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 남을 수 있었는가?
말레이시아 쿠알라품푸르 페트로나스 타워가 보이는 콘도에서 나는 혼자서 살고 있었다.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가족들을 모두 한국으로 떠났고, 나는 밤새도록 치킨 매장을 운영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더위와 건조한 바람이 계속되는 가을, 갑자기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 숨을 쉬어야 한다."
온몸의 열은 40도가 넘가고 있었고, 나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이불을 흥건이 적시게 되었다.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고 팔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계속 열이 나고 몸의 수분은 계속 빠져들며 혼미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또 자고 며칠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온몸에 빨간 점은 퍼졌고 몸의 땀냄새와 침대에 스며든 땀냄새는 방안에 가득차고 숨쉬기도 힘들정도가 되었다.
배가 고프지만 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고 목이 마르지만 물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한 줌의 음식과 시원한 물을 마신게 며칠이 되었다.
불과 10미터도 안되는 곳에 있는 정수기까지 걸어갈 힘이 없었다.
무슨 병인지, 온 몸에 붉은 점이 생겼고 구토와 어지러움, 그리고 탈수로 인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지난 과거가 생각이 나고, 어머님 그리고 아버지가 떠올랐으며 행복했던 시간들이 머리속을 지나갔다. 이대로 계속 잠을 자게 되면 영원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왜 나는 이렇게 죽어가는가?
소중한 가족들이 떠났고, 나는 혼자가 되었으며,
내가 운영하는 사업은 임대료를 내지 못해 어렵게 되었다.
탐욕, 과욕이였다.
남들은 한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것도 어려운데,
나는 무려 7개의 매장을 동시에 오픈 했다.
가볍게 시작할 거라 생각했던 빙수 매장은 3천만원의 투자가 될거라고 했지만 7천만원이 넘게 투자가 되었고
운영만 맡게 될 것이라는 테마파크 사업은 8억이 넘게 투자가 되었다.
그리고 사업이 잘된다고 판단되면서, 화교들의 투자를 받았다.
화교들은 사업권 양도를 요구 했다.
마피아, 삼합회 협박, 납치가 계속 되고, 결국 소송이 진행되었다.
납치를 당해서 손가락을 자르려는 이들에게 오히려 당당하게 협박을 했다.
" 차라리 날 죽여야지, 안그러면 너희들은 살기 힘들 것이다"라며 경찰청장과 총리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독한 소송에 대해서,
나는 말레이시아인 변호사를 고용했다.
"어떻게 만들어 줄까? 지연시킬까? 아니면 승소하게 해줄까?"
라며 이슬람 율법을 이야기 하며, 말레이인의 소송 전략을 이야기 해주었다.
끊임없이 지연하고, 정리가 되지 않는 변호사에게 계속 말려갔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출국을 할 수 없으며,
자산과 계좌는 동결된다.
말레이 변호사은 변호사비가 부족하면 지분을 주라고 하며 또 다른 협박을 요청했다.
결국 중국계 화교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는 매우 깔끔하게 변호사 비용, 절차 등을 안내해주었다.
매출이 줄어들자, 한국인 사업가를 만나 투자유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한국인은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서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최초 수익의 15%를 요구하고, 바로 매출의 15%를 요구하는 것으로 최종 계약 내용을 바꾸었다.
결국 가장 현금 흐름이 많은 테마파크를 접게 되었다.
그리고 연달아서 하나씩 접게 되는 매장
결국 테마파크> 키즈카페> 치킨점1> 치킨점2. 빙수점> 순으로 접게 되며
마지막 남은 치킨 매장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버티고 버텨 매장 하나를 키워서 매각하고 그리고 컨설팅으로 집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