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3. 페와 탈에서 아침을 - 3

by 소라게

숙소를 결정하고 나서의 이동은 일사천리였다. 한시라도 빨리 벼룩들로부터 달아나고팠던 우리는 부리나케 짐을 챙겨 체크아웃, 체크인을 해치웠다. 그리고 새로운 숙소에서 마음 편히 한참이나 낮잠을 잤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일어났을 때는 발진 부위가 덜 가려운 것도 같았다.


그새 날이 저물어 있다. 우린 거의 동시에 깼는데, 서로의 몰골을 보곤 낄낄 웃었다. 아델의 회색 머리는 불쏘시개 같았고, 나는 눈이 퉁퉁 부어 개구리 같았다.


우리는 먼저 몸의 발진을 검사했다. 다행히 붉은 기는 거의 가신 상태다. 약사가 준 연고는 효과가 무척 좋다. 한국에서 가져온 벌레 물린 데에 바르는 약은 의외로 별 소용이 없다. 역시 현지 벌레는 현지 약으로 잡는 건가 보다.


“나가서 이 약을 좀 더 사고, 혹시 벌레 쫓는 약이 있으면 그것도 구해야겠다. 그다음에는 저녁 먹으면서 여기서 뭘 할지 정하자. 어때?”

“좋아.”


해가 진 레이크사이드는 식당과 카페, 술집이 걸어둔 조명과 초로 색색이 환했다. 우린 숙소 바로 옆 약국에서 나비 연고(현지어 명칭이라 이름을 몰라서 그냥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6개를 사서 3개씩 나누었다.


벌레 쫓는 약이라는 파란색 튜브형 연고는 9개나 샀다. 해충 스프레이도 큰 걸로 한 통 샀다. 벌레라면 아주 지긋지긋하다. 옷이 가려주지 못하는 신체부위 곳곳에 좍좍 짠 연고를 잔뜩 펴 발랐다.


“뭘 먹을까?”

“여기 달밧 먹어보고 싶어.”

“그러자.”


우린 적당한 식당을 찾아 중심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2층 식당으로 들어갔다.

원목에 푹신한 방석을 놓은 의자에 앉으니 청년이 메뉴를 들고 온다. 고수머리에 가무잡잡한 피부, 딱 붙는 셔츠와 청바지. 쌍꺼풀이 짙은 시원스러운 눈매를 하고 있다.

나는 마가리타와 튀긴 생선을 넣은 달밧을, 아델은 아이스크림을 얹은 카페라떼와 치킨이 들어간 달밧을 주문했다.


마가리타는 식전에 나왔다. 크고 두터운 유리잔 가득 담겨 나온 칵테일 잔에는 장식용 우산이 꽂혀 있다. 나는 유리잔 테두리에 리밍한 소금과 함께 마가리타를 들이켰다. 시큼하고 청량한 라임즙을 넣은 데낄라가 목으로 시원하게 넘어간다.


아델은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카페라떼가 마음에 든 듯, 계속해서 홀짝홀짝 마셨다. 밖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우리가 들어올 때만 해도 텅 비어있던 식당은 곧 사람들로 가득 찼다. 스피커에선 유행 지난 팝송이 흘러나온다.


“내일부터 뭐 할 생각이야?” 아델이 물었다.

“음……, 산책?”

“여유롭네. 하기야 나보다 오래 머물 테니까.”

“꼭 가봐야겠다 싶은 곳은 없더라. 트레킹이나 하지 않을 바에야.”


난 가이드북을 꺼내 포카라 편을 펼쳤다.


“같이 보자.”


우린 머리를 맞대고 포카라 편을 읽었다.

주문한 달밧이 나왔다. 음식은 묵직한 놋쇠 그릇에 담겨 있다. 이곳은 호숫가라서 민물생선을 쓴다는 걸 뒤늦게 떠올리고 아차 했다. 하지만 의외로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달밧의 향이 비린내를 깨끗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달밧의 향신료 맛은 독특했다. 매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적당히 섞여 조화가 좋다. 나는 아델의 달밧을 약간 맛보았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내 것을 먹어본 아델은 생선 달밧이 더 맛있다며 아쉬워했다.


“포카라에서 할 수 있는 건 트래킹, 패러글라이딩, 페와 탈에서 로잉보트를 탄 채로 일출 즐기기, 사랑코트에서 일출 보기, 그리고 인근 티베탄 쉘터 방문을 비롯한 몇 군데 관광지가 있다는 정도.”

“생각보다는 많지 않네.”

“여긴 거의 히말라야 트레킹 베이스캠프 분위기더라고.”

“음.”


아델은 고민하는 눈치로 가이드북을 뒤적인다.


“좀 봐도 될까?”

“좋을 대로.”


나는 기꺼이 가이드북을 건네줬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제법 규모가 있는 대형마켓에 들렀다. 거기서 감자 칩과 과일주스, 시리얼과 우유를 샀다.

다음날은 8시쯤 잠이 깼다. 요란한 꿈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꿈의 여운 때문인지, 침대에서 곧장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이나 멍하니 천장을 보는 중이었다.


“일어났어?”

“……벌써 나가?”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아델을 봤다. 아델은 막 사진기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어디 가는데?”

“그냥 여기저기. 그럼 나중에 봐. 저녁이나 같이 먹자.”

“그래.”


아델이 방을 나갔다. 나는 조금 더 잘까 하다가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욕조 안에는 정체불명의 벌레 시체들이 배를 뒤집고 누워있었다. 다행히 이제 그런 것쯤 그냥 모르는 척할 수 있을 만큼 여행에 익숙해지긴 했다. 물론 아직 차마 직접 치울 용기는 생기지 않았지만.


샤워를 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호스텔에서 빌린 그릇에 우유를 부어 시리얼 한 그릇을 쓱싹 비우고 나서야 호수로 난 창문을 떠올렸다.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열자,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너울대는 호수가 바로 보인다. 저 멀리 날개가 크고 다리가 긴 새들이 줄지어 날아간다.


나는 투명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 뒤,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댐사이드 너머로 가볼 작정이다. 댐사이드를 벗어나면 데비즈 폭포와 마헨드라 동굴이 있다. 오늘은 거기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올 생각이다.

숙소를 나와 북쪽에 위치한 레이크 팔레스에서 남쪽 댐사이드 방향을 향해 쭉 걸었다.


한 떼의 소 무리가 곁을 지나가고, 떠돌이 개가 잠시 졸랑졸랑 뒤를 따라오기도 한다. 레이크 사이드에 즐비한 상점이나 서점, 카페에서 틀어놓은 ‘옴마니 반메 홈’과 전통 노래 ‘레썸 피리리’가 중심가에서 엎치락뒤치락해대는 중이다. 나는 두 노래의 틈으로 미끄러지듯 걸었다.


댐사이드와 레이크사이드의 경계에 이르자, 트레킹을 위해 단체로 온 듯한 한국인 여행객들이 제법 보인다. 나는 거리를 두고 선 채 그들의 왁자한 뒷모습을 보았다. 그들이 말하는 모국어는 몹시 익숙하면서도 한없이 낯설다. 한국에서의 날들이 아득히 멀다. 나의 일이었으나, 어느덧 아무 상관 없어진 타인의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듣는 것처럼.


댐 사이드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첫날 도착한 포카라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댐을 지나 옛 게스트하우스들이 들어선 뒷거리를 통과했다. 골목과 골목 사이로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는데, 밑을 보곤 경악했다.


개천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들이 끊임없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언뜻 봐서는 수면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마치 누군가가 저 위에서 계속 쓰레기를 부어대는 통에, 밑의 쓰레기들이 감당을 못하고 아래로 쏟아지고 있는 것만 같다. 쓰레기 대부분은 일회용품이거나 비닐, 플라스틱이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개천에서 가까스로 시선을 뗐다.


주택가를 벗어난 이후부터 데비스 폭포까지의 이어지는 풍경은 어딘지 옛 서부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장엄한 히말라야의 산맥을 향해 끝도 없이 뻗는 광활한 벌판. 그곳을 가로지르는 단 하나의 도로.


그리고 알루미늄 성냥갑 같은 버스나 덤프트럭이 거친 매연을 토해내며 그 길 위를 달린다. 수레를 걸머멘 물소와, 수레 위에 올라탄 농부, 길가에서 빨래를 널다 이쪽을 흘끔거리는 여인들,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

아무리 걸어도 산은 다가오기는커녕 갈수록 멀어진다.


데비스 폭포에 잠깐 들러 한숨 돌린 뒤,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돌아오는 길은 훨씬 짧게 느껴졌다. 뜬금없이 내일 새벽에는 일출과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를 보러 페와 탈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숙소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메인 선착장을 찾아 나섰다.


선착장은 레이크사이드의 중앙에 있다. 호텔과 밭고랑(…) 사이의 샛길을 지나면 큰 나무가 솟아있고 그 바로 아래가 선착장이 있는 강가다. 목적지에 이르렀을 즈음, 청명하던 하늘이 불현듯 거칠어지나 싶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당연히 비옷과 우산은 없다.


나는 벤치에 앉아 비를 피하며 한동안 호수를 응시했다. 사위는 빗소리에 그윽이 잠겨 있다. 학교를 마친 강 건넛마을 아이들이 선착장으로 와글와글 내려온다. 나와 눈인사를 나누는 아이들은 내 무릎 위에 놓여있던 펜이나 노트를 가져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이름을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몇몇은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반쯤 남은 비스킷을 꺼내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비가 쉽게 그칠 기세가 아니라고 보았는지, 결국 아이들은 로잉보트에 나누어 타고는 직접 노를 젓기 시작했다. 노를 젓는 아이는 상급생 아이들이었다. 이런 일이 무척이나 익숙한지, 교복이 물에 젖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끄럽게 강물을 가로지른다.


나는 멀어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사이 기척 없이 다가온 늙수그레한 노인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는 이곳의 언어로 말을 걸었다. 나는 영어로 답했다. 그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언어를 단 한 음절도 알아듣지 못했고.


대신 나는 배와 호수를 가리키며 노 젓는 시늉을 해 보였다. 노인은 다시 일어나서 사라졌다가 앳된 청년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근처 고급 리조트의 급사로, 휴식 시간이나 이른 아침엔 호텔의 보트를 빌려 사공 노릇도 겸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일 새벽에 호수로 나가고 싶다고요?”

“네. 내일도 이렇게 비가 올까요? 날이 맑아야 하는데.”

“아마도 맑을 테지만, 히말라야를 볼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해요.”

“왜요?”

“여기서는 9월의 건기부터 히말라야가 가장 잘 보여요. 우기엔 구름이 시야를 가리고요.”

“하지만 확률이 제로는 아니죠?”

“제로는 아니죠. 운이 좋으면 볼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 봐도 상관없다. 호숫가의 뱃놀이만으로도 어쩐지 충분할 것 같은 예감이다.


“알았어요. 그럼 내일 이곳으로 올게요.”

“준비해두죠.”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선착장을 벗어나 중앙로로 들어선 나는 선 채로 한 폭의 수묵화로 뿌옇게 젖어가는 길을 응시했다. 그러다 문득 신발을 벗어 손에 쥐고 맨발로 땅을 디뎌 보았다. 바닥에 고인 빗물이 발가락 사이사이를 보드랍게 채운다. 포장도로가 아닌 촉촉한 풀밭 위에 서있는 것 같다. 그래서 눈을 감고 코를 벌름거려본다. 어딘가의 대지에서 진한 풀냄새가 피어오른다. 호수의 냄새는 그보다 더 멀고 멀다.


나는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어 발만이 아니라 온몸이 금세 흠뻑 젖었다. 귀를 가득 채우는 빗줄기에 집중해 본다. 살갗에 부딪히는 빗방울에도 신경을 집중시킨다.


옷은 젖어 점점 무거운데, 몸은 꼭 그만큼 더 가벼워진다. 점점 가벼워진 나는 하늘로 훌훌 떠올라 비구름이 되거나, 빗물을 따라 흘러 강으로 바다로 간다.


어느새 나는 누구의 노래도 아닌 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다. 발이 떠오르면 높은음들을 부르다가, 발이 가라앉으면 낮은음을 흥얼거린다. 일부러 물이 가득 고인 웅덩이만 골라 발을 딛는다.


그때 길옆으로 차 한 대가 속도를 줄여 천천히 지나간다. 아무래도 내가 다치거나 물이 튈까 봐 속도를 줄인 것 같았다. 나는 운전기사가 있음 직한 자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뜻, 부연 유리창 너머의 흐릿한 얼굴이 웃었던 것도 같다. 밴은 곧 나를 스쳐 멀어졌다. 나는 그대로 숙소까지 갔다.


쫄딱 젖어 맨발로 도착한 날 본 여주인은 식겁하며 부랴부랴 따뜻한 민트 티를 끓여왔다. 그녀는 민트 티를 만병통치약으로 아는 걸까? 옆에서 일을 돕던 직원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내게 황급히 걸쳐준 뒤에야, 몸이 오슬오슬 떨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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