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적은 내가 현장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장면이 흔하게 나오니까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보호장비도 없이 화재현상에 들어가는 행위는 상당히 미친 짓이었다.
"왜 이렇게 생각 없이 행동한 거지?"
1층을 확인하는 그 짧은 사이에 혼란이 찾아왔다. 아니, 이미 혼란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부터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초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죽는다더니 이렇게 죽는 거구나... 이런 개죽음이나 당하려고 지금까지..."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 속에서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는 생각들.
"으아앙...!"
그 순간 귓가에 속삭이듯 아이의 울음소리가 작게 들려왔고, 덕분에 내가 이곳에 들어왔던 이유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짝!
나는 내 볼을 양손으로 강하게 때렸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덕분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죽는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 아까 그 여자애는 도망치고 싶어서 만들어낸 내 환상일 뿐이야. 애당초 언제 죽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래 처음부터 이상했어."
불안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그 방법이 나쁘지 않았는지, 방금까지 떨렸던 몸이 거짓말 같이 진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침착해질수록 불은 날 비웃기라도 하는 것인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젠장! 벌써 불이 이만큼이나...! 보호 장비 없이는 집 안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든데..."
소방서는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기에 아직 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방금 들린 울음소리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일단 위로 올라가야 해."
위에서 들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내 피부를 달구는 뜨거운 불길을 최대한 피하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가 정확히 어디서 난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내 망상이라고 생각했던 소녀가 계단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화재현장과는 어울리지 않은 차가워 보이는 피부 때문에 더 이질적으로 보였다.
"너 뭐 하는 거야! 위험하니까 당장 밖으로 나가!"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소녀는 내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오히려 계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야! 아, 젠장. 도대체 뭐냐고!"
욕설을 뱉으며 소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엄청난 기세를 보여주던 불길이 나와 소녀를 피하는 것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가던 소녀는 5층에서 멈추더니 오른쪽 문을 가리켰다.
"헉... 헉... 여기에, 생존자가, 있다는, 뜻이냐?"
급하게 달려온 탓에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물어보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나는 달궈진 손잡이를 발로 차버렸다. 다행히 연식이 오래된 탓에 별다른 고생 없이 잠금장치는 금방 부셔졌고, 살짝 흔들리는 문을 급하게 열며 집안에 들어갔다.
"있다!"
그곳에는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쓰러져있었다. 가까이 가서 상태를 살피자, 손에 난 화상자국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도 과거의 나처럼 도망치려고 허다가 뜨거워진 문 손잡이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분명했다.
"이제 됐으니까 너도 빨리..."
나는 남자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고는 같이 올라온 소녀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방금까지 같이 올라왔던 소녀의 모습은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내 망상이었던 거야. 크윽...! 이제 정말로 위험해."
망상 속 여자아이를 찾을 시간은 없었다. 예상대로 건물이 오래된 탓에 연소되는 속도가 빠른 탓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려는 순간, 다리에서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리가 다친 것도 잊고 이렇게 달린 것도 문제였지만, 문을 발로 찬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젠장..."
계단을 걸을 때마다 다쳤던 다리가 점점 심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반년 넘게 쉬어야 할 수도 있을 정도의 아픔이었다.
그렇게 아픔을 참아가며 1층까지 내려가자 문 밖에서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착했..."
도착했다고 안심한 탓일까?
내 머리에 떨어지는 구조물을 눈치채는데 늦고 말았다. 급하게 뛰어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다리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받아요!"
나는 있는 힘껏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아이를 던졌다. 다행히도 아이는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밖에 있던 사람에게 날아갔고, 밖에 있던 사람이 아이를 받으며 안전하게 뒤로 천천히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아저씨는 잘 지내고 계시나... 찾아볼 생각도 못했는..."
그리고 그와 동시에 떨어지는 구조물이 나를 덮쳤다.
"꺄아아아아악"
나를 덮치는 구조물에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