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아무나 하나
올봄, 텃밭은 없지만 직접 채소를 길러먹겠다고 화분에 상추, 쑥갓,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깻잎 싹이 나온 걸 보니 아마 작년에 심었던 녀석이 꽃을 피우더니 나 몰래 씨를 뿌린 것 같다.
싹이 나고 잎이 자라는 것을 보며 풍성한 수확을 기대했지만 내 생각만큼 자라주지 않았다.
아빠가 작물에는 비료도 줘야 한다기에 비료도 주고 영양제도 줬지만 제대로 된 땅이 아니라 그런지 성장이 영 시원찮았다.
내가 키운 깻잎이나 상추는 비리 비리하고 병들어 보이는 데다가 크기도 작은데 시장의 채소들은 어쩜 그리 크고 실한 지. 가격도 많이 저렴했다.
초반에는 연한 상추를 수확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나, 점점 잎이 시들고 병충해를 입었는지 누렇게 뜨더니 잘 자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잔뿌리로 땅만 차지하고 있던 깻잎과 상추를 그냥 일찍 거둬들였다.
그게 5월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폭염과 긴 장마로 잎채소들의 가격이 훌쩍 올라버렸다.
자급자족의 효과를 이때 봤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쌈 채소 농사(?)를 접어 아쉽게 됐다.
감자를 오래 놔두면 무섭게 뿔 달린 싹이 나왔었는데, 한 번은 감자가 새끼를 낳듯이 뿌리에 알감자들이 붙어 있는 것을 봤다. 그래서 감자도 심었다.
위로는 잎이 나지만 땅속에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내심 기대하면서 몇 달을 키웠다.
장마 즈음에 감자를 캐야 한다고 해서 상추를 없애면서 땅을 파봤는데 처음 감자를 심었을 때나 비슷한 알감자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엄마 같은 큰 감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믿을 건 방울토마토뿐이다.
씨앗에서 싹이 난 3그루(?)로 이제 열매를 맺은 방울토마토는 지금 시장에서 아주 싼 가격에 팔고 있다.
농사가 이렇게 어렵구나.
내 뜻대로 되지를 않는구나.
내가 오만했구나.
자급자족이 쉬운 게 아니구나.
왜 시장에서 사다 먹는지 알겠구나...
처음 호기로 시작한 채소 농사 몇 달 시작해 보고는 좌절하고 철저히 각성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