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은 슬럼가에서 16세 소년이 친부살인의 피고로 법정에 서게 되고 12인의 배심원들이 유죄든 무죄든 전원 일치된 결론이 내려져 판사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주요 골자이다. 유죄로 정해지면 소년은 사형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극 초반에는 한 명의 배심원만이 유죄를 반대하고 증거들을 토대로 11명의 배심원들은 유죄를 너무도 당연시 여기며 무더위에 지치고 오히려 질질 끄는 시간이 아까워 상황이 빨리 종료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유죄를 의심하는 1명의 배심원은 증거의 신뢰성을 의심하며 다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들이 옳다 주장하며 유죄를 확신하다. 과연 증거는 객관적 근거를 지니고 있는가?
이 연극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맞고 그 반대 상황은 결코 옳을 수 없음을 주장하며 점차 고조되고 무대 위에서 단 한 명도 내려오지 않고 끝까지 논쟁을 벌이며 연극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나 점차 각자의 편견과 증거의 오류가 드러나면서 배심원들의 의견은 무죄로 결론이 내려진다.
극 중에서 한 배심원은 지난날 아들의 반항에 이 사건이 자신에게 도전하는 아들처럼 감정이입 되어 유죄 판결을 당연시 여긴다. 또 증인으로 나선 할머니는 관심도 가져주지 않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황이 좋아 증인까지 나서는 오류. 과연 할머니는 증인으로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인가?
또 다른 무리는 그저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 없이 다수를 따라가는 오류. 자신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이 싫어서 무조건 반대하는 아집! 이 연극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고 다양하게 편견을 가지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 여러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습관처럼 하는 대사가 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남들이 확정적으로 내뱉는 절대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용기 있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힘! 이것은 자기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저 대중에 편승하거나 힘 있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내가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을 바라보는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남들이 좋아한다고 나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바라보는 예술과 어떤 교감을 나누고자 하는지 그것부터 체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