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3. 페와 탈에서 아침을 - 6

by 소라게

포카라에서의 한 주가 지났다. 일과는 거의 비슷하다.

아침이면 라즈네 가게에서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고, 그 후에는 레이크사이드를 산책한다.

대개의 날을 혼자 보냈다. 저녁이면 아델과 식사를 하거나 로컬 드라이진과 토닉 워터, 라임을 사다가 직접 진토닉을 만들어 마셨다. 언젠가부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밤마다 진토닉을 마시는 습관이 들었다.


진토닉 조주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아델이다. 폭우로 인해 레이크사이드 전체가 정전이 된 어느 날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리 사준 초(포카라는 정전이 잦다)로 방을 환히 밝힌 우리는 내 노트복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아델이 문득 “진토닉 마실까?” 라더니 말릴 새도 없이 우산을 챙겨 나갔다.


10분 뒤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작은 진 한 병과 토닉 워터, 라임이 들려 있었다. 진토닉은 금방 완성됐다.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진 1, 토닉워터 3의 비율로 섞어 입맛대로 라임즙을 넣으면 끝이란다. 나는 값싸고 향긋한 이 술에 완벽히 사로잡혔고, 그때부터 맥주 대신 늘 토닉워터와 진을 상비해두었다.



아델은 아직도 웅장한 히말라야의 정경을 보지 못한 채다. 그녀에게 앞으로 남은 휴가는 5일뿐이다.

하루는 일찍 일어난 아델이 침대에 앉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켜서 여행 도중 짬짬이 쓰는 시나리오 작업창을 띄운 뒤 밖으로 나가 직원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돌아왔다.


“오늘은 어디 갈 거야?”

“음……, 사랑콧에 가보려고.”


사랑콧이면, 일출 포인트 아닌가?


“일출 보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일출은 내일. 그런데 오늘 한번 미리 다녀와 보려고.”

“그래. 가보고 좋거든 말해줘.”

“응.”


아델이 나가고 난 뒤, 나는 언젠가부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작업창을 멀뚱히 보다가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깨어나니 벌써 오후다. 아델은 그 사이 돌아와 있었다.


“여태 잤어?”

“응. 일찍 왔네?”

“어. 더워 죽겠다. 일단 샤워부터 할래.”


말마따나 아델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샤워를 끝낸 아델이 젖은 머리를 말리며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택시를 타려고 했지. 거리가 꽤 되는 것 같아서. 그런데 기사가 250루피를 부르더라고. 라즈에게 물어봤을 땐 100루피도 안 된다더니. 순간 기분이 확 상했지. 그래서 그냥 걸어가기로 하고 걷기 시작했어. 그제야 뒤에서 기사가 가격을 마구 깎는데 얼마까지 내려갔는지 알아? 90루피야, 90루피! 어처구니가 없어서, 원.”


“그래서, 타긴 탔어?”


“타긴 왜 타. 이왕 걸은 거. 아무튼 노스사이드를 따라 쭉 걷다 보니까 라즈가 일러준 논두렁길이 나오더라. 나 말고도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서 서로 묻고 도와가며 올라갔어. 그런데 관광객을 위해 만든 길이 아니라, 그 둔덕에 사는 로컬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만든 길이라 거의 밀림 수준이더라고. 모기도 엄청 많고, 벌레도 우글거리고, 길도 꽤 헷갈렸어.”


“고생했네.”

“어때. 듣고 보니, 가고 싶어 졌어?”


난 어깨를 으쓱했다.


“심심함에 빠져 죽을 것 같아지면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까?”


아델은 머리를 가로젓는다.


“절대 안 가겠네.”


난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나 지금 카트만두행 버스 예약하러 내려갈 건데, 부탁할 거 있어?”

“아냐. 같이 내려가자.”


나는 뒹굴던 침대에서 일어섰다.


프런트는 이제 갓 체크인하는 한 무리의 가족들로 소란스럽다. 우리는 프런트 옆의 부설 인터넷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피씨 카페와 각종 레포츠 예약, 교통수단 예약, 국제 전화, 환전소까지 겸하고 있다. 한 건물에서 몇 개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특별한 일은 아니다. 네팔의 게스트하우스들은 어디나 이렇게 여러 개의 사업을 동시에 하고 있다.


카페의 데스크엔 집주인의 동생이라는 젊은 여자가 앉아있다. 그녀는 아무 뜻 없이 곧잘 미소 짓곤 했는데, 그 모습은 어딘지 이슬 맺힌 물망초처럼 가련하고 청순한 데가 있다.


“언니는요?”

“잠깐 기다려요. 곧 올 거예요.”


나는 데스크의 동그란 회전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리며 발을 까닥거렸다. 의자 돌리기는 금방 지루해졌다. 의자 놀이에 흥미를 잃은 나는 이번엔 데스크 뒤의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양한 팸플릿을 차례로 읽었다.


카약킹, 경비행 코스, 래프팅, 심지어는 포니 트래킹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썩 끌리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국제전화 전용 부스의 유리벽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지면 광고 한 장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것은.


온통 푸른 하늘이다. 그 한복판을 패러글라이더, 그리고 독수리가 나란히 날고 있다. 거대한 날개가 새의 등 뒤로 드넓게 하늘을 덮는다.

독수리는 사나운 두 발을 좍 벌린 채, 패러글라이더의 팔목을 부러뜨릴 듯 혹은 악수를 청하듯 사람을 향하고 있다. 패러글라이더와 독수리는 서로를 똑바로 마주 본다. 나는 그 사진에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해보려고?”


아델이 묻는다. 그녀의 시선도 사진에 멈춰있다.


“……글쎄.”

“절대로 하겠네.”


난 대답 대신 히죽 웃었다.


아델이 버스표를 예약하고 나니, 그제야 그녀가 곧 떠날 거라는 실감이 났다. 마음이 이상하다. 그래서 그에 대해선 그만 생각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함엔 익숙한 이름들의 편지가 도착해 있다. 가족에게서 온 것도 있고, 몇몇 지인들과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에게서도 와 있다. 지인들은 죄다 “언제 돌아올 거냐.”는 이야기로, 가족은 “무사하냐.”는 질문으로 도배를 했다. 난 비슷한 내용들로 잘 지낸다는 답장을 쓰고 일어섰다.


밖을 보니, 햇빛의 농도가 짙다.

포카라에서 지내는 여러 번째의 날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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