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페와 탈에서 아침을 - 4
“따르르르르르!”
천둥처럼 광광 때리는 알람 소리에 후둘겨 맞아 벌떡 일어났다. 아델이 중국에서부터 가져온 효과 만점의 아날로그식 알람시계였다. 이 시계만 있으면 관에 들어간 사람도 일으킬 수 있다더니, 진짜인가 싶다.
웃긴 건, 정작 일어난 사람은 나뿐으로, 아델은 여태 꿈쩍도 않는다는 거지만.
“아델, 일어나!”
“으으…… 왜에?”
“오늘 일출 보러 가자고 했잖아. 호수에서 아침 먹자.”
“아 그랬지.”
잠이 깬 아델은 미적거리던 게 무색할 만큼 신속하게 준비했다. 창밖의 페와 탈은 안개에 잠겨 있다. 아델이 하늘을 보며 걱정한다.
“히말라야 볼 수 있을까? 날이 흐린데.”
“일단 나가보자.”
“응.”
모두가 잠든 새벽. 밖은 푸르스름하다. 자전거를 탄 한두 사람만이 인근 가게에 납품하는 모닝빵을 실어 나른다. 나는 어제의 길을 더듬어 선착장을 찾았다. 선착장에 도착했지만 사공은 아직이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정각이다.
“너무 일찍 왔나?”
아델은 카메라 렌즈 너머로 호수 저편을 보고 있다. 난 뭍에 대놓은 로잉보트를 발끝으로 건드리며 사공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곧 사공이 도착했다. 그는 졸음이 덜 가신 얼굴로 파란색 보트를 가리켰다. 보트는 살짝 젖어, 바닥에 물이 고여 있었다. 우린 보트 안의 의자를 대신하는 나무판자 위에 걸터앉았다. 배의 난간이나 바닥으로 물벌레들이 튀어 올랐다가 톡톡 뛰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공은 뱃전을 밀어 물에 띄우더니 훌쩍 올라탔다. 그의 손에는 어느샌가 노가 들려 있다.
로잉보트는 물결을 따라 가랑잎처럼 잔잔하게 술렁인다. 심원한 침묵이 고요한 호수의 표면을 덮고 있다. 배가 한복판으로 나아갈수록 건너편의 잡목림의 울창함이 크게 다가온다.
“어디로 갈까요?” 사공이 묻는다.
“최대한 멀리요.” 나는 대답했다.
노를 젓는 사공의 팔에 힘이 실린다.
페와 탈은 우아하고 신비롭다. 숲은 풍부하고, 강바람은 짙다. 호수는 깊어 안이 보이지 않지만, 수면에도 생은 이미 가득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소금쟁이들이 수면에 여러 개의 다리를 디딘 채 의연히 서있다.
여기는 살아있는 신성이다. 신화나 설화 저변에서 잠든 옛이야기가 아닌, 과거에서 현재까지 건재한 강인함으로 여기 있다.
동녘이 어슴푸레 밝아온다. 시퍼런 공기가 조금씩 온기를 띤다. 날은 흐리다. 히말라야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해는 아무도 모르는 땅에서 홀로 뜬다.
“해가 다 뜬 건가요?” 아델이 묻는다.
“네. 아무래도 오늘은 히말라야가 구름 뒤로 숨은 것 같습니다.”
“안타까워라.”
연신 셔터를 누르던 아델이 가볍게 한숨을 쉰다. 내가 물었다.
“잠시 여기서 멈출 수 있을까요?”
사공은 제 손목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15분쯤 시간이 있네요.” 나는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그럼 같이 아침이나 먹읍시다.”
사공이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본다. 나는 어제저녁 미리 사둔 음료와 빵을 꺼내 펼쳤다. 아델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런 건 언제 준비했어? 뭐가 또 이렇게 많아?”
“다 같이 먹으려고.”
사공에게 치즈케이크와 시나몬 파이를 건넸다. 사공은 망설였다. 팔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하지, 그제야 제 몫을 가져간다.
우리 셋은 잠시 말없이 빵을 씹고 삼켰다. 가져온 빵이 바닥날 즈음, 아델은 조금 남은 페이스트리를 입에 문 채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을 확인했다. 보고 있던 내가 물었다.
“봐도 돼?”
“물론이지.”
아델에게서 카메라를 건네받은 나는 마지막 사진부터 거꾸로 보았다. 카메라에는 다양한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아까의 페와 탈도 있고, 한낮의 거리, 사람들, 어린아이들, 특이한 기념품들, 나무와 꽃을 찍은 것도 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거리도 있다.
“여기가 어디야?”
“거긴 로컬 지역이야. 레이크사이드와는 좀 멀어.”
“어떻게 갔는데? 걸어서?”
“응. 더위 먹어 죽는 줄 알았지.”
계속 버튼을 눌러 사진을 훑었다. 그러던 순간 손이 딱 멈춘 곳이 있었다. 나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게 뭐야?” 아델에게 묻자,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로컬 지역 갔다가 찍은 건데…… 시위 현장이지.”
“시위?”
“잘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이 하는 것 같았어.”
“…….”
그런 사진은 두세 장 더 찍혀 있다. 소형 트럭에 흰색으로 글씨를 써넣은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짐칸에는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주먹을 내지르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확성기에 입을 댄 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동영상도 있어. 볼래?”
“응.”
동영상은 사진보다 생생했다. 확성기에 대고 네팔어로 무어라 떠드는 사람은 여자였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톤만큼은 익숙하다. 우리나라의 시위 현장에서도 많이 듣던 톤이니까. 그런데 여자의 음성을 들은 사공의 얼굴에서 좀 전까지의 무표정이 사라진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노동자들이여, 일어서라. 더 이상 국민을 착취하고 핍박하는 왕정의 권력에 머리 숙여서는 안 된다……. 그런 거죠.”
사공은 다시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의 손등과 팔에 힘줄이 불거진다.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던 스스로를 질타하듯이.
“그럼 노동자들은 마오이스트를 지지하는 건가요?”
아델이 물었다. 사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마오이스트의 사상은 노동자를 위한 사상이니까.”
아델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린 너무 오랜 세월을 왕가로부터 고통받아 왔어요. 우리가 100을 벌면 그들이 99를 가져가고, 우리는 고작 1만으로 나누어 가졌죠. 평생 뼈를 갈아가며 일해도 끼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
“하지만 마오들은 달라요. 그들은 우리가 100을 벌건, 50을 벌건, 누구나 똑같이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다고 했어요. 나라를 이루는 근간은 국민이며, 국민이야말로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깨우쳐 주었죠. 이건 네팔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진보적 사건입니다.”
그는 진중한 어조로 ‘진보적(progressive)'라고 말했다. 그가 그 단어를 무척이나 공들여 고르고 골라 말하고 있음은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다듬어져 있어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무언가가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유발하는 온갖 변수들을 짐작조차 못하는 채로, 그저 인이 박히도록 들어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툭 튀어나오게 된 그런 용어 같았다.
아델의 얼굴은 어두웠다. 나는 둘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뭔가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잘 알지도 못했다. 아델이 불쑥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마오이스트들을 믿나요?”
“그럼요.”
사공의 눈이 절대적인 신뢰로 빛난다. 아델은 “그렇군요…….”라고 혼잣말에 가까운 대답을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남은 빵을 잘게 부수어 강에 뿌렸다. 이따금 물질을 하러 올라온 물고기들이 빵조각을 삼키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입안에 남아있던 머핀의 달콤함이, 어쩐지 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