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먹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다.
거실을 서성인다.
다시, 작업실로 향한다.
캔버스를 한참 응시한다.
또 그렇게 몇십 분이 흐른다.
점 하나를 힘주어 찍어본다.
점이 소리친다.
그림이 밀어낸다.
조심스레 다시 점을 놓아본다.
너무 창백하다.
지운다.
다시 찍는다.
점을 찾는지, 싸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점 하나를 제자리에 놓기 위해
온 감각들이 그 하나에 붙들려 있다.
결국, 붓을 씻는다.
오늘은 그만.
지금은 내가 백기를 들 때다.
포기를 선언하고 나니 오히려 숨이 쉬어진다.
나의 날들은 많다.
작업실 한편에 그림을 조용히 밀어둔다.
점에만 집중하다 보면
모든 감각이 그 하나에 갇혀
온 세상이 된다.
단절된 채, 전체를 잃는다.
어느 날,
들고 있던 붓으로
무심히 ‘툭’하고 찍은 점이
저항 없이 제자리를 찾는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제자리를 찾은 점은
선과 색, 그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그림에 녹아든다.
숨통을 틔우고,
생기를 더해
균형을 이룬다.
가끔,
나 자신이 견디기 힘들 만큼
작고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 모든 이가 저마다의 길을 잘 가고 있는데,
나만 길을 잃은 것 같은,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간 듯한 날들.
그럴 땐,
그림을 밀어두듯
생각도 놓아야 한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려 보자.
언젠가
무심한 붓끝에서 놓인 점 하나가 제자리를 찾아가듯
내 안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를.
소리 없이 스며들어,
나를 이끄는 작은 빛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