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에 치즈를 넣어보시겠습니까?

by 온난한

세상은 참 괴상하다.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싸우고 서로의 마음을 할퀴기 일쑤이며, 어떤 사람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안달을 낸다. 때로 우리는 다른 이의 선심과 인정을 악의로 오해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자주 모습을 자꾸고 변하는 세계는 물렁하기 그지 없다.

엄마는 나에게 친절과 다정을 베푸는 것이 이기느라 가르쳤다.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선심과 인정을 무기처럼 두르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이곳에서 그리 노력하는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이기지도 쟁취하지도 베풀지도 못하는 어중간하고 슬픈 삶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 괴상한 세상에서 내가 바꿔 든 무기는 바로 ‘괴식’. 나를 달래고 벌 주고, 또 상을 내리는 나만의 유일한 수단. 그것은 바로 음식이다.


왜 하필 괴식이냐 한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에게 지지와 환대를 받을 만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양가, 맛, 칼로리 같은 건 상관 없다. 내 감정이 찾는 재료, 내 기분이 원하는 맛, 내 고단함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조리법. 오직 나만을 위해 다듬고 자르고 깎고 조리된 음식이기에 ‘괴식’이라 칭하고자 한다.



요리법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해 이번에는 사사로운 입맛 일지 혹은 기록이라 적고 싶다. 누구나에게나 그렇듯 부모님은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축을 만들어줬는데 음식 취향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뭐든 가리지 않고 잘 씹고 음미하고 곧내 삼키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 취향은 형태와 모양이 뚜렷히 잡힌 편이다. 그것도 꽤 단단하게 굳혀진 편인데 이따금 직장 동료들과 잘 먹는 음식과 그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때때로 비난을 듣는 편이다.


국물 없이 건져낸 라면 면발에 마요네즈를 넣는 게 어때서, 날계란 밥이 어때서, 브로콜리를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게 어때서. 미역국에 치즈를 넣어먹는 게 어때서.


그러한 모든 비난에도 난 꿋꿋하다. 난 나의 취향을 사랑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퇴근할 때면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 안방 한구석에 크기와 두께에 따라 잘 나열된 요리책들. 어린 내가 졸린 눈을 훔치며 안방 문을 열고 그곳엔 코끝에 안경을 걸친 엄마가 있다. 형광펜을 들고서 책장을 하나씩 쓸어내리던 엄마. 엄마는 가족들이 잠든 밤에 요리책을 한 장씩 넘겼다.


그럼에도 엄마의 요리 공부는 이론에 충실하지 못한 편이었다. 나의 취향과 입맛은 거기서 비롯되었을 테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라면 면발을 계란노른자에 찍어먹기를 권유하고 고기쌈에 낫또를 넣어 입에 넣어주었다.

계란물에 면발 찍어먹기는 요리책의 스키야키에서, 고기쌈에 낫또를 넣어보는 것은 후토마끼에서 엄마에게 영감을 주었다. (어떻게 미역국에 치즈를 넣어먹게 되었는지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는 머리만 긁적였다. 내 언니, 큰이모도 그렇게 먹던데…? 하지만 의외로 찾아보면 넣어 먹는 사람이 있긴 있다!)

엄마는 꽤나 도전적이었고 덕분에 나는 마니악한 입맛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지금의 내 나이에 시집 온 엄마는 살던 동네와 거리가 있는 영 낯선 곳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면 금방 식당과 가게가 닫는 작은 동네라 장보기도 쉽지 않았다. 이제 기고 걷는 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데 영 녹록치 않았다. 엄마는 시내를 오가며 책장에 요리책을 채워넣었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운전 면허를 땄다.


나의 음식 취향과 입맛은 엄마가 할애한 만큼의 사랑이다. 식구들에게 더 맛있고 건강한 끼니를 마련해주고픈 마음이 지속되어 만들어진 결산물이다. 그래서 곧장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거다. 당신, 미역국에 치즈 넣어먹어 봤어요?


엄마가 큰 냄비에 수북히 끓인 미역국을 국그릇에 덜고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오늘은 치즈 넣어 먹을 거야? 나의 긍정에 미역국과 함께 내밀던 한 장의 슬라이스 치즈가 오늘따라 더 생각난다. 아 진짜 맛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