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침묵의 딸입니다 - 2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장난하냐…….”
참 맑다. 이렇게 화창할 수가 없다.
쨍, 하고 소리가 나며 두 쪽으로 쪼개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청명하다. 한바탕 비를 쏟고 난 후라서 구름 한 점 없다. 이렇게 말끔히 갤 거면서, 새벽엔 왜 그렇게 애먼 목숨 하나 잡을 것처럼 왕창 퍼붓었던 걸까. 도무지 우기는 종잡을 수가 없다.
비를 한껏 들이킨 숲과 호수는 한층 더 푸르게 빛난다. 물소 떼는 호숫가에 드러누워 졸거나 파릇이 솟은 풀을 뜯는다. 소의 등에는 새 한 마리가 통통 뛰면서 이따금 허공에 입질을 한다. 아마 파리나 파리나 파리 따위를 잡아먹는 거겠지.
호숫가 노천카페에 앉아 엽서에나 나올 법한 장엄하고도 목가적인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새벽의 난리통은 거짓말 같다. 테이블에는 내 몫의 샹그리아, 바나나 팬케이크와 과일 요거트가 있다. 아델의 것은 커피와 계란 오믈렛이다. 아델도 아까의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벗어나 말끔한 차림으로 느긋이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나는 샹그리아 잔을 들어 꿀꺽 삼켰다. 알싸한 탄닌과 상큼한 자몽의 향이 가볍게 목을 적시며 넘어간다.
호숫가를 멍하니 보던 아델이 문득 입을 연다.
“내 진짜 이름, 말한 적 있었나?”
“아니? 발음하기 어려울 거라면서……”
아델은 피식 웃었다.
“뭐, 반은 사실이지만 반은 거짓말.”
“엉?”
이건 또 뭔 소리야.
아델이 의자에 늘어진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곤 입을 뗀다.
“난 내 이름이 싫거든.”
“?”
난 어리둥절해졌다. 뜬금없이 무슨 말일까?
“내 이름은 른진이야.”
아델의 말투는 교과서 지문을 읽듯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어떤 마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솎아내어 말하려는 듯이. 아델이 묻는다.
“그 이름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아?”
알 리가 없다. 아델은 자문자답했다.
“‘침묵’이야.”
“침묵?”
놀랐다. 침묵이 사람의 이름도 될 수 있었나?
아델은 쓰게 웃었다.
“침묵 진은 중국에서 가장 흔한 여자 이름 중 하나지. 내가 아는 진이라는 사람만 해도 열 명이 넘어.”
“……”
“대체 어떤 부모가 자식 이름을 침묵으로 짓냔 말이지.”
“……”
“어렸을 땐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이해해. 그렇다고 내 이름이 좋아진 건 아니지만.”
아델은 호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 부모님은 문화대혁명시대 분들이야. 대의명분 하에 책이 불태워지고 학교가 폐쇄되고 집집마다 감시가 붙고, 벽에도 귀가 달린 세월을 사셨지. 조금이라도 혁명성에 의심을 받거나, 당의 눈 밖에 났다간 미래는커녕 목숨부터 보장받기 힘든 그런 때였어. 살아남으려면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 그런 시대에 목숨을 부지하려면 제일 필요한 게 바로 침묵이잖아. 내 이름은 그런 이유로 지어진 거야. 내가 태어난 건 문화대혁명시대 이후지만, 젊은 시절 그 시대를 사셨던 부모님 트라우마의 소산이랄까. 사실 지금이라고 뭐 대단히 다르지도 않고.”
나는 직원을 불러 샹그리아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최초의 공산주의자들이 꿈꾼 사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겠지……. 뭐 어디 공산주의만 그렇겠어. 세상에 유토피아가 어딨다고…….”
아델은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난 평범한 개인은 정치에 대해 모르는, 알 필요도 없는 사회야말로 최선의 사회라던 노자의 격언을 믿어. 그저 원하는 삶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만 해도 감사해. 하지만 내 나라에선 어려운 얘기지. 예전보다야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수십 여 곳의 소수 민족을 강제 통합하려는 정부 때문에 나라 곳곳이 시끄러워. 하지만 정부는 그들이 협조적으로 통합에 나서고 있다고 허위 뉴스를 보도해.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고.”
“……”
“예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일어난 티베트 사태는 공포였지. 정부에서 통보도 없이 관련 홈페이지나 사이트를 모조리 닫아버렸거든. 티베트 안에서는 폭력과 강제진압이 난무하며 계엄령까지 선포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작 나라 밖에서 다 아는 사실을 자국민인 우리는 몰라. 나야 외국인 직장동료들에게서 전해 듣는 것들이 있어서 조금 알뿐. 하지만 알더라도 모르는 척하는 게 우리 대처방식이야. 공권력 편에 있는 감시의 눈이 워낙 철저하니까.”
아델이 가방을 뒤져 책 두 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책은 영문으로 된 달라이 라마의 자서전과 티베트의 역사에 관련된 책이었다.
“이런 책, 중국에선 구하기 어려워. 설사 있다 하더라도, 아마 지금쯤 전국의 서점 진열대에서 몰수됐겠지. 난 중국공항 검색대에서 이 책을 들키지나 않을까, 들키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 때문에 밤잠을 설쳐. 어떻게든 가져가고 싶은데, 잘못해서 걸리면 꼼짝없이 사상범으로 몰릴 테니까.”
“사상범??”
아델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단어의 무시무시함에 등골이 오싹하다.
“제일 안타까운 건 이곳 사람들이야. 이번 일을 겪고 나면,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포카라의 이 풍경도 그럴 거야. 나는 마오이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중국의 자연을 짓밟으며 공장을 짓고, 도로를 내고, 건물을 세워 올리는지 봐왔어. 그건 일방적인 침략이자, 학살이야. 그런 중국 정부가 이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여기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옛 모습을 잃어가겠지.”
나는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뭔가 의견을 보태기엔, 우린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달랐고, 그래서 아델과 나의 고민은 근본부터 달랐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중국 정부나 공산주의를 말할 때마다 가라앉던 아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델은 조금쯤 개운해진 미소를 지었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잿빛 머리가 가볍게 흩날렸다.
나는 물었다.
“그럼 이제 네 본명으로 불러도 돼?”
“발음할 수 있다면 해보던지.”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중국어의 ‘ㄹ’ 발음은 프랑스어의 ‘R’만큼이나 발음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혼자 어쩌지, 하고 고민하는데 른진이 물어온다.
“재인의 이름은 한글인가? 발음만 들으면 영어 같은데.”
“아니. 한글로 짓기도 하는데, 내 이름은 한자야.”
“그래? 그럼 뜻이 있겠다! 무슨 뜻이야?”
기대에 차서 보는 른진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나는 슬쩍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며 답했다.
“작명소에서 지은 거라 별 뜻 없는데.”
잠깐 뭐라 대꾸할지 모르겠단 얼굴이던 른진은 곧 깔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