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침묵의 딸입니다 - 4
가족 이야기를 시작으로, 른진은 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물었다. 외국인 동료들과 일하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란 이들은 많이 보았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의 같은 성별이자 동양인 여성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른진이 던지는 물음들은 학창 시절 이후로 거의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했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러니까 나는 좀 비껴 난 사람이었다. 어딘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다만 어떤 집합에도 속하지 않거나 꼭 일부만 속한 채 여집합으로 남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이 나였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참 골치 아픈 아이이기도 했다.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아서 어른들을 종종 곤란하게(또는 화나게) 만들곤 했다. 거기다 아니다 싶으면 어른이고 뭐고 없었다. 어른답지 못한 점을 지적했을 뿐인데, 소위 싸가지가 없다고 매도되는 상황은 언제나 어이가 없었다.
사회가 정한 공식대로 행동하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쩜 저들은 저렇게 쉽게(?) 납득하고 해낼 수 있는 건지 의아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으면 그 질문은 거의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데? 그냥 넘어가지 못할 이유가 뭐야?’
아무튼 이런 식으로 큰 집합에 속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무한루프 속에 갇혀 서로 엉뚱한 좌표 주변만 맴돌았다. 그런데 나는 또 사실 뭐 굳이 크게 이해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에 걸쳐서는 나름대로 나를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시도를 했었다. 말로도, 행위로도, 그 밖의 여러 가지로. 그러나 온전한 이해는 없었다.
이를 깨닫게 된 것은 역으로 내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였다. 나도 못하는 일을 타인에게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을 넘어 몰염치라고도 여겼고. 그 후부터 내 키워드는 ‘그러려니’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왜’라는 질문도 줄었다.
그나마 다행히 이런 성격임에도 의외로 집단생활은 잘하는 편이었다. 사람 사귀기를 크게 어려워하지도 않고, 전학을 자주 다니며 친구 없는 시절을 오래 겪었어야 했던 경우에도 정서적으로 큰 데미지는 없었다. 목소리와 제스처가 크고 대화를 즐기는 편이라 쉽게 활기차고 외향적이라 여겨지곤 했다. 실은 혼자 있기가 훨씬 편한 내향인에 더 가깝지만.
나는 또래집단과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학교의 기성 집단인 선생님들과는 다소 미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날 문제아지만 재미있는 문제아라 생각하는 교사도 있었고, 문제아 같긴 한데 의외로 학교는 꼬박꼬박 나오는 문제아라 여긴 교사도 있었으며, 문제아라는 카테고리에 넣진 않았지만 모범생이거나 평범한 학생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폐가 있다고 느끼는 교사도 있었다. 물론 학교 밖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과는 다른 의미로 질 나쁜 문제아라 여긴 교사도 있었다.
고3 담임이 그랬는데, 그는 날 학교에는 꼬박꼬박 나오고 지각도 땡땡이도 없지만, 그래서 더 종일 수험생 반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이라 여겼다. 대학은 가지 않겠다고 학기 초 진학상담 때 선언하고는, 내내 글만 쓰고 책만 읽으며 그 시절을 보냈으니까. 덕분에 반에서의 내 별명은 신선이었다. 혼자 고3 교실에서 신선놀음한다면서.
같이 지내면서 일지를 적거나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날 보고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알게 된 른진은 왜 글을 쓰는지를 물었다.
“마음껏 헤매도 되니까.”
“헤맨다고?”
“활자 위에서 얼마든지 헤매고 실패하고, 어디로든 나아가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고, 또는 그냥 그대로 무너져 버려도 좋고. 뭐든 가능한 세계인데, 그 세계를 내가 만들잖아. 그러니 나는 거기서 가장 고통스럽고도 가장 자유롭지.”
“…… 그럼 너는 글을 써서 어떻게 하고 싶어?”
숱하게 받았던 질문이다. 저 짧은 한 마디에는 참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었다. 글을 써서 먹고는 살겠냐, 너에게 그럴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쓰려거든 진지한 글을 써라, 설령 작가가 된다고 해도 그 삶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않느냐 등등…….
언제나 나를 배회하던 그 의문들을 뿌리치기 위해, 나와 가족의 불안을 합리화하고자, 나는 진짜가 아닌 말들을 내뱉곤 했다. 강한 의지로 보여 나를 막아서지 못하게 만들 말들, 또는 결국 다른 일을 찾으라며 설득해오는 이들의 의구심을 가라앉힐 말들을. 무엇보다 나의 불안을 달랠 말들을.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에게도 나를 합리화할 필요 없으며,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뱉어보지 못한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거 없어. 그냥 쓰고 싶을 뿐이야.”
아델은 날 말끄러미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우리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그 후로 어떤 대화를 했던가? 졸음을 참아가며 하던 말들이라 기억에 남아있진 않다.
결국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우리 둘 다 어느샌가 잠들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말소리가 잦아든 방을 낯선 풀벌레 소리가 서서히 메우던 것만은 선명히 기억한다. 푸르스름히 밝아오던 새벽녘 창도.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나와의 대화에서 어떤 경계를 넘은 듯한 른진은 이제 끝도 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여기가 중국이 아니고, 함께 있는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서 더 그런가? 그녀는 마치 남아있는 휴가를 모조리 말로 소비하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그리고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돌아오던 부지런한 관광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봤던 모습 중 제일 즐거워 보였다.
우린 매일 눈을 떠서 감는 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나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오랜만이었다. 십 대가 끝난 이후로는 누군가와 며칠씩 공들여 이야기해 본 일이 없다.
여하간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이야기는 끝도 없이 흘러 흘러 뜬금없이 패러글라이딩을 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원래 뭘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냥 혼자 하고 말지, 굳이 남까지 끌어들이지 않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 나부터가 의외였다.
권유를 받은 아델은 뜻밖에도 단박에 거절하진 않았다. 이런 스포츠는 무서워할 사람으로 보였는데 놀라웠다. 물론 겁을 먹기는 했다. 대신 내가 먼저 해보고서 소감을 말해주면 듣고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결론이 나면 미루는 법이 없는 나는 바로 로비로 내려가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패러글라이딩 비행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