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3. 페와 탈에서 아침을 - 5

by 소라게

로잉보트에서 내린 후도로 아델의 낯빛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자연히 우리 사이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델에게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풍겨, 선뜻 말을 걸기 어려웠다. 나는 가만히 아델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를 기다렸다.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간 식당은 숙소와 가까운 카페테리아다. 이곳은 거리를 바라보는 전면이 훤히 개방되어 있다. 보도 위로 드리운 차양 아래에는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씌운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의자는 양 옆으로 나란히 놓아 함께 거리를 구경할 수 있게 했다.


아침메뉴는 풍성하다. 브라운 브레드, 허쉬 브라운 포테이토, 스크램블 에그(혹은 계란 오믈렛), 바나나 라씨, 티, 버터와 잼이 저렴한 메뉴 하나에 다 들어가 있다.


“오늘은 여기서 먹자.”

“응.”


우리는 거리를 바라보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곧 잔치가 벌어질 줄 귀신 같이 알아챈 파리가 하나둘씩 주변을 얼쩡거리기 시작한다.


“어서 오세요.”


우리를 맞은 사람은 삼십 대 중반 정도의 남자다. 멀끔하게 넘긴 머리와 작달막한 키, 큼직한 눈매가 선하다.


“나는 라즈라고 합니다. 낯익은 아가씨들이군요.”

“우릴 알아요?”

“여긴 좁은 동네니까요. 이 옆 레이크 팔레스에 머물고 있죠?”

“네. 와, 좁긴 좁네요. 나는 재인이라고 해요. 이쪽은 아델.”

“좋은 아침이에요.”

“당신도요.”


그는 손때 묻었지만 정리가 잘된 메뉴를 정중하게 내밀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침 식사 메뉴로 부탁해요. 난 스크램블 에그.”

“난 야채 오믈렛으로.”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라즈는 총총 사라졌다. 나는 내부를 훑어봤다. 버건디 색으로 칠을 한 벽에는 히말라야 유화 여러 점과, 레이 찰스의 흑백사진, 두보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게다가 천장에 매단 줄에는 웬 바나나 뭉치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설마 장식인가? 여하간 관련 없는 오브제들이 모였는데도, 어쩐지 그것대로 재밌게 잘 어울린다.


“민트 티를 먼저 준비해 드리죠.”


재등장한 라즈가 테이블에 민트 티를 내놓는다. 아델은 그걸 마시고서야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아침에 있었던 일, 계속 생각하고 있어?”

“응. 알아챘어?”

“이마에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한 거야?”

“그냥……”


아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는다.


“우리나라도 한때 그랬었잖아. 과거가 다시 재현되는 거 같아.”


“……”


“중국 정부가 처음 공산주의를 선포했을 때, 우리 윗세대 역시도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올 거라고 기대했지.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까 내용물은 끔찍하더라. 지금의 중국은 정치적으론 여전히 사회주의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차용하잖아. 게다가 그 성장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한때는 소름이 끼치더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


“8대 2의 법칙에 대해서 알지? 소수의 사람이 부의 8할을 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2할을 나누어 갖는다는. 중국은 그 현상을 극명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지.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지기만 하고, 가진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을 모르고. 중국의 가난한 시골마을 사람들의 연수입이 얼마인 줄 알아? 고작 100달러 남짓이야. 믿어져? 한 달도 아니고, 1년 수입이 100달러야……!


더 부조리한 건, 못 가지고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훨씬 열심히 일한다는 거야. 잘 사는 사람들은 손가락 끝으로 사람을 부리고 간단히 돈을 벌어. 그런 인간들이 노동은 신성한 행위이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다, 그러므로 노동자야말로 사회의 없어선 안 될 구성원이다, 이런 말로 기만하면서 사람들을 일터로 내몰지.


그 꼴을 볼 때마다 겁이 나고 숨이 막혀. 우린 바보가 아니잖아.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건 눈뜬 장남이 아닌 이상 모르는 사람이 없어. 그런데 그런 말을 함부로 했다간 당으로부터 큰일을 당할까 봐 입을 다물지.


그런 상황에서 하는 노동의 어디에 성취의 기쁨이 있겠어. 없어 그런 건. 게다가 당의 요구는 끝이 없거든. 마치 노동자들에게 절대로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야.”


“……”


쏟아내듯 말하던 아델이 갑자기 물었다.


“중국 국기의 다섯 별이 뭘 뜻하는 줄 알아?”

“아니, 몰라.”


“가장 큰 별은 당을 상징해. 나머지 네 개의 별은 중국의 노동 계급을 상징하는 데, 각각 노동자, 농민, 도시소자산계급, 민족자산계급을 뜻하지. 여기에 나 같은 예술가들은 아예 포함되지도 않아. 내 직업은 해외에선 각광받을지 몰라도, 국내에서는 아니야. 적어도 중산층 이하에서는. 내가 처음 화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상상을 초월했어.”


아델이 쓰게 웃는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해냈어?”

“쓰촨에서 내게 영어를 가르쳐준 외국인 선생님의 설득 덕분이었어. 다행히 내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적당한 예술학교까지 추천해주셨거든. 어머니도 외국인 교사가 그렇게까지 나서니 귀담아듣지 않을 수 없으셨던 거지.”


아델은 반쯤 식은 민트 티를 단숨에 들이켠다. 마치 쓴 술을 삼키는 사람 같았다.


“네팔도 다르지 않을 거야. 역사가 증명하잖아. 네팔의 노동자들이 꿈꾸는 대로 쉽게 일이 풀릴 없잖아……. 결국 중국과 인도 간의 알력 다툼에 이용되고 있을 뿐일 텐데…….”

“아까 그 사공에겐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해도 소용없으니까.”

“소용없다니?”

“그의 눈빛 봤잖아. 사람이 그런 눈을 하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안 들려. 어차피 각자가 겪고 견뎌내야 하는 일일 거고.”

“……”


아델은 더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 입을 다문다.


아침식사가 나왔다. 브라운 브레드는 달콤하고 부드럽다. 갓 구운 것이라 안에 버터와 잼을 바르면 순식간에 녹아 빵에 스며든다. 허쉬 브라운 포테이토는 짭짜름한 간이 딱 좋다. 스크램블 에그는 우유를 넣었는지 굉장히 고소하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는 단연 바나나 라씨다. 라즈의 라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그냥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세상에. 라즈. 대체 뭐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맛있죠?”


라즈가 빙긋 웃는다.


“그건 비밀입니다만, 한 가지만 가르쳐 드리죠. 가게에 걸려있는 바나나 있죠? 그건 제가 집에서 직접 키운 바나나예요. 여기 라씨는 이 바나나만 써서 만들죠.”

“바나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무슨 짓이라뇨? 칭찬이죠?”


라즈는 씩 웃더니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두 분에겐 쭉 바나나 라씨만큼은 공짜로 드리죠.”

“엥? 진짜요?”

“진짜죠.”


나는 뜻밖의 행운에 놀라 입을 헤벌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아델이 함께 하건 그렇지 않건 쭉 라즈의 가게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의 요리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질 않았다. 라즈는 그의 약속을 지켰다. 나는 갈 때마다 그의 바나나 라씨를 공짜로 먹었다.


실은 그러기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러니까 좀 민망해져서, 몇 번 돈을 내려고 해 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바나나 라씨 값을 따로 돌려주었다. 난 대신 그곳의 급사 소년에게 팁을 더 넉넉히 주기 시작했다.


라즈는 여러 면에서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재치 있고 다재다능했다. 식당 벽에 걸린 히말라야의 유화는 라즈의 작품이다. 또 수준급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가게 테이블에 앉아 기타 줄을 튕기는 그를 종종 보곤 했다. 그는 내가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건 말건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시원하게 웃었다. 한 번은 라즈의 가게 맞은편 식당의 카페테리아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는데, 우연히 길을 지나던 그와 그대로 한참이나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나는 그를 식사에 거의 초대할 뻔했다. 물론 그러기 직전에, 급사 소년이 라즈를 데리러 왔지만.


어쨌든 아침을 먹으며 그와 수다를 떠는 건 포카라에서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간혹 다른 곳의 라씨를 시도해보고 싶어 져도, 결국 어디서도 라즈의 라씨만큼 맛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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