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알을 깨고 나오다.
더 이상의 온실 속 화초는 그만.
스물한 살.
연애경험도 없던 내게 그 사람이 다가왔다.
사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남자라는 존재에 대한 불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엄마 말 잘 듣는 초등학생 같았던 내게,
그 사람이 다가왔다.
내게는 너무나 무섭고 어려웠던 존재, 우리 엄마.
나의 교육을 위해 인생을 바치신,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부채의식을 내게 주셨던 우리 엄마.
그 사람은 우리 엄마가 좋아할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던 큰 딸이었다.
엄마가 만족할만한 사람과 연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귀고 3개월 만에 양가부모님의 허락 하에 우리는 교제를 시작했고 나름 예쁜 연애를 해나갔다.
연애기간이 길어지자 여자로서 연애기간이 긴 것은 혼삿길에 지장이 생긴다며, 엄마는 결혼을 압박했고 우리는 결혼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둘 다 미성숙한 상태였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 모든 것이 우리만의 가정을 갖기엔 부족한 상태였다.
남편도 그랬다.
아니, 더 심했다.
너무나 귀하고 잘난 장남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이간질을 시작하셨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아이를 가지면, 조금은 그분의 장난질이 덜해지실까 싶었다.
아이를 가졌고,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나는 그분에게,
'내 것인 내 귀한 손주의 사이를 막는 나쁜 년'일뿐이었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꼭두각시였다.
지옥과도 같은 삶은, 해마다 점점 심해졌고
나는 결국 집에서 자살시도를 하였다.
정신이 깬 후,
무작정 집을 나왔다.
하루라도 살아있고 싶었다.
아이에게, 죽은 엄마보다는 살아있는 엄마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하루도 더 살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나는 그렇게 이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