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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Nov 02. 2022

까마귀와 앵무새

캐디와 사람

특별한 저녁 일정이 없는 날이면 나는 정각 오후 6시에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내가 애청하는 라디오 방송이 그 시각에 시작하므로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내게 거는 큐사인이다.

퇴근시간의 방송인만큼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음식 만드는 게 귀찮아 가끔 배달음식을 주문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내 가족들과 나를 위해 그야말로 <집밥>을 준비한다.

쌀 바가지에 쌀을 넣고 물을 틀어 쌀을 씻으면 '촤락 촤락'하는 소리가  바닷가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같아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 심장의 펄떡거림을 따라가는 리듬감 있는 칼질 소리가 몸을 둠칫 거리며 음악에 실린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담당 작가의 그날그날의 따뜻한 상념이 진행자의 입을 통해 세상으로 전파되면 삶의 조미료처럼 나의 하루는 어떤 맛이었는지  헤아려보게 된다. 그 내레이션이 나오는 동안은 물도 잠그고, 칼질도 잠시 멈춘다.

<친애하는 당신에게>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 코너는 마치 내게 편지를 보내온 듯, 때론 나의 안부를 묻고 때론 어떤 현상에 대해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라고 물어 오는 것 같다.

어느 날,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게시물이라며 소개한다. <카페 아르바이트하면서 아저씨들 눈이 없다는 걸 알게 됨>으로 시작되는 글은 나 역시도  전개가 궁금해졌다.

망고 스무디와 블루베리 스무디를 시켜놓고 어떤 게 망고 스무디냐고 묻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곤 어느 것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냐고 묻는다며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색깔로, 컵 안의 내용물로 알 수 있는 것들을 재차 묻고 확인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리라.

손님인 입장에서 묻는 건, 한 번일지 모르지만 그에 답하는 종업원의 입장에서는 수없이 반복되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인 듯했다.


골프장은 주무대가 야외다 보니 많은 동식물과 함께 한다.

꿩, 까치, 다람쥐, 노루, 딱따구리, 동박새, 왜가리, 오리, 청둥오리 , 물닭 등 일반인들에겐 평소에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조류(鳥類)가 많다.

 까마귀는 골프장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른바 <도 선생 까마귀>가 되었다.

사람들이 페어웨이나 그린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노라면 그 틈을 타 까마귀가 나타나 전동카트에 있는 물건들을 집어가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고객들이 간식거리로 챙겨 온 음식물은 물론이고, 게임머니용 돈도 뭉치째 물고 가고, 심지어 지퍼가 달린 파우치도 부리로 열어 그 안에 내용물도 물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대면을 하고 인사를 하면 종종 고객들이 물었다.

"여기도 까마귀 많아요?"

다행히 우리 회사는 자주 출몰하지 않는 편이라 큰 피해는 없었다.

어딘가에 까마귀가 나타나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전체 공지사항으로 어느 코스 몇 번 홀에 까마귀가 나타났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을 각 전동카트의 태블릿으로 전송을 한다.

그와 함께 경기팀 직원들이 새총이나 비비탄으로 까마귀를 위협하여 몰아낸다.

여러모로 까마귀는 불행히도 한국인에게는 천대받는 신세인가 보다.

별다른 이유 없이 흉조로 여겨 녀석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질색하지 않던가!

요즈음은 코로나 영향으로 외국인 골퍼들을 만나기 어렵게 되긴 했지만,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고, 그중 골프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여파로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 오전엔 골프장 고객 30프로 이상이 일본인 골퍼들이었다.

처음 입사한 회사가 대기업의 자회사로 여행과 숙박을 함께 운영해서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인들은   코스에서 까마귀를  만나면 대단히 반가워하고 좋아했다.

그들은 우리와 반대로 까마귀를 길조로 생각한단다.

까마귀를 자주 보지 못했는지 까치와 까마귀를 잘 구분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것에도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인가보다.



라디오 사연의 그 카페 청년의 표현을 빌려 본다.

<캐디 하면서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귀가 없음을 알게 됨!>

분명 캐디인 나는  필요한 설명을 다했는데 , 그들은 재차 묻는다.

골프장에는 까마귀만 아니라 앵무새들도 있다.

알록달록 총천연색도 아니고, 날개도, 부리도 없다.

수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인간 앵무새다.

다소 자조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나는  아예 골퍼들 개개인에게 일일이 따로 설명을 한다.

내가  친절해서가 아니라, 어차피 그들이 내가 말을 해도 모두 듣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가 볼을 칠 상황이 되어야 집중하고 그제야

"좀 전에 뭐라고 했어요?"

또는 "여기 어디 보고 쳐야 돼요?"라고 묻는다.

묻는 입장에서는 고작 말 몇 마디라고 생각할 수 있다.

1년 정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냥 서서 말로 강의를 하는 것인데도 수업이 끝나면 녹초가 됐었다.

하물며 캐디는 하루에 2라운드를 한다고 하면 거의 10시간을 들판에서 무거운 골프채를 들고 걷고 달린다.

육체적인 에너지 소모는 물론이고 말을 하는 데 쓰는 기력 또한 많이 사용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나와 동년배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더 그러한 편이다.

소위 말하는 젊은 세대는 좀 다르다. 그들은 주의 깊게 듣는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디오에선 이렇게 갈음했다.

젊었을 때는 그 순간순간에 집중했다면 나이가 들어선 많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머리 따로 입따로 마음 따로가 되는 거라서 그런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그냥 쉽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중년의 나이테를 달고 산다.

그 위로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궁색한 변명 같기도 하여 편치 않다.

세월과 아까운 청춘을 맞바꾸면서도 그나마 덜 억울했던 건 나이가 들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겪은 경험과 감정을 통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배려'라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품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


세대를 불문하고 상대의 수고스러움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사람을 대면해야만 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앵무새가 되는 일은 없을 텐데...


 내게도 물어볼 일이다.

 나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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