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가치
기다림이란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다림’이 될 수 있다. 내게는 이 방이 ‘기다림’의 장소다. 여기 있는 나는, 괄호 사이의 백지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여백이다.
p.337~338,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기한은 기다려주지 않아
1월은 결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달이다. 재무나 회계 직무 종사자들은 한 해가 지나면 이전 연도의 장부에 대한 결산을 해야 한다. 일 년 동안의 계정원장을 돌아보고, 명세서를 만들고, 금액의 증감과 잔액이 맞는지 확인하고, 서류와 전산의 일치를 점검한다. 그날 하는 세부적인 작업의 요구사항은 바뀔지 몰라도 해야 하는 일의 성격은 대동소이하다. 회계 일이 어디나 비슷하다지만 특히 결산 때는 하루하루가 동일한 순간의 반복이다. 묵은 기록을 들여다본다. 점검한다. 분석한다. 금액을 맞춘다.
그래서일까. 다른 때보다도 1월은 되돌아보면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 달이기도 하다. 매일 동일한 날이 반복되면 시간감각이 사라지듯, 육체의 물리적 좌표상 이동만 있을 뿐 감각적인 시간의 흐름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회계사들이 방문하기 전까지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기한은 정해져 있다. 연휴가 많이 끼어있는 때는 짧으면 3주, 운이 좋으면 4주의 시간이 있다. 처음 목표 기한을 세울 때만 해도 여유 있어 보이던 일정은 늘 예상하지 않은 변수들로 틀어진다. 하루씩 하루씩 일정이 다른 이유로 소모되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악몽 중에는 그런 꿈들이 있다. 뒤에서 무언가 쫓아오는데 아무리 뛰어도 뛰는 것 같지가 않은 순간. 마음의 조급함을 시간이 따라잡지 못할 때 오는 긴박감과 초조함은 현실이건 꿈에서건 반갑지 않은 경험이다.
1월 셋째 주부터 회계팀은 상대성 이론을 겪게 된다. 기한은 코 앞으로 다가오며 매 순간 가속하는데 비해, 나의 진척도는 한 없이 늘어진다. 악몽은 아니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꿈처럼 무섭지 않지만 오히려 피할 수 없기에 더 난처한 어떤 데자뷔가 펼쳐진다.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비해 오직 나만이 녹아내린 점액질과 아교와 접착제 한가운데서 헤엄치는 느낌이다. 하루라는 시간에 강력 본드가 붙기라도 한 듯 집에 돌아오기까지 참으로 험난한 나날이 펼쳐진다. 끈끈이 덫에 걸려 발악하다 결국 헐떡인 채 드러눕는 쥐처럼.
14분의 고민 그리고 기다림
어느 날이었다. 저번주였는지 저저번주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이미 곤죽 같은 시간 개념과 그만큼이나 구분하기 어려운 일상의 반복 속에서 언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은 유독 일이 늦게 마무리되어 택시를 불러야 했다. 어플을 열어 출발지와 도착지를 설정하고 차량 종류를 선택한 뒤 택시를 신청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로비에서 동료들과 택시를 기다리고, 한 명씩 자신의 택시 도착 알람에 맞춰 문을 빠져나갔다. 내 알람은 언제 오나 싶어 보는데 아직 근처 기사님을 찾는 중이다. 이윽고 택시가 잡혔는데 내 위치로 오기까지 14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시간이 표시되었다. 대개 5~6분 내외로 도착하던 평소와 비교해도 유독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비나 눈이 심하게 내리는 날에 택시가 아예 안 잡히는 경우는 있어도 이 정도 시간을 기다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첫 번째 생각 - '취소하고 다시 부를까?'
두 번째 생각 - '취소하고 그냥 차라리 근처 역으로 걸어갈까?'
예상시간이 14분이니 실제로 도착하는 데는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워낙 늦은 시간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고민 끝에 취소 버튼을 누르니 안내 화면이 표시된다. 예약을 취소하면 다음 택시가 잡히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안내와 더불어 N분이 지나서 취소하면 다음 예약을 하는데 제약이 걸린다는 내용이다. 이미 아까의 고민에서 시간을 어느 정도 쓴지라 제약 없이 다음 예약을 하려면 2분 안에 결정해야 했다.
나를 향해 조금씩 개미처럼 다가오고 있는 차량 아이콘과 그 위에 떠 있는 기사님의 명함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상으로 보니 지금 내 위치로부터 꽤나 떨어진 곳에서 오고 있는 중이다. 한 번만 더 손가락을 누르면 취소될 것이다. 아이콘의 이동 속도로 보니 예상시간보다 빨리 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기사님의 얼굴은 아주 조금씩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거리와 시간의 차이를 두고도 꾸준히 달려오고 있을 택시를 생각하니 쉽사리 취소하기가 어려웠던 걸까. 나는 다른 동료들을 보내고 불이 거의 다 꺼진 로비 의자에 앉아 10분가량을 기다렸다.
14분의 기다림 끝에 택시가 도착하고 뒷문을 열어 올라탄다.
"안녕하세요~ 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 10시가 넘어 작성하는 이 글과 모니터와 키보드의 타자로는 기사님의 억양과 말씨를 겨자씨만큼이라도 담아낼 수 없는 게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평소 택시를 타는 일이 많지 않다. 분기마다 공시와 결산을 위해 어쩌다 몇 번 야근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늦게까지 남아 술을 마시거나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택시를 잡는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택시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업무상 필요에 의해 경험해 본 기사님들은 대개 비슷비슷했다. 요즘 손님들의 경향을 알고 굳이 말을 전혀 안 붙이고 묵묵히 운전만 하는 분들이 제일 많다. 사실 야근으로 지친 직장인에게는 이런 기사님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업무와 인간관계에 절여지다 못해 자신이 색이 다 탈색된 회사원들은 퇴근길마저 누군가의 정신과 심리상태에 맞춰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까.
때론 당신 스스로 침묵의 어색함이 부담스러워서인지, 또는 본인의 고단함을 공유하고 싶어서인지 말을 건네는 분들도 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지친 나는 그냥 기사님의 말이나 주제에 맞춰주느라 추임새를 넣는 기계가 되는 경우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간혹 시사나 정세에 관심이 많은 분이 걸리면 집으로 가는 길이 피난길에 오르는 마음이다.
조금씩 유형은 다르더라도 대개 기사님들은 비슷한 공통점이 있었다. 인사는 매우 간략하거나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올라탄 택시는 달랐다. 그 이유나 원인을 찾으라고 하면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우리는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누군가에게서 어떤 '아우라'를 느낀다. 그건 표정일 수도 있고, 억양일 수도 있으며, 손과 몸동작이거나, 어조와 유창한 어휘력일 수도 있다. 또는 그것들의 총합이거나 단순한 합을 넘어선 그 이상의 무언가일 수도.
뒷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이 택시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어떤 막연한 직감과 동승한 채 문을 닫았다.
무엇을 기다리며 일하는가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사님이 제법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점은 어둑한 밤임에도 그분의 어조와 대화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이 그리 좋으신 걸까. 대화를 하다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시간대에 서울 권역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는 손님을 잡히는 경우가 요즘 많지 않단다. 택시 할증이 오르다 보니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택시를 이전만큼 많이 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잡히더라도 같은 서울 내에서 다른 동네로 이동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 그렇게 수입이 높지도 않다는 얘기. 반면 경기도 쪽으로 이동하는 손님을 태우면 어느 정도 금액도 붙거니와 내려드리고 다시 올라올 때 운 좋게 서울방향으로 가는 손님을 태우고 고속도로로 갈 수 있다는 얘기. 아마 그분에게는 내가 오랜만에 낚인 실한 물고기 같은 느낌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기사님은 '나'에 대해 질문을 하는 방향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잡고 있었다. 야근을 하고 퇴근한 건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사는 곳 근처의 다른 동네가 어디인지 등등. 자연스럽게 기사님이 물으면 내가 답을 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답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전달력 있게 말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많은 기사님들은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편이지 손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식으로 대화를 하는 분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대화 중에는 말할 필요 없이 듣기만 해도 되지만 오히려 피곤한 순간들이 있다. 반면, 어떤 대화는 내가 말을 더 많이 해야 하지만 오히려 더 기분이 좋은 경우들도 있다. 화자의 입장이냐, 청자의 입장이냐보다도 더 중요한 건 상대가 나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냐 아니냐일 것이다.
지금 이렇게 그날의 경험을 글로 장황하게 풀어쓰고 있지만, 이번 기사님과의 대화는 그렇게 소란스럽거나 속사포처럼 많은 말들이 오가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침묵이 섞여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침묵의 순간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억지로 무언가 더 대화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공백. 비어있기 때문에 채워야 하는 결핍이 아닌, 비어있는 채로 둘 수 있는 여백의 느낌. 그건 마치 문장과 문장 사이의 마침표나 쉼표와 같다.
아마도 기사님은 대화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손님이 가지고 올 대화의 소재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대화가 즐거우면 그 중간의 비어있음은 거슬리거나 어색하지 않은 법이다.
"안녕하세요~ 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고 기사님은 또 한 번 친절하게 나를 맞이하며 보내셨다. 어쩌면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손님일 텐데. 야간 택시임에도 기사님의 얼굴과 말에서는 어떤 피곤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파로 날은 춥고, 시간은 이미 깊은 저녁이지만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어떤 작은 감정이 안에 담긴 채 집안으로 함께 들어왔다.
이용한 기사님의 서비스 점수를 평가해 달라는 안내가 뜬다. 어지간한 기사님들은 항상 별 다섯 개를 드리고 좋았던 평가항목을 고른다. 다만 대부분은 거기까지만이다. 좋았던 이유를 굳이 일일이 문장형으로 리뷰까지 적지는 않았다. 이번만큼은 길지는 않아도 리뷰를 적어 제출해 본다.
어쩌면, 어쩌면 또 그 기사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함께 집안으로 들어온 건 기다림이었다. 기사님이 14분이 걸려 찾아오며 가지고 온 것은 기다림이었다. 14분의 예상시간을 기다렸기에 기다림이 찾아온 것이다.
기다림을 만드는 사람은 기대할 것이 있다.
기다림에 쫓기기보다는 기다림을 만들어가는 삶을 기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