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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Nov 09. 2022

마스크에 가려진 진실 or 진심

캐디와 물건

휴대폰이 알림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얼핏 시간을 보니  우리 지역에 코로나 확진환자 발생수를 알리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 아니 정확히 우리 집 식구들과 내가 코로나 확진을 받고 난 후부터는 그 수치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이 참에 매일 쌓여가는 읽지 않는 문자를 정리나 하려고 보니 예상과 다른 내용이었다.

우리 지역 미세먼지 농도가 '아주 나쁨' 상태이므로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마시고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아침, 저녁으로 공기의 질감이 사각거리기 시작했다.

잘 마른 낙엽이 다른 물성이 닿으면 버석거리며 부서지는 계절이다.

 열렬했던 여름이 물러감을 기뻐할 틈도 없이 늘 이맘때면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미세한 알갱이들이 마른바람을 타고 날아와 세상을 희뿌엿하게 흐려 놓으며 온 대지를 점령한다.

하필이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장 좋은 계절에... 그것들도 아는 게지.. 이 계절이 제일 좋다는 걸...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 녀석들의 존재만으로도 위협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아 소홀한 걸까?

아니면 그 녀석들을 능가하는 강력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말미암은 것일까?

미세먼지와 코로나 바이러스.

모두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이다.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사람을 무력화시킨다는 것과 그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 예방법이라는 것이 둘의 닮은 점이지만 우리가 그들에 맞서자세는 사뭇 다르다.

인간에게 끼친 폐해의 증상이 발현되는 즉시성의 차이 때문일까?

치명적이라서, 아님 전혀 겪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일까?

출입구와 맞닿은 복도의 콘솔 위 자동차 키와 집 키, 식구 수대로  걸려 있는 마스크.

그렇게 쓰라고 권고해도 잘 쓰지 않던 것, 눈에 보이지 않은 소리 없는 적에게는 무감한 사람들.

이젠 가방에 여분의 것까지 준비하며 다니는 것이 된 마스크, 미세먼지예보라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출근길에 나서는 길, 차키를 주머니에 넣고 마스크를 집으며 불현듯, 입사 당시 회사로부터 받았던 옷걸이가 떠올랐다.

중앙에 회사 로고가 새겨져 있고  나뭇결이 물결문양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고급 옷걸이.

락커 안에 그 옷걸이는 늘 비어 있다.

아니 비어 있어야만 한다.


코로나의 습격은 세상의 모습을 많이 바꿔 놓았다.

골프장도 예외는 아니다.

비말감염이 주된 경로가 되어 대면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은 그 공간이 야외라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었겠지만 캐디들에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고글 착용이나 심지어 안경 착용도 불허하는 곳이 있었다.

매니큐어는 물론 반지나 달랑거리는 귀걸이 착용도 그러하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혹은 서비스인으로서의 단정한 용모를 갖추어야 하는 데는 엄격한 편이다.

그런데 코로나 확산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허용한 것은 어쩌면 시대적 필요와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큰 결정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무슨 규정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문율처럼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관습이라는 이름 아래 전해져 왔다.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마스크..

처음엔 우리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모든 새로움은 익숙함에 대한 저항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여름철,  더위와 끈적한 섬지방의 습기는  늪에 빠진 처럼 내 다리를 잡아끌었고  안경을 쓰면  김이 서려 앞을 잘 볼 수 없었다. 

그건 우리만이 아니라 골퍼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건 해야 하고, 생계를 위해선  감수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으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미세먼지 예보나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엔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차단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이전엔 아무리 미세먼지가 심해도 마스크 착용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우리 신체 중에 손이 가장 자주 닿는 곳이 아마 얼굴 부분일 것이다. 마스크에 가려 손의 접촉이 줄다 보니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다. 자외선 차단은 물론 제주의 거센 바람막아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캐디들에게 좋은 건 표정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듯 들었다. 우리가 포커판의 도박사들도 아닌데

우리의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말라한다.



캐디들이 라운드에 4인의 고객을 접한다고 하면 한 달에 대략 200명, 1년이면 2000명 이상의 고객을 각별하게 접하게 된다.

각별하다는 의미는 최소한 4시간 이상 그들과 언어로 혹은  감정으로 상호 교류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냥 스쳐가는 한낱 인연이라고 하기엔 적지 않은 시간을 공유한다.

그 만남들은 좋기만 한 것도 아니요,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짓궂게도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가슴에 박아 놓는다.

기억이라는 어휘의 한자표기를 빌어보면 기(記)는  기록한다는  것이고 특히 억 (憶) 자에 방점이 찍힌다.

마음 심 (心)2개와 소리음(音)으로 형성된 이 글자의 의미.

마음(心)이 마음(心)의 소리(音)를 듣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기록 저장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이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겨진다는 것.

그러니 쉬이 잊히지 않는다.


몸을 힘들게 한 사람은 괜찮다.

볼을 잘 못 쳐서 캐디들을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어찌하겠는가!

그런 이들의 조력자 역할이 캐디의 몫이므로...

일명 JS라 불리는 진상고객들은 캐디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래도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그들도 나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 믿지만 그 바람은 내가 참 순진하다는 것만 확인하게 만든다.

그런 진심을 알아줄 사람이라면 애초에 사람을 마음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입사 교육을 받으며 수료 당시에 받았던 옷걸이. 이른바 <쓸개 걸이>였다.

우리는 락커에서 유니폼으로 환복 하는 순간 우리의 간과 쓸개는 따로 떼어 그 옷걸이에 걸어놓고 업장으로 가야 한다는 일종의 서비스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요구하는 의미의 상징물인 셈이다.

우리 회사 회장님의 수료식에서 격려사로  일본 어느 역무관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인용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게 만드는 곳들도 존재했으므로..

 20년 전의 이야기는 그 이후 어찌 변했을까?

SNS 덕분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갑질 논란'이니 '갑질 동영상'이라는 영상이나 말들이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들의 감정노동을 이해하고 소위  '고객은 왕이다'라는 인식을 바꿔나가는 움직임들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해 가고 있다.

요즘 MZ세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쓸개 걸이를 선물한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마스크가 없던 시절, 내 표정을 오롯이 드러내야 하던 때. 내 표정은 내 마음이었을까?

내 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고 내 마음과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낄 때 자주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럴 땐 군대에 가 있는 아들 생각을 하기도 하고,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일을 놓지 않는 친정엄마를 떠 올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 카트를 타고 가거나 클럽을 가지러 갈 때 혼잣말로 욕을 하기도 했다.

욕을 하다가도 멀리 등 뒤에서 고객이 나를 부르면,

환하게 웃으며 "네. 고객님"이라고 웃고 있던 나.

중국의 경극 패왕별희의 변검술사가 울고 갈 지경이다.

마스크에 숨겨진 나의 표정과 감정들...

실외 마스크 착용의 의무 해제를 알렸음에도 우리는 근무 시에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한다.

솔직히 코로나 감염 예방보다는 내 감정의 임시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마스크는 내 육신만이 아니라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방어막이다.

그나마 그 조그만 천조각 안에서 조금은 내가 솔직해질 수 있다. 내가 나를 기만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영역이다.

이젠 이 생활에 익숙해져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전면 해제'가 공표되면 어쩌나 싶다.


역시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세상엔 아주 좋기만 한 것도 없고, 아주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인간은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을 거라는 것..


하늘에  회색빛 먹구름이 태양을 가렸다.

그래도 구름의 가장자리는 구름 뒤의 태양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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