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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Feb 28. 2024

사는 낙이라고는 오로지 먹는 낙

평생 입에 달고 살던 소리는 먹는 일 말고는 낙이 없다는 말이었다. 정말 그랬다. 먹기 말고는 딱히 낙이 없었다.

일상은 온갖 짜증 나고 울화통 터지는 일로 가득했다. 직장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가족 간의 문제, 친구와의 문제, 건강상의 문제...... 삶은 밀려들어오는 온갖 문제를 해결하고 처리하기의 연속일 뿐이었다. 평탄한 날이 이어지는 듯 보일 때도 무엇 하나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조차 하나의 문제였으니, 문제없는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무겁고 심각한 문제의 대부분은 능력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문제들을 떠안고 있노라면 깊은 무력감이 덮쳤다. 맹렬히 두뇌를 리며 고민이나 판단 따위 할 필요 없이 편하게 쾌락을 좇을 수 있는 무언가 있어야 했다. 술이나 도박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섹스나 컴퓨터 게임이나 기타 등등 도파민을 빠르게 분출시키는 물질과 행위는 다양했다. 다만 이것들은 위험요소가 따랐다. 접근이 쉽고 안전한 건 뭐가 있을까? 집안과 가계를 풍비박산 내지 않고 철창신세를 질 염려가 없는 것, 주위에 딱히 피해를 끼치지도, 뭔가에 취해 비틀대지 않으면서 충분히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 평범한 모습 속에 진실을 감추고 마음껏 탐닉하고 중독되어도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행위는 그다지 지 않다. 솔직히 딱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음식을 먹는 것.

먹기에 중독된 사람들은 어찌 보면 한없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더한 일탈행위는 꿈조차 꾸지 못하는 유약한 존재들.





먹기 말고 일상에 활력을 가져다주고 여가시간에 몰입할만한 대상을 찾아 헤맸다. 뭔가를 배우고 보고 읽고 들었다. 모임에도 나갔다. 어떤 것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면 이내 시들해졌고 흥미가 떨어졌다. 나중에는 딱히 하고 싶거나 호기심이 가는 일도 없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던 일이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기초나 초보단계를 벗어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수련의 자세로 버텨야 하는 구간에 도달하면 작게나마 재밌는 구석조차 압도해 버리는 큰 피로감이 몰려왔다. 힘든 과정을 넘겨서라도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고 싶은 열의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연애는 어떤가? 단연코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딘가 단단히 삐뚤어져 버린 성격 탓인지 그럴 만큼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 것 인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랬다. 상대의 태도나 행동이 거슬리면 굳이 참고 싶지 않았다. 상대를 고치거나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일은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우리는 맞지 않는 상대라고 결론짓고 빠르게 관계를 마무리지었다. 처음에 품은 나쁘지 않은 정도의 미지근한 감정은 절대로 더 뜨겁게 타오르는 법이 없었다. 이성 간의 사랑의 불씨는 너무도 쉽게 사그라들곤 했다. 서로에게 품은 애정의 크기도 좀처럼 비례하지 않았다. 한쪽이 크면 다른 한쪽은 작았고 한쪽이 뜨거우면 다른 쪽은 뜨뜻미지근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내쪽에서 일방적으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다. 관계가 이어지다 단절되면 결정을 내린 쪽이 나였든 상대였든 상관없이 으레 좌절된 감정을 느끼며 의기소침해졌다. 일상은 또 지루해졌다. 음식을 찾았다. 먹는 것만큼 빠르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일은 없었다.





나는 이 사실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삶의 낙이 오로지 먹는 것 말고는 없다는 사실이, 먹기 같은 일차원적인 행위 말고 나를 즐겁게 는 게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스스로가 무척이나 열등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세상에는 훨씬 고차원적이고 의미로 가득 찬 일도 많을 것이었다.

먹기 말고 다른 낙을 찾아야 했다. 나란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기로 결정된 이상 적어도 가치라던가 기여라든가 아주 작은 의미라도 품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오래 지속하더라도 나가떨어지지 않는, 단계를 넘어야 하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 시들해지지 않고 한발 더 딛게 만드는, 스스로가 더 이상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그런 대상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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