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부고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할당량이란
많은 아이엄마들이 그랬듯,
나 또한 아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심했다.
단 한번도 내 편이 되지 않는 친정엄마,
일한다며 항상 밖으로만 도는 아이아빠,
아이 낳은 며느리에게 계속 효도를 강요하고 이간질하는 시부모,
나와 가깝지만 먼 지방에 있는 친동생,
출산으로 인해 망가진 나의 몸,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육아,
이 많은 문제들로 나도 참 힘들었다.
그 힘든 시기에 내게 가장 의지가 되었던 분은
아이를 봐주시던 입주이모님이었다.
당시 내가 번 돈을 이모님 비용으로 다 쓰더라도,
나는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내게는 이모님 뿐이었다.
입주로 계시다 보니 내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아셨고,
나의 친정과 시가와 남편 등 모든 상황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셨기에 그 누구보다 내 마음을 알아주셨다.
아이 아빠 때문에 힘들때
이모님을 붙잡고 매일 울었다.
이모님은 그런 나를 조용히 안아주시고 얘길 들어주시기만 했지만, 나에게는 그런분이 옆에 계신것이 정말 감사했다.
이모님이라도 안 계셨다면, 내가 어떻게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을까.
이모님은 본래 산후조리 이모님이셔서 3개월만 머무시는 조건이었지만, 우리집에는 일년을 계셨다.
3개월은 이모님 스스로가 내리신 규칙이었다.
3개월이 지나면 아이와도 정이 들어 떨어질 때 마음이 너무 힘드셔서 정하신 규칙이라고 하셨다.
이모님에게는 아들이 있으신데,
아드님과 나의 나이가 동갑이었고 나의 털털한 성격또한 이모님의 아들과 비슷해서 이모님이 날 각별하게 생각해주셨다.
일년동안 이모님과 살면서,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마음으로 날 아껴주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근래까지도 종종 이모님과 연락을 해왔지만,
작년부터는 이혼문제로 내 마음이 너무 힘들어 이모님과도 연락을 끊었었다.
이모님께 며칠 전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고,
우리는 오늘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님은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입을 떼셨다.
나와 동갑이던 그 아드님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고 얘기해주셨다.
거의 2년이 되어가지만 이모님께는 어제와 같은 일처럼 생생하신 듯, 얘기하시면서도 눈물이 멈추시지 않았다.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다 귀하지만
특별히 더 잘 맞는 자식이 있다.
이모님께는 그 아들이 그런 아들이었다.
술 담배도 안하며 착실히 살고 직장에서 번 돈을 차곡차곡 저금만 하던 사람이었다.
아들 얘기만 하실때면 내게 미소를 보이시며
"애기엄마 보면 우리아들 생각나요. 참 비슷해요. 잔정도 많고, 참 착해요"
혼자이신 이모님께는,
일을 쉬실 때 종종 만나시는 아들이 유일한 가족이었다.
내가 아이아빠와 이혼을 심각하게 얘기하고 힘든시기를 보내기 시작한 2019년 추석.
이모님의 아드님 또한 2019년 추석의 일주일 전에 급작스러운 비보를 받으셨다고 하셨다.
양력 6월6일에 태어난 환이씨는 2019년 9월 6일에 갑자기 하늘의 별이 되셨다.
나 또한 한 아이의 어미로서,
자식을 먼저 보낸 사람의 아픔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작고 늙고 가녀린 한 여자가 혼자 오롯이 버티기엔 너무나 힘들었을 그 시간을 내가 감히 형언할 수 조차 없다.
이 먹먹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분에게 내가 어떻게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조용히, 삼키시는 울음을 들어드릴 뿐.
왜 이런분들은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오는 것일까.
어디까지 버티라고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다른 말은 드릴게 없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말만 했다.
"이모님,
제가 자살하려고 할 때, 전 귀신이 되어서라도 저희 아들 옆에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귀신으로라도 아들 옆에 있으면서 아들 보기만 하고 지켜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옆에 못 있어주니까.
근데 제가 자살시도 하고 나서 제 친구가 얘기해줬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악귀가 된대요.
제가 아들 옆에 있고싶어도 악귀가 되기때문에 아들한테 해가 되서 아들 곁에 있을 수가 없대요.
이모님도, 스스로 목숨 끊으시면 환이씨 못 만나셔요. 환이씨 보고싶으시겠지만 환이씨 있는 곳에 못 가요. 스스로 끊으면, 같은 곳에 가는게 아니니까 못 만난대요.
그러니까...우리 명줄만큼 살아야 해요.
그래야 위에서 다 같이 만날 수 있어요.
우리 버텨요. 우리 같이 버텨요 이모님.."
삶에 어떠한 희망조차 남아있지 않은 이모님께
내가 더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었다.
오늘 이모님과 함께 환이씨가 묻힌 공원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왔다.
환이씨, 엄마 많이 힘드셔요. 위에서 잘 지켜주세요.
속으로 환이씨에게 말도 걸었다.
대학졸업 후 착실히 일해서 환이씨가 모으셨던 돈은, 가상화폐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모님은 얼만지도 모르지만
급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정신없던 이모님을 이용해
환이씨의 몇몇 친구들이 환이씨의 핸드폰을 가져가서 가상화폐를 모조리 갖고갔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난 후,
이모님은 경찰에 문의했지만,
가상화폐의 성격상 흔적이 남지않아 법적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그것이 이모님께는 한이었다.
돈 한푼 제대로 못 쓰고 간 아들이.
그 돈을 어미로서 지켜내지도 못한 당신이.
지금은 시간이 지나
나 또한 도와드릴 길이 없었다.
먹먹하다.
가슴 한 구석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았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감히 공감할 수 없어, 그냥 조용히 들어드리기만 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살아보니 살아지는 것일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시간이 가는 것일까.
이럴때는 의문이 든다.
신이 있는 것일까.
평생을 착하게 산 사람에게, 마지막 가진것까지 가져가는 신이 과연 있는 것일까.
신이 과연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주는 존재라면,
부모에게 있어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환이씨, 지금 계신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엄마 잘 지켜주세요.
저도 환이씨 어머님 같이 지켜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