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식으로 이야기해 보는 2024 추석_완결

마지막 이야기

by 하나경


차는 댐 바로 옆길로 올라가 능선 하나를 넘고 있다. 고개를 넘자 한때는 마을이었던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수몰된 그 마을은 할아버지의 고향이다. 할아버지는 일정한 나이가 되자 고향을 떠나 옆 마을 수곡리로 터를 옮기셨다. 이후 댐이 생겼고 당신의 고향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크고 깊은 호수를 지나자 이제는 산밖에 보이지 않는다. 녹색 풀들 사이로 봉긋이 솟아오른 무덤들이 많이 보였다. 쨍한 낮이어서 망정이지 밤에 이 길을 지나간다면 무서울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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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산소는 마을 초입에 위치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뙤약볕이 머리를 덮친다. 산 쪽으로 몇 발자국 걸어 올라가니 다 자라지 않은 허리께의 나무들이 묘지를 둘러싸고 있었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평장묘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염천의 묘소는 고요하고 깨끗했다. 너무 조용해서 터를 둘러싼 소나무를 경계로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양지바른 곳에 그늘 없이 줄 서있는 있는 묘비들. 검회색의 돌덩이들 위를 비추고 있는 태양빛이 비현실적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터 옆쪽에 작게 길이 나있었는데 증조할아버지, 할머니의 묘가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길이었다. 증조부를 비롯한 윗대 산소는 평장묘가 아닌 봉분에 그대로 안치되어 있는 듯했다. 고조할아버지, 할머니의 묘는 더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뙤약볕에 다들 지친 터라 작은 샛길을 따라 증조부 묘 앞에서만 예를 갖추기로 했다.


도착한 곳에는 세 개의 묘가 있었는데 증조할아버지의 묘를 두고 양옆에 두 할머니의 묘소가 있는 게 이상했다. 시야에 들어온 비석의 한자들도 궁금해졌다. 아빠와 삼촌들이 성묘 준비를 하는 동안 급하게 번역기 어플을 실행한 후 카메라를 가져다 댔는데 말도 안 되는 한심한 해석만 하길래 이내 폰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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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도 않은 돗자리 위에서 모두가 절을 하려니 자리가 협소하길래 돗자리 옆으로 이동해 잔디 위에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발등에 깁스를 푼지 얼마 되지 않아 어정쩡한 자세였다. 며칠 전에 벌초 작업을 한터라 생생하게 날서있는 뾰족한 잔디의 끝이 무릎과 정강이 살을 차례로 찌른다.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맨살에 감각이 오롯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잔디를 짚은 손바닥도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채 다섯 번도 안 되는 무덤 앞의 성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살아 계셔서 그랬구나. 새삼스러운 자각. 몇 년 뒤엔 해마다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절을 할 것 같았다. 짧은 시간에 예언 같은 상념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나약했던 모습도 떠올랐다 사라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돗자리와 과일들을 주섬주섬 챙긴 후 왔던 샛길을 되돌아가서 평장묘가 있는 터로 이동했다. 할아버지 형제들에게 성묘를 하기 위해서다. 아빠, 삼촌들, 나 그리고 2살 된 사촌 동생이 절을 하고 일어났다. 멀찍이 그늘에서 우리가 절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와 숙모들이 보였다. 일어나서 비석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걸어갔는데 맨 왼쪽에 이미 아빠와 엄마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가묘(묘비에 이름만 새겨져 있는 묘)가 보였다. 부모님이 죽은 후에 묻히게 될 장소였다. 내가 소름 돋는다고 했더니 엄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성묘를 마무리 짓고 더위를 피해 서둘러 차를 타고 아빠의 고향을 벗어났다. 돌아와서도 아빠와 삼촌들은 오랜만의 회포를 푸느라 헤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엄마, 숙모들이 차 밀린다며 떠날 시간이라고 언질을 하고 나서야 형제들의 수다는 마무리되었다. 연휴가 끝날 무렵 올라온 서울 자취방에서 묘한 여운을 간직한 채 여독을 풀고 있을 때였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냐는 물음 후 아빠는 말했다.


“ 가족끼리 성묘를 함께 갈 수 있어 좋았고, 다음에도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당신에게는 성묘가 단순한 의례적 행위가 아니었나 보다. 나는 별말 없이 알겠다고 하고 짧은 인사 후 전화를 끊었다. 며칠 전 염천의 묘소를 잠시 떠올려 본다. 엊그제 있었던 일이었는데도 떠올리려니 꿈같다. 더웠고, 땀이 났고, 절을 하는 자세가 어색했다. 한편으로는 이 경험이 어떤 형태로든 내 안에 남아 있을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나는 바라보기만 하던 방관자에서 벗어나 아빠의 서사에 한 발 더 들어가게 됐다. 가족들과 함께 조상을 기리는 시간을 아빠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아빠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당연히 제사를 지낼 생각을 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도 연결되는 것이 가족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돌아가신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들을 떠올리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두 기억에서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기억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흔적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성묘가 내게 편한 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기억의 매개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듣고 몇십 년 전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오열한 것처럼 매개체라는 것은 그토록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내 방식대로 기억할 것이고, 그것이 성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추석에 있었던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몇 개월 후 설날에 만난 아빠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가까워진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빠는 그때도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당신 성격이 더러워서 술을 마셔야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개인적인 고민들도 나눴고,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가치관이 다른 세대라고만 생각했던 아빠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하다는 건 재밌고 반가운 일이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아빠는 늘 짧은 말과 단호한 태도로 나를 가르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약함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매개가, 이해라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술을 마셔야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아빠는 그 말로 스스로를 변명했지만, 나는 그게 곧 용기라는 걸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하려는 마음. 그 마음을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별일 아니면서도 큰일이다.


곧 아빠 생신이라 오랜만에 전화해서 가족들이 함께 저녁 외식을 할 시간을 정했다. 술을 안 먹은 아빠의 목소리는 어릴 때처럼 무뚝뚝하다. 그래도 이젠 상관없다. 추석 때부터 나눴던 아빠와의 대화가 흙속에 숨겨진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면, 지난 설날과 이번 생일 저녁은 그 뿌리위에 흙을 다시 덮고 물을 주는 시간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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