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선반

-맛난 언어들로 채워지는 선반

by Naesu

2022


한동안 미니멀하게 살고 싶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두고 정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모든 것들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런데 매일 요리를 하다 보니 갖가지 양념류는 줄이기가 힘들었다. 싱크대 안쪽에 모두 넣었다. 외관상 깨끗해 보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음식을 만들 때마다 찾고 넣기를 반복하다 보니 불편함이 컸다.

생각 끝에 작은 선반을 매고 자주 쓰는 양념들은 꺼내 놓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나무 선반을 샀다. 기름칠을 해서 말리고 남편 도움을 받아 공을 들여가며 반듯하게 달았다. 가는소금, 굵은소금, 설탕, 고춧가루, 참기름 등등을 올려놓고 며칠 써보았다. 참 편안하다. 정리된 상태로 유지되고 남은 양도 한눈에 보여 볼수록 흐뭇했다.

작은 선반이 내게 주는 편리함을 기특해하며, 딸아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득, 내 마음에도 선반을 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쓰는 말들을 잘 채워 놓은 작은 선반’ 혹은 ‘자주 쓰고 싶은 사랑의 언어들’을 예쁘게 정리해 놓고 바로바로 꺼낼 수 있게 만든 마음의 선반!

그런 생각을 하니 나 혼자 괜스레 마음이 넉넉해졌다. 부자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설레었다. 우리 딸에게 해줄 설탕처럼 달콤한 단어와 가끔씩 세상이 못마땅한 남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고춧가루 같은 말, 마지막에 넣는 참기름 한 방울처럼 고소함을 더해주는 말, 그리고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고, 맛도 내고, 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소금 같은 언어를 찾아서 마음의 선반에 올려두면 참 유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보다. 작은 선반에 소금은 가는 거, 굵은 거, 비트 소금까지 소금만 세 종류였던 이유는.

초보 주부였던 때, 주부 9단들의 레시피는 거의 암호 수준이었다. 소금 적당량, 참기름 조금, 깨소금은 옵션이면 어찌해야 하는 건지,,,, 소금 반티 스푼, 참기름 1 티스푼, 깨소금은 생략하면 되나? 너무나 어려웠던 그 암호들의 진실은 주부 생활을 5년쯤 하면서 슬슬 풀리다가 20년이 넘으면서 나도 암호 레시피를 작성해도 되는 수준이 되어있었다. 그러려고 계획한 적이 없이 그냥 매일 요리만 했을 뿐인데, 감각적으로 적당함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언어 요리는 어렵다. 큰 아이를 소생시키고자 내가 아는 각종 소금의 언어를 총동원했더니 아이는 생명력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소금에 절여졌다. 막내둥이에게 설탕처럼 달콤한 단어들을 열심히 적용하였더니, 미뢰가 설탕에 중독된 듯 달콤한 언어 아닌 언어를 만나면 삼키지를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물론 늘 실패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성공의 경험들도 있어서 이제는 적절한 범위를 조금은 더 알아 가고 있는 중이지만 언어 요리 레시피 제작까지는 먼 길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오늘도 내가 만나는 세상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더 ‘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갈 소중한 재료가 될 언어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마음의 선반에 잘 올려놓는 중이다. 그래서였나보다. 새로 시작되는 봄에 이도 저도 아니고 글쓰기 교실에 내가 있는 이유는. 맛있어지는 세상을 향한 소망으로 가슴이 부푼다. 봄 햇살이 내 마음의 선반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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