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뺨을.
1970년대 말에 중학교를 다녔다. 시골이라 남여공학반이었는데 창가쪽으로는 여학생이, 복도쪽으로는 남학생이 앉았다. 영어시간이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친구랑 뭐라고 한마디 주고받다가 선생님께 걸렸다. 영어 선생님은 키가 크고 건장한 갓 결혼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우리 둘은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갔다. 나랑 내 친구는 체구가 작고 마른형이라 힘이 별로 없었다. 선생님께서 "너희둘은 수업시간에 떠들었으니 뺨 10대씩 맞아야 한다"고 하며 먼저 제 친구의 뺨을 큰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준비없이 맞는 내 친구는 반대편 남학생 책상앞까지 비틀거리며 밀려나갔다. 갑자기 교실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너무 놀란 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며 눈을 감았다. 숨이 멈추는 듯 했다.
순간 거대한 손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내 손목을 잡아 끌어내리는 듯 하더니 어느새 나는 앞줄에 앉은 남학생 책상위에 엎어져 있었다. 친구와 나는 교대로 한대씩 뺨을 얻어맞으며 이구석 저구석으로 밀려났다 잡혀오고 또 밀려나고를 반복하며 각각 뺨 10대를 마무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아보는 뺨의 맛은 참으로 어이없었다. 아픈것도 모르겠고 부끄러운것도 모르겠고 우리 둘은 서럽고 또 서러워 그저 책상에 엎드려 울고 또 울었다. 그 다음 시간은 체육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운동장으로 나갈수가 없었다. 체육선생님도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소문났지만 우리 둘은 이보다 더한 일이 있겠냐며 그냥 교실에 남기로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반장이 대신 잘 설명을 했고 체육선생님은 오히려 우리 둘을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장도 체육선생님도 고마웠다. 그 다음날인가 운동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체육선생님께서는 아무말없이 제 단발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의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일이 빈번했다. 주로 남학생들에게 더 가혹했는데 여학생에게 뺨을 때리는 일은 드물었다. 손바닥을 때린다던가 종아리를 때리는 일은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뺨을 때리는 일은 과도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밉고 싫었다.
어느 날, 등교를 하는데 교문에서 교복을 제대로 입었나를 검사를 하느라 선생님께서 한분 서 계셨다.
나를 때린 영어선생님이었다.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태산처럼 서 있는 그를 보는 순간 그 때 기억이 떠 올랐다. 이유불문하고 나는 선생님 곁을 지나야 교문을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인사도 안할 것이다. 두 눈을 내리깔고 땅만 보고 걸었다. 선생님께서 "미니야" 라고 불렀다. 분명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오히려 자세를 가다듬고 걸었다. 다시 한번 더 '미니야' 라고 불렀다. 나는 결국 선생님을 외면했다.
나도 어른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도 뺨을 내리친 선생님이 이해가 안된다. 청바지에 늘어진 티셔츠만 입어도 너무 예쁜 학생들인데. 그들의 눈은 참으로 맑아 자꾸만 바라보고 싶은데. 내 아들 딸보다 더 어린 이 학생들을 오래 오래 이뻐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