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4. 나는 침묵의 딸입니다 - 3

by 소라게


숙소의 옥상은 3층을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다.

1, 2, 3층을 잇는 계단 입구 반대쪽 3층 복도 끝에 4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으며, 붉은 장미덩굴이 너울너울 난간을 휘감고 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페와 탈은 절경이다. 이따금 향긋한 커피와 고즈넉한 풍경이 고파지면 올라왔다.


포카라에서 친해진 손님을 초대하기로 한 날. 우리는 옥상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손님은 든든이다. 그와는 초면이 아니다. 아델을 찾으러 사랑콧에 갔던 날, 그녀를 도와 하산하던 남자가 바로 든든이다.

티베트 난민 제2세대인 그는 카트만두에 살고 있으며, 포카라엔 휴가를 왔다. 든든은 내가 생전 처음으로 만난 티베탄이다.


우리는 옥상에서 맥주와 튀긴 감자, 그리스식 무사카를 먹었다. 별들이 하늘 가득하고,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재즈가 잔잔히 흘러든다.

음악을 음미하며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볼 때였다.


“앗, 모기!”


아델이 벌떡 일어나더니 제 얼굴 앞으로 날아든 모기를 손바닥으로 탁! 때려잡는다. 여기는 경치는 좋지만 물가가 가까워 은근히 모기가 많다. 내가 “잡았어?” 하고 묻자, 손을 편 아델이 우거지상을 하고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때 내 시야 안으로 모기가 날아든다. 막 잡으려고 손을 들자, 모기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달아난다. 든든의 앞이다. 여태 말없이 우릴 보던 든든이 불쑥 두 손을 오므려 날아든 모기를 손안에 가둔다. 그리곤 살며시 손을 펴더니 모기를 입김으로 후, 불어 멀리멀리 날려 보낸다. 나는 이 일련의 광경을 황당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보내준다고 쟤가 다시 안 와? 지금 뭘 한 거야?”


아델도 어이없어 묻는다.


“난 생명을 함부로 죽일 수 없어.”

“뭐?”

“전생엔 누군가의 어머니였을지도 모르니까.”


나와 아델은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요? 모기가?

정작 든든은 은은히 웃을 뿐이다. 어떤 이해도 불이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거부의 미소라기보다는 흘려보내는 미소에 가까웠다.


문득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라마승들이 영화관을 지을 땅을 모조리 뒤엎어 수많은 지렁이나 벌레들을 다른 장소로 일일이 옮기는 장면이다. 그들은 지렁이 한 마리마다 정성껏 불경을 왼다. 어떤 하찮은 생물이라도 전생엔 누군가의 어머니였을지 모르므로 하나같이 귀하다면서. 그래서 함부로 살생하지 않는다면서.


이 여행을 준비하던 무렵이 기억난다. 출발하기 직전만 해도, 나의 계획엔 라오스도 베트남도 없었다. 나는 중국을 여행하고 난 뒤 티베트를 거쳐 네팔로 입성할 작정이었다. 티베트 사태로 인해 외부의 출입이 금지되었음은 중국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많은 배낭여행자가 그렇듯, 나에게도 티베트에 대한 묘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막상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스크린 너머로 태양과 가장 가까이 사는 티베탄의 그을린 얼굴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메마른 터전과 달리,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 카메라를 향한 순박한 미소…….


외부 세계가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티베탄의 삶은 참 간결하고 초월적이었다. 일생에 걸쳐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니. 물론 직접 접한다면 그들도 우리와 별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먹고살기 바쁜 나날로 인생이 채워지는.


어쨌든 단순 명료한 삶과는 퍽 동떨어져 있는 내게, 티베탄은 삶은 꿈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다. 어딘가에는 평온한 세상이 꼭 존재하리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나는 든든에게서 티베트를 언뜻 엿본다. 내가 꿈꾸던 정신의 흔적을 느낀다.

우리는 모기를 잡는 대신 방에 들어가 긴 옷과 숄을 걸치고 돌아왔다.

내가 물었다.


“든든은 티베트에 가본 적 있어?”

“아니. 난 네팔에서 태어났지.”

“그럼 티베트에 가고 싶어?”

“아무래도. 하지만 고국에 돌아간다고 모든 것이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그의 어조는 체념과 비탄과, 분노가 어려 있다. 고국에 갈 수 없게 되었거나, 고국에 있더라도 중국 정부의 탄압에 짓눌린 티베탄. 그럼에도 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길고 질긴 싸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그들에게, 피 흘리는 투쟁은 일상이 되었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화가 비워진 자리로 향긋한 숲과 물의 냄새가, 음악이 채워진다. 우린 미지근해진 맥주를 들어 건배하고 조금씩 마셨다.





든든이 돌아간 뒤에도 나와 아델은 맥주와 야채 튀김을 더 시켜 방에서 밤늦도록 먹고 마셨다.

우리는 가짓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은 화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우리가 다양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기보다, 평생을 알아 온 친구처럼 두서없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 더 놀랐다.


른진이 들려주는 중국은 엄청나게 방대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 거나,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역시 른진, 그 개인의 이야기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선생님이셨어.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지. 결국 급료가 높은 직장을 좇아 서로 멀리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어. 그동안 나는 어머니와 지냈고, 내 동생은 고향의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 아버지가 먼 직장으로 떠나셨을 때를 기억해. 아버지는 배를 타고 가셨는데, 그 때문에 나는 날마다 항구에서 아버지를 기다렸어.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엄마가 보다 못해 데리러 올 때까지 매일을 그랬어. 그러면서 항상 울었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아버지의 큰 손과, 나를 번쩍 안아 올리던 탄탄한 팔을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아서.”


른진은 유년기를 이야기할 때면 눈가가 붉어졌다. 아직도 그 시절의 아픔을 겪는 어린아이의 얼굴로.


“온 가족이 다시 함께 살게 된 건 13년이나 지난 후였어. 기억도 나지 않을 때부터 떨어져 지냈던 여동생은 남이나 다름없었지. 게다가 그 애는 나에게 큰 박탈감을 가지고 있었어. 나 때문에 자신이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고 여겼거든. 만약 내가 없었으면 그 아이는 엄마와 살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제가 부모님과 지내지 못한 13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양, 무엇이든 나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또 많이 하려 해. 나는 때때로 그걸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여동생과 잘 지내보려고 어떻게든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조차 그 아이는 싫은 거야.”


른진은 이해를 거부하는 여동생과의 상황을 답답해했다. 최근 결혼한 여동생의 남편은 탐욕스러운 인간이라 여동생의 박탈감을 더욱 부추겼고, 여동생 내외와 른진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기만 했다. 른진은 두 자매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의 이편과 저편에 영영 놓여버릴까 봐 두려워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어쨌든, 동생은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재인은 쭉 부모님과 함께 살았니?”

“응.”

“정말 부럽다.”


나는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이 누구나에게 마냥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할 순 없었다. 흔히 정상가족을 운운하지만, 양부모가 멀쩡히 있어도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자녀는 허다하다. 가족이 곧 형벌인 사람들은 분명 있다. 가정 내 아동폭력 가해자의 약 80%가 친부모라는 통계가 버젓이 존재한다.


나 역시도 부모로부터 가장 크게 상처 받고, 나 또한 부모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였던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우나 고우나 서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 묶여 있다. 그것이 한없이 든든하다가도 당장 벗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부모라고 그럴 때가 과연 없었을까?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아델에게 하진 않았다. 결국 각자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환경을 두고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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