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격표에 없는 가치를 찾는 분들께
친구의 아파트는 정겹다. 여고 시절 우리가 살았던 동네에 재개발되어 지어진 덕분이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을 더듬어 보게 된다. 흔치 않게 남아있는 그 시절의 풍경이라도 만날 때면 보물 찾기에 성공한 듯 반갑게 다가서게 된다.
여고를 졸업하면서 줄곧 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는 여전히 바쁘다. 우리 집 막내에게 물려줄 옷을 한 보따리 받으며 서둘러 헤어지는 중이었다. 네가 사는 곳이 참 좋다고 했다. 친구는 그렇지 않단다. 주변의 모든 아파트가 다 올랐단다. 자기가 사는 곳만 빼놓고.
3년 전에 친구가 이사 가려던 아파트는 3억이 올랐는데 계속 살고 있는 이곳은 딱 1억이 올랐단다. 웃는 얼굴로 친구와 헤어졌다. 나의 쓸쓸함을 들켰을까? 우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친구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채 집에 계셨다. 내가 놀러 가면 공연히 마당을 돌보셨다. 그도 아니면 예정에도 없던 산책을 나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헤아릴 수 없었던 친구 아버지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지금 내 남편을 보면서.
혹여나는 대학생이 되었다고 친구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있으려나 처음으로 되짚어 본다. 답이 될만한 기억을 찾지는 못한다. 공부에 썩 취미가 없는 친구였다. 그렇다 해도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으라 짐작만 해본다. 그런 친구의 마음까지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애써 검색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3년 전보다 3천만 원가량이 떨어져 있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 채 나는 땅 밑으로 꺼져 들어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우리 막내가 사달라던 뽀글이 잠바가 나를 잡아 올려 주었다. 아이가 원하는 하얀 색상, 거기다 검은색 주머니가 달려있다. 간결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었다. 내일 당장 학교에 입고 간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 내 몸을 열심히 움직인다. 아이 옷장을 정리한다. 옷장 깊은 곳에서 겨울잠을 자던 옷들을 펼쳐보니 턱없이 작게 느껴진다. 너무 커서 입히지 못했던 하늘색 티셔츠가 맞춤해 보였을 때 깨달았다. 내 눈이 내 아이를 온전히 ‘기준’ 삼고 있다는 것을.
국민학교 3학년의 나는 오른팔을 높이 뻗어 올리며 “기준!”을 외친다. 가을 운동회 매스 게임을 연습하고 있었다. 키가 작아 맨 앞줄에 서 있던 나는 전교생의 기준점이 되었다. 나를 중심으로 양팔 간격으로 넓어졌다가 반 팔 간격으로 좁혀가며 커다란 대형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중심이 잘 못 잡히면 구도가 안 맞을 터, 체육 선생님께서는 교단 위로 올라가 바라보시고 내려와 또다시 보고를 거듭하신다. 시간이 한없이 늘어져 흐르고 8월 말의 햇살은 뜨거웠다. 한참 뒤에야 선생님은 나를 최종 기준으로 삼으셨다.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시는 체육 선생님의 진중함을 흉내 내어 본다. 요리조리 살펴 가며 내 삶의 기준을 세워본다. 예전에 한 2년 정도, 가까이 벗하며 살았던 이웃의 행복론이 생각난다. ‘먹고 싶을 때 치킨 한 마리를 흔쾌히 시켜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며 웃었다. 그 얼굴이 얼마나 빛나던 지 오래 두고 기억에 남는다.
행복의 기준을 무엇에 둘까 부지런히 내 안을 탐색하는데,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내 눈에 보여진대로다. 컽옷답게 살짝쿵 여유를 주며 딱 맞았다. 보기 좋아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어쩜 그리 맞춤하게 예쁜지 고맙다고 전했다. ‘너네 늦둥이가 아니면 아깝지만 버려질 옷들인데 입어줘서 내가 고맙지’라고 답해 왔다. 문자 사이사이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충전되어 있었다.
책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놓고 알림장을 열었다. 일상적인 알림의 내용에 덧붙여진 3번이 줌인으로 확대된다. 전두엽을 가득 채운다. ‘감사란, 고마움을 느끼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반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기대’란 녀석이 나보다 앞서 알림장을 펴보고 있었다. ‘자신감이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음, 늘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기 자신을 칭찬해 주는 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메마른 공기에 촉촉한 감동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신다. 그저 전하고 싶은 소중한 가치들을 알림장 3번에 적어주신다. 평가나 기준을 들이댈 수 없는 선생님의 진심이 거기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막내의 담임 선생님께 빚을 진다. 진실된 가치를 알아보는 일을 내 삶의 중심에 두기로 한다. 막내를 통해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미혼의 유쾌한 선생님이라는 것뿐. ‘근데 선생님 저한테도 스승이세요. 선생님이 써주신 알림장 3번을 통해서 제 꿈을 발견합니다. 저는 시세표나 상품 태그에 붙은 가격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아니 결코 알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고 발견해가는 사람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나 혼자서 감사 인사를 드린다.
내 정체성을 명명해 보고자 한다. 가치 수집가라고 해야 하나? 가치 보존 활동가, 가치 운동가 이건 뭔가 외치고 다니는 느낌이라서 좀 그렇다. 가치 연구가가 좋겠다. 오늘부터 가치 연구가 1 일차다. 이렇게 나는 내가 아는 한, 세계 최초의 ‘가치 연구가’가 된다.
먼지 앉은 듯 시무룩하던 일상이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겨우내 먹어 지루했던 김장김치를 살짝 볶아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 묵은지의 진가를 알아본 스스로를 칭찬해 준다. 초보 가치 연구가로서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려본다. 나는 맨 앞 줄에 자리하기에 ‘딱 맞는 아이’였다. 모든 학생이 다 똑같은 키였으면 선생님이 줄 세우기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나의 ‘아담함’이 질서 유지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엉뚱하고 발랄한 생각들이 겨드랑이와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까르르 웃음이 터질 듯하다. 양볼이 하늘을 향해 부푼다. 호흡조차 가뿐해진다.
가치를 중심으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청량하다. 지음 받은 그대로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돋을볕의 상쾌한 에너지, 그 힘을 받아 광합성하는 초록 식물들, 수분을 더해 주는 빗방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하나하나 얼마나 귀한지, 이제껏 나의 기준은 나에게 당장 유익한 것만 바랬었나 보다.
24평 우리 집은 우리 가족이 복작복작 정답게 살기에 제격이다. 불과 1년 전까지 살던 널찍한 집에서는 사춘기를 통과해내는 큰딸아이의 얼굴 보기가 힘들었었다. 지금 이 집은 우리 막내가 사춘기가 되어도 자주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화장실, 거실,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책상이 딱 하나씩인 옹기종기 주거시설이다.
‘치킨 행복론’을 이야기하던 예전의 이웃, 문자 사이사이 따스함을 충전해 보내는 내 친구 그리고 알림장 3번을 통해 소중한 가치를 전하고 있는 선생님을 통해 나의 눈이 정화된다. 마음의 기준을 조율하게 된다.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허다한 보물들이 찾아진다. ‘가치’들이 보내오는 다양한 신호와 연결된다. 유쾌하고도 신비롭다. 살아가는 일이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