城), 장성의 서쪽 시작 장성제일돈(长城第一墩), 세 곳을 하나로 묶어 '자위관문물경구(嘉峪关文物景区)'로 운영 중이며, 셔틀을 타고 하루 안에 다 둘러볼 수 있다.
군사적 필요에 의해 지은 곳이지만,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서정적인 풍경이 되었다.
예전에는 머나먼 변방을 지키느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던 둔전제 군인들이 이 도시를 이루었고 지금은 자위관시의 철강과 신에너지 산업을 위해 이주한 사람들이 이 도시를 이어가고 있다.
이 작은 도시에는 나름 공원도 세 개나 있고, 꽤 큰 시장도 있다. 관광업, 철강업 등 산업이 발달해 소득은 높은 편이지만 인구가 적고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탓인지 유난히 보세 옷가게들과 식당이 많이 보인다.
이 도시에 살면 어떨까. 대학교도 없고 나이키, 유니클로 같은 대형브랜드 가게도 없다. (스타벅스는 딱 한 군데 있다.) 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아는 사람이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다. 내가 모르는 거리는 없다. 양꼬치가 신선하고 맛있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겨울에는 황사바람 불어 외출이 어렵지만 여름에는 시원하다. 짧은 가을은 황홀하게 아름답다. 황무지와 바위산, 사막에 둘러싸여 옹기종기 모여사는 이 작은 도시에 살면 어떨까.
<대문사진 출처>
-자위관시 위성사진, 자위관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