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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Feb 26. 2024

모든 비만에는 스토리가 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 큰 화제가 된 한 유명 코미디언은 살이 찐 이유에 대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늘 먹으면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므로 강박적으로 폭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모든 비만에는 각자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야."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 단 한 번도 날씬했던 적이 없었다. 십 대 후반부터 이미 과체중이었지만 적어도 남의 눈에 띌 만큼 뚱뚱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살은 마치 적립금이 쌓이듯 야금야금 쪘다. 사는 게 힘들고 고된 시기에는 꼭 정해진 법칙처럼 체중계 눈금이 단번에 몇 칸씩을 뛰어오르기도 했다. 단기간에 갑작스레 찐 살조차 한 번도 감량에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안 해본 다이어트는 없었다. 어떤 다이어트 방법도 지속할 수 없는게 문제였다. 잠깐 살이 빠졌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체중은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체중을 감량하기 전보다 더 찌기 일쑤였다. 서른 중반에 이르자 통통하다는 표현으로 대충 얼버무릴 수 없을 만큼 뚱뚱해졌다. 가 보아도 비만이었다. 161cm의 키에 70킬로가 훌쩍 넘었는데 70킬로가 넘었다,라고 대충 뭉뚱그려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마지막으로 체중계에 올라가 확인한 몸무게가 그쯤이었기 때문이다. 몸무게를 보는 게 괴로워서 더 이상 체중을 재지 않았다. 이후 살이 더 찐 것만큼은 확실하지만 재보지 않았으니 정확한 몸무게는 알지 못한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몸무게의 최대치가 다르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한계점이 70킬로였다. 그 체중에 도달하고 중증의 우울증과 고지혈증, 지방간, 만성표재성 위염, 역류성식도염, 자궁내막증식증 같은 질병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비만에서 벗어나기.

그것은 평생의 숙제였다. 비만은 발목을 그러 잡고 주저앉히는 족쇄였다. 다이어트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살이 기하급수적으로 찌는 요요 현상에 시달리면서 한때는 차라리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편이 결과적으로는 낫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살 빼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뭐라도 하고는 있어야 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너무 거창하게 들리니 최소한의 양심 그도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해두자. 여하튼 실낱같은 양심인지 자존심인지 알 수 없는 그것 하나를 겨우 붙들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마저 놓아버린다면 넌 정말 인간도 아니야, 협박하듯 스스로를 다그쳤다. 다이어트라는 행위 자체는 살을 빼겠다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불안한 심리를 붙드는 마지노선으로만 기능하고 있었다.

미디어 한편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떠들어 댔다. 일면 타당한 소리였다. 뚱뚱해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라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수도 없이 자기 최면을 걸어보았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결단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은커녕 괜찮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다. 단순히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에 대한 혐오가 아니었다. 과식과 폭식 같은 비정상적 식이를 반복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매일 소화제를 털어 넣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장이 망가지고 누울 때마다 위액이 타고 올라와 비스듬히 기대앉아 잠을 청해야 할 지경인데도, 혈관 어딘가 막혀 반신불수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수차례 듣고도 음식 먹기를 중단하지 않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 모습은 한심할 뿐이었고 두어 시간만 외출해도 지쳐버려서 가 더 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또 누워야 하는 상황이 기가 막혔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멈추지 못하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두고 도저히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그게 가능한가? 이유 불문하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소리는 핵심을 비켜간 속이 텅 빈 조언에 불과했다.





모든 현상 너머에는 본질이 숨어있다.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다. 눈에 보이는 객체의 밑바닥에는 사물과 상황을 쥐고 흔드는 핵심 같은 것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실체를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항상 뒤에 가려져 있거나 가장 맨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바로 잡거나 조절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런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결과 중 하나에 불과한 현상이 단박에 사라지거나 드라마틱하게 변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껏 짧은 생이나마 살면서 깨우친 절대불변의 진리 중 하나는 이 점이었다. 모든 현상에는 본질이 있고 어떤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숨어있는 본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결과가 더 나빠지기만 한다면 분명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어떻게 하면 살을 뺄 수 있는지보다 이 부정적 사이클의 밑바닥에 어떤 원인이 도사리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사실 살을 빼기 위해 어떻게 먹고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는지는 전문가 수준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방법을 알고 있어도 도무지 지속할 수 없고 나가떨어져 버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배가 부른데도 왜 자꾸만 먹게 되는지, 움직이는 게 싫을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이토록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한 지, 나를 이렇게 만드는 원인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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