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팀에서 연락이 오면 긴장돼요.

회계팀에서 일하면 듣는 말들

by 망망대해
auditing.png 어느 조직에서나 회계팀은 항상 평가자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평가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지출처 Shutterstock)


무엇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재무는 특별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했는가>, 제이컵 솔, p.127




절대 잊히지 않는 말들

어떤 말들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도, 무게감이 있는 문장이 아님에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심각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상대도 지나가듯 말하는 일상적인 대화였는데도 뇌리에 박혀 평생 떠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 말들에 왜 충격을 받았는지 곱씹어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나, 생각해 본 적 없던 영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꽤 오래전에 업무적으로 자주 연락을 나누다가 친분이 생긴 타 본부의 직원이 있었다. 나이도 동갑이었고, 직급도 같고, 입사 시기도 비슷했기에 서로 부담 없이 연락하며 업무상 필요한 내용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자연스레 업무적인 대화를 하다가도 자잘한 농담이나 소식을 주고받을 정도로 관계가 발전했다.


여느 때와 비슷했던 업무상 통화가 끝나갈 무렵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웃으며 말했다.


"사원 님하고는 자주 연락해서 괜찮은데 그래도 회계팀에서 메일이나 전화가 오면 걱정이 되거나 괜히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긴장의 벽에 가려져 있다가 친분이라는 개구멍을 통해 들여다본 상대의 진심은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충격과는 별개로 나는 그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능청스럽게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저희는 이미 이렇게 하겠다고 품의서도 다 올리고, 위에 보고도 하고, 예산까지 받아서 일을 진행했는데 나중에 뒤에서 회계팀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회계/세무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 얘기하면 이미 일은 다 진행되고 있는데 난감한 경우가 많거든요."


"보통 문제가 없으면 회계팀 하고 대화할 일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회계팀이 직접 나한테 연락을 했다는 건 뭔가 잘못 처리했다고 지적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죠."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해 보니 늘 그랬다. 회계팀에서 일하면 보통 업무적으로 타 부서 직원에게 직접 전화나 메신저를 걸 일이 많지 않다. 회계팀의 공식적인 언어는 전표이기 때문에 전표의 분개와 회계처리에 이상이 없다면 그 안건은 더 이상 다시 돌아볼 일 없이 종료다. 문제가 없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타 부서의 누군가에게 찾아가거나, 메일을 쓰거나, 육성으로 통화할 때의 상황은 '회계적으로 잘못 처리한 과거의 무언가'를 수정하라고 지적하거나,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는 무언가'를 미리 사전에 안내해야 하는 상황 둘 중 하나뿐이었다.


회계팀의 시간개념 속에는 현재가 없다. 오직 잘못된 무언가와 잘못될 무언가만이 있을 뿐이다. 굳이 그 틈바구니에서 현재를 찾자면 잘못을 찾아내는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왜 나는 그 통화에서 충격을 받았을까. 그때까지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상대에게 긴장이나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회사와 직무가 어떻게 '나'라는 개인을 덮어쓰는 가면이 되는지를 처음으로 어렴풋이 느꼈다. 그 얘기는 조직 안에서의 '나'와 조직 밖에서의 '나'는 같은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회계팀으로서의 나는 누군가에게 시끄럽게 재잘대는 앵무새, 아침의 요란한 자명종, 왜 수정해도 계속 FALSE로 뜨는지 모르겠는 엑셀 함수, 잘 걷다가 운동화에 들어오는 돌조각일 수도 있다.




istockphoto-169726301-612x612.jpg 문지기는 통과 요건을 살피기 위함이지 누군가를 막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이미지출처 iStock)


문지기와 성주(城主)

회계는 회사 업무절차의 마지막 단계에서 들여보낼지 말지 결정하는 문지기와도 같다. 회계가 승인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활동은 자산, 부채, 비용, 수익 중 어느 것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몇 주 뒤에 예산을 집행하겠다고 보고도 올리고, 거래처에는 언제까지 대금이 입금될 거라고 사장님과 얘기도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단계에서 태클이 들어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 회계는 항상 마지막 단계에서 어깃장을 놓을까. 회계는 가치를 창출하는 부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영지원 부서들이 그렇듯 회계는 회사가 창출해 낸 가치를 최대한 손실 없이 지켜내는 공동의 사명에 묶여 있다. 그 가치들 중에서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을 가시적인 숫자와 장부의 형태로 옮겨내는 것이 회계의 역할이다. 가치가 적정한지, 가치가 올바르게 형성되고 기록되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렇기에 회계는 언제나 평가자이자 감독관의 위치에서 누군가의 결과물을 따져보는 위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평가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 시절부터, 또는 다른 사회생활에서 '해낸 것'을 인정받기보다 '하지 못한 것'을 지적받는 경험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회계기준이 어떻고, 차변/대변이 어떻고, 원천징수를 해야 되네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다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가는데 무조건 다시 해오라고 한다. 그들만의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기준을 설명하며,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라고 선을 긋는 태도를 겪다 보면 벽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경험들이 한 개인의 업무 인생에서 장기간 누적되면 회계팀은 반갑지 못하며, 최대한 연락을 주고받고 싶지 않은 부서가 된다. 한 선배는 내게 우리는 어차피 미움받을 위치이므로 굳이 '좋은 회계팀 직원'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본인의 철학을 전했다. 어떤 팀원들은 회사의 회계관행을 준수해오지 않는 타 부서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단정 짓기도 했다. 때론 상대방에게 전화로 십 분이 넘도록 세법 조항과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이나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읊어 상대가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하도록 면박을 주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조직이 부여한 권한과 임무는 개인이 조직원으로서 기능할 때만 유효하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권한이 마치 우리의 타고난 '권리'이자 내재된 우월성 또는 '권력'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문지기의 역할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문을 통과할만한 요건을 갖추었는지 꼼꼼히 심사하고 필요에 따라 제지하는 것이다. 이걸 오해하여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고 착각하면 그는 문지기가 아니라 성주를 자처하는 셈이다.




istockphoto-1189302019-612x612.jpg 우리는 지적만 하는 사람보다는 지도해 주는 사람을 원한다.


길잡이

반드시 문을 통과해야만 하는 어떤 여행자가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안달복달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당연히 그를 통과시킬 수는 없다. 여행객의 사정을 들어보니 반드시 오늘 안에는 이곳을 지나가야만 한다. 그의 사정은 내 알 바가 아니라며 모른 척할 수도 있다. 아니면 부족한 요건들을 어떻게 하면 해결하거나 충족할 수 있는지 안내를 해줄 수도 있다.


회계에서 일하면 다른 부서에서 올리는 다양한 기안서나 품의서를 사전에 볼 일이 많다. 마지막 단계에 서 있는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은, 앞 단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경과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결재 중인 기안서를 읽다 보면 업무 담당자가 회계적으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특정 거래처와의 업무상 관계증진이 목적이므로 접대비 예산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광고선전비로 계정을 잘못 적었다. 외부강사에게 용역의 대가를 제공하려는데 원천징수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지급액을 품의에 적었다. 실제 재화나 용역의 거래가 아닌, 손해배상금을 협력업체에 청구하는 건이므로 세금계산서 발급대상이 아님에도 부가세를 계산하여 채권을 인식하려고 한다. 다음 주 수요일에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적었는데, 회사의 자금집행일정은 매주 금요일이다.


사실 관계가 올바르지 않은 정보에서 시작된 업무는 잘못된 회계처리로 이어진다. 누군가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음을 안다는 것은 바로잡을 기회와 지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드시 나서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일방적인 지적만 하는 사람보다는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도해 주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 단지 나에게 도움이 되서만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신경 쓰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이 느껴지는 상대에게 우리는 똑같이 진심이 될 수 있도록 호응하려는 본성이 있다. 문지기가 될지 또는 누군가의 길안내원이 될지는 오직 '나'의 선택에 달렸다.


그렇게 한다고 하여 나의 보상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때로는 나의 행위에 대한 보상심리로 막연한 근거없는 기대감을 갖다가 혼자서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 자신의 경계심과 벽을 내려놓으면 상대도 같이 벽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순간이 많았다. 우리는 서류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대 개인으로서 교류하고 있다. 누군가와의 업무가 껄끄러운 경험이 될지, 매끄러운 업무진행이 될지는 어느 한쪽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동료 직원의 얘기로 돌아오자. 시간이 다시 흘러 타 본부의 그 직원이 먼저 퇴사를 하게 되었다. 층이 한참 다른 사무실까지 직접 올라와 얼굴을 마주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사원님 덕에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번에 옮기는 곳에도 당연히 재무부서가 있을 텐데 거기에도 사원님 같은 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말들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난 아직도 그 마지막 날의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보물을 숨긴 아이처럼 가끔씩 꺼내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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