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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23. 2021

이혼.  알을 깨고 나오다.

더 이상의 온실 속 화초는 그만.

스물한 살.

연애경험도 없던 내게 그 사람이 다가왔다.

사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남자라는 존재에 대한 불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엄마 말 잘 듣는 초등학생 같았던 내게,

그 사람이 다가왔다.


내게는 너무나 무섭고 어려웠던 존재, 우리 엄마.

나의 교육을 위해 인생을 바치신,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부채의식을 내게 주셨던 우리 엄마.

그 사람은 우리 엄마가 좋아할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던 큰 딸이었다.

엄마가 만족할만한 사람과 연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귀고 3개월 만에 양가부모님의 허락 하에 우리는 교제를 시작했고 나름 예쁜 연애를 해나갔다.


연애기간이 길어지자 여자로서 연애기간이 긴 것은 혼삿길에 지장이 생긴다며, 엄마는 결혼을 압박했고 우리는 결혼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둘 다 미성숙한 상태였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 모든 것이 우리만의 가정을 갖기엔 부족한 상태였다.


남편도 그랬다.

아니, 더 심했다.

너무나 귀하고 잘난 장남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이간질을 시작하셨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아이를 가지면, 조금은 그분의 장난질이 덜해지실까 싶었다.

아이를 가졌고,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나는 그분에게,

'내 것인 내 귀한 손주의 사이를 막는 나쁜 년'일뿐이었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꼭두각시였다.

지옥과도 같은 삶은, 해마다 점점 심해졌고

나는 결국 집에서 자살시도를 하였다.

정신이 깬 후,

무작정 집을 나왔다.


하루라도 살아있고 싶었다.

아이에게, 죽은 엄마보다는 살아있는 엄마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하루도 더 살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나는 그렇게 이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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