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찍힌 점 하나

by 최옥선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먹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다.

거실을 서성인다.

다시, 작업실로 향한다.

캔버스를 한참 응시한다.

또 그렇게 몇십 분이 흐른다.


점 하나를 힘주어 찍어본다.

점이 소리친다.

그림이 밀어낸다.


조심스레 다시 점을 놓아본다.

너무 창백하다.

지운다.

다시 찍는다.

점을 찾는지, 싸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점 하나를 제자리에 놓기 위해

온 감각들이 그 하나에 붙들려 있다.


결국, 붓을 씻는다.

오늘은 그만.

지금은 내가 백기를 들 때다.

포기를 선언하고 나니 오히려 숨이 쉬어진다.

나의 날들은 많다.

작업실 한편에 그림을 조용히 밀어둔다.


점에만 집중하다 보면

모든 감각이 그 하나에 갇혀

온 세상이 된다.

단절된 채, 전체를 잃는다.


어느 날,

들고 있던 붓으로

무심히 ‘툭’하고 찍은 점이

저항 없이 제자리를 찾는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제자리를 찾은 점은

선과 색, 그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그림에 녹아든다.

숨통을 틔우고,

생기를 더해

균형을 이룬다.


가끔,

나 자신이 견디기 힘들 만큼

작고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 모든 이가 저마다의 길을 잘 가고 있는데,

나만 길을 잃은 것 같은,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간 듯한 날들.


그럴 땐,

그림을 밀어두듯

생각도 놓아야 한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려 보자.


언젠가

무심한 붓끝에서 놓인 점 하나가 제자리를 찾아가듯

내 안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를.

소리 없이 스며들어,

나를 이끄는 작은 빛이 되기를.


부유하는 멈춤 2014 Oil on Paper 24.2*3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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