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쓰고 싶은 기분에 관하여

by 모모루

'기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자세히는 글을 쓰고 싶은 기분에 대해서다. 글을 쓰고 싶은 '기분'과 '욕구'는 엄연히 구분된다. 쓰기에 대한 갈망은 동일하지만 둘의 차이는 시점이 어디에 가 있느냐에서 갈린다. 욕구의 경우가 '언젠가 그렇게 되고 싶다'와 같은 미래를 향한 바람이나 기대라면 기분이란 다분히 단발적이며 초점이 바로 이 순간, 현재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글을 쓰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중에도 평소와 달리 그다지 괴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은 일전에 얘기한 영감이 떠오르는 상황과는 별개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다. 어느 순간 벅차올랐다가 급격히 사그라드는 특성이 있기에 그러하다.





며칠 전 아침 눈을 떴을 때 불현듯 지금 당장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에서 깨고도 한참은 이불속에서 꿈지럭대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을 뜨자마자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거기다 무려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라니! 이것은 분명 특별한 징조였다. 그날만큼은 따뜻한 이불속을 벗어나는 게 전혀 괴롭지 않았다.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고 세수와 양치를 마친 뒤 부엌에서 물 한잔을 마셨다. 다른 날과는 달리 매우 잽싸게 움직였으며 약간의 흥분을 안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노트북 자판에 손을 얹고 기세 좋게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뇌는 순식간에 잠에서 덜 깬듯한 몽롱함에 사로잡혔다. 불타오르던 열의는 앞선 기세가 무색하리만큼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익숙한 무기력이 마치 태초부터 원래 그곳에 있었다는 냥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나는 백지처럼 하얀 스크린 속 깜빡이는 커서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화장실과 부엌을 오고 갔던 고작 십분 남짓한 짧은 시간조차 기분은 절대로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놈의 기분이라는 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해보려 하자면 대단히 주도면밀해져야 한다. 그 기분을 감지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어야 했다. 눈에 낀 눈곱과 텁텁한 입냄새의 불쾌감, 방광을 압박하는 요의(尿意)와 목구멍이 타는 듯한 갈증 따위는 참아 넘겼어야 했다. 신체적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일상과 업적을 사정없이 좌지우지하는 기분이라는 놈에게 모든 비위를 맞춰주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랬다면 아주 그럴싸한 글을 써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패배감에 휩싸인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복수의 칼날을 가는 심정으로 다음을 기약해 본다. 나름의 행동 강령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당장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 다시 한번 찾아온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바로 자판을 두드릴 테다. 그때는 화장실이고 물 한잔이고 없다. 반드시 그럴 테야.

다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 자신이 없다. 소변이 마려운 걸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 물을 마시고 싶은 갈급함은 또 얼마나 인내할 수 있을지, 신체적 불편함 속에서 과연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강하게 드는 마법 같은 순간이 다시 한번 찾아와 줄 것인가? 문득 이 모든 게 터무니없음을 깨닫는다. 불안정하고 기복 심한 기분 따위에 기대어 글쓰기에 대한 어떤 성과를 바라는 생각은 도박에서 일확천금을 따겠다는 결심만큼이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고 그러나 약간은 체념의 상태로 되뇌었다. 요행을 바라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사랑하지만 도망가고 싶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