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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23. 2021

일상이지만 일상이 아닌 경험들

새로운 삶


남편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밤에 나가는 것도, 유흥시설에 가는 것도, 모임이나 단체에 나가는 것도 싫어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집 위치가 노출되는 택시나 대리기사님을 부르는 것도 금지였다.

결벽증이 있었기에, 내가 봉사활동을 가는 것도 금지였고 봉사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것은 더더욱이 극렬히 반대했다.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꼭 해야 하는 특별한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그런 행동들을 하지 않았다.


이혼을 한 후, 그 모든 것에 대한 고삐가 풀렸다.

그동안 남편이 하지 못하게 했던 것들을 전부 다 하고 싶어 졌다.

봉사활동도 계속 나갔고, 더러운 것들을 마음껏 만지고 치웠다.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고,

대리기사님을 불러보기도 했다.

밤에 택시 타는 것도 해보았고,

이태원 클럽도 가보았다.

혼자 바에 앉아 위스키도 먹어보았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모임에서 단체로 여행도 가보았다.

(아직 노래방은 가보지 못했다)


이런 일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했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신선하고 신기했다.

이런 작은 일상들이 너무나 감사했다.

물론 내가 조심해야겠지만 새벽에 택시를 탄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건 아니었고, 친구들과 밤늦게 술을 먹는다고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퇴근이 알림으로 뜰 때의 불안감이 사라진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좋고 비싼 집이 어도,

매일 밤마다 남편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왔다는 안내를 받으면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상주 이모님이 나가신 후부터는, 지옥이었다.

아이가 있기에 아무리 치워도 호텔 같은 집을 원하는 남편의 기준을 맞출 수가 없었고, 불만 가득한 그 사람의 욕설은 현관 입구부터 들려왔다.

그 집은 내게 행복한 집이 아니었다.

죽을 것 같았다. 무서웠다.


이제는 차량도착 알림이 밤에 오지 않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했다.

알림이 뜨면 꼭 먹어야 했던 공황장애 약을 이제는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감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 함께 살 때의 술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그렇게 술이 먹고 싶지 않다.

물론 술자리를 즐기는 것은 좋으나,

더 이상의 현실도피가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 나와보니,

내 주변엔 참 좋은 친구들이 많았고,

그 친구들은 내가 무너지지 않게 지금도 잘 곁에서 버텨주고 있다.

사실 너무나 극도로 힘들었을 때는,

이 힘든 것을 친구들에게 나누었을 때 짐이 될까 봐

나누질 못했다.

하지만 나의 자살시도 후,

친구들은 그런 내 선택에 너무 마음 아파했고

그렇게 힘들었던 날 먼저 알아봐 주지 못함에 미안해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뻔했구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내가 나눌 수 있는 마음 깊은 사람에겐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결국 상대에게 짐이 되는 게 아니라

더 큰 상처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이혼 후 1년.

나는 아직도 이 작은 감사함에 하루하루를 신기해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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