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까지 나답게 살기로 했다(7)

by 하명환

급하게 도착한 응급실


수술실 앞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의자에 앉아있는 기석이 있었다.


"기석아."

"아버지..."


내 부름에 고개를 들은 기석의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슬픔, 불안. 혼란 등등...


당연한 말이지만 긍정적인 감정 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 어떡하죠? 이러다 큰일이라도 난다면 어쩌죠?"

"아까도 말했지만 괜찮을 거다. 큰 문제는 없을 거야."


하지만 내 위로에도 기석의 표정은 나아질 줄 몰랐다.


"하지만 저한테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라고..."

"그건 의례적으로 하는 거다. 며늘아가가 위험한 상황이라 하는 게 아니야. 그게 아니면 의사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들은 것이냐?"

"그건 아니에요..."


과거, 우리 부부도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작성했던 것이었다.


다만 내 아내는 좀 더 다른 설명을 들어야만 했지만 말이다.

그것도 수술 도중에 말이다.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산모에게 대량출혈로 인한 쇼크가 올 수가 있어요.'

'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요. 무조건 제 아이를 살려주세요.'


수술실 밖에 있던 나는 모르는 내용이었고, 나중에 사고가 생기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건 다행이구나. 요즘에는 의사의 실력도, 기술도, 장비까지 뛰어나다고 하니 괜찮을 거다."


지금까지 의사들의 수술을, 서울의 병원을 불신하며 일부러 피해왔던 사람이 하기에는 그리 적합해 보이는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기도 했다.


"제가 아버지께 너무 못 보일 꼴을 보여드리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거겠죠?"

"괜찮다. 이 상황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니까 말이야."


나는 경험이 담긴 위로를 건네면서 기석의 옆에 털썩 앉았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이 상황은 노인에게 매우 힘든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침묵 속에 있는 기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가 저주받았나 봐요. 제 아내도 그렇고, 제 엄마도 그랬고... 제 주변에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나는 아들의 충격적인 발언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예전에 집 주변의 할머니들이 숙덕거리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지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놈'이라고."

"남의 귀한 자식한테 감히..."


과거에는 그런 미신도 존재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미 땅 속에 묻혀있을 테니까.

그 정도로 나이 먹은 노인네들이었다.


"왜 안 말했냐."

"어떻게 말하겠어요...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놀라며 기석을 바라봤다.

마침 기석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다.


평소 같았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시선을 피했겠지만, 지금은 서로 피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렇게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일까.

그렇게 본 아들의 숨길 수 없는 눈가의 주름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그래서 아버지가 날 싫어한다고 하루에도 몇십 번도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알아요. 근데 어릴 때잖아요. 아줌마랑 아저씨가 아무리 잘해줘도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감정이었죠."


그래.

나만 슬픈 게 아니었다.


나만 아내를 잃은 것이 아니라,

기석도 엄마를 잃은 것이었다.


그 아픔이 작을 리가 없는데.

그 아픔이 얕지 않았을 텐데.


지금까지 내색하지 않고 견뎌온 것이다.

속이 깊은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것도 깨닫지 못하다니, 나는 정말 나만 생각하는 못된 아비였다.


"나도 너희처럼 네가 태어나는 것을 기다리며 아기 신발을 사 왔던 시기가 있었지."


갑작스러운 말에 기석이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나도, 그리고 죽은 네 엄마도 지금 너희들과 같은 감정이었다. 설령 잘못된다고 해서 곧 태어날 네 자식을 원망할 것이냐?"

"...... 그럴 리가 없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다. 너에게는 잘못이 없어. 그저 내가 서툴렀기에 네가 상처받았을 뿐이지. 세상 어느 부모가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식을 미워하겠어?"


나는 기석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기에 내 진실된 마음을 전달했다.


"나는, 우리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단다."

"네...! 네...!"


기석은 내 말을 듣고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응급실 복도에 울려 퍼졌다.


"......"

"......"


두 사람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남들에게는 기쁜 소리일 수 있겠지만 경험이 있는 우리는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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