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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Aug 10. 2024

복숭아 수확

감사의 복숭아


아주 옛날, 옛날. 엄마가 아빠와 결혼을 한 후.

엄마의 소개로 복숭아 농장을 하는 엄마의 사촌 동생과 아빠의 큰 조카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빠의 큰 조카, 그러니까 나에겐 사촌 언니가 외삼촌인 아빠를 잘 챙겨주셨다. 

택배로 장아찌 등 밑반찬과  김장철엔 김치도 담가 보내주신다. 그런 고마운 언니가 복숭아 수확으로 일손이 부족하다 길래 흔쾌히 도와주러 갔다.

아빠랑 동생은 종종 도와주러 갔었는데 나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금은 복숭아 철이라 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올봄에 오지 못했지만 꽃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복숭아 열매가 맺히면서 이 노란 종이들을 쌌을 텐데 이만큼 자라난 것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노란 봉투 속에 잘 익은 복숭아가 한가득이다.


왼쪽이 덜 익은 복숭아,  오른쪽이 잘 익어 딸 수 있는 복숭아


아기 엉덩이처럼 토실토실하다. 그중에 붉은빛이 많이 도는 복숭아가 익은 것이다.



복숭아는 흠집이 나면 상품성이 떨어지므로 두 손으로 살짝 잡고 당기면 똑 따진다.



높은 곳에 있는 복숭아는 긴 집게로 딴다.

따면서 보면 겉은 아주 깨끗해 보이지만 벌레가 먹거나 골아서 떨어지는 게 꽤 된다. 또 깨끗해 보이지만 조금 물렀거나 작은 흠집이 있는 것도 팔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과일이 너무 비싼데 산지에서 과일은 너무 흔하다. 

말짱해 보이는데 버리는 게 너무 많아 아깝다.



상품성이 없는 복숭아는 따로 모아놨다가 직접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로 한 봉지씩 주는데 인기가 많다고 했다.

못생기고, 낙과여도 맛은 정말 좋다.

버린다는 복숭아들을 모두 다 주워오고 싶었다.




언니네 집 앞에는 텃밭도 있는데 서울과 공기가 달라서인지 땅이 좋아서인지 내가 화분에 심은 농작물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깻잎, 고추, 호박, 참외, 고구마 등등 여러 가지 많이도 심었는데 언니는 따가고 싶은 만큼 다 따가라며 넉넉한 시골 인심을 드러냈다.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아, 나 돈 없지. 

땅도 없지.



이틀째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에 새벽 5시에 일어나 복숭아를 따고 분류했다.



모기와 벌레로 온몸을 무장해야 했고 땀으로 온몸이 범벅되었다.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언니는 요즘 매일 이런 생활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번 왔을 때 최대한 많이 도와주고 싶었다.





언니는 더우니까 일찍 올라가라고 했지만 일손이 부족한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냥 갈 수 없었다.

오늘 수확분을 분류, 정리하고 트럭에 싣는 작업을 모두 마친 후 씻지도 못하고 바로 출발했다. 

차 안에는 언니가 실어준 여러 가지 농작물과 복숭아가 가득했다.



오늘 따고 받아온 최상품은 아니지만, 조금 흠집 있는 복숭아들을 분류해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무조건 나눠주기 전에 우선 정보를 알아야 했다.

다른 과일과는 다르게 복숭아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기생충에서 배우 이정은이 연기한 집사도 꽤 심한 복숭아 알레르기였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 복숭아 농사를 짓는 언니도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수확할 때는 알레르기 약을 먹고, 털에 닿지 않게 온몸을 꼼꼼히 무장한다. 그동안 그런 몸으로 복숭아 농사를 여전히 짓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할밖에.


알레르기 여부가 통과된(?) 이웃들에게 동생과 땀 냄새 풀풀 풍기며 직접 방문 배달했다.

내가 키운 것은 아니지만 직접 산지에서 따와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이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은 뭘까.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언니가 우리에게 주었던 따뜻한 그 마음이 우리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전달되었기를.


복숭아 한철.

복숭아 많이 먹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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