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날다 - 1
떨리느냐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전날 밤은 오랜만의 꿈도 없는 숙면이었다. 나갈 준비를 하면서 늘 신던 조리 대신 운동화를 신었다. 잘은 몰라도, 높은 허공에서 신발을 떨어트렸다간 다시 찾을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쯤은 아니까.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시계를 확인했다. 8시에 숙소 앞으로 차가 픽업하러 온댔으니까 10분 남았다. 달리 할 일도 없어서 나는 미리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숙소 건물을 나오니, 마침 마당에 물을 뿌리던 여주인 크리슈나가 인사를 해온다.
“드디어 오늘이네요. 기대돼요?”
“네.”
“겁은 안 나요?”
“별로요.”
“용감하네. 처음 타는 사람들은 많이들 무서워하던데요.”
“그래요?”
난 히죽 웃고는 대문 옆 계단에 앉았다. 느긋한 아침이다. 한 떼의 물소가 되새김질을 하며 어기적어기적 앞을 지나간다.
10분쯤 지났겠다 싶어 로비의 시계를 건너다보았다. 시계는 정확히 8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시, 곧 중형 밴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뒷좌석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청년 하나가 몸을 쓱 내민다.
“재인이죠? 타세요. 바로 출발할 겁니다.”
“네.”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차에 타려다가 멈칫했다.
뭐야, 저 요란한 사람은?
차문 바로 옆 좌석에는 커다란 몸집의 긴 금발머리 남자가 앉아 날 뚫어지게 본다. 바지는 하와이안, 셔츠는 민소매, 길게 기른 드래그 헤어(감은 걸까? 안 감았다고 하기엔 몹시 푸석해서 알 수가 없다), 드문드문 반짝이는 금빛 수염.
바로 보나 거꾸로 보나 나무랄 데 없는 히피다. 딱히 그들에 대한 편견은 없다. 워낙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으로 먼발치에서 스치는 게 다였으니 거기에 대해 뭘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는 게 정확하다. 그런데 이렇게나 본격적인 히피를 코앞에서 보고는 엄청난 박력에 순간 굳고 말았다. 게다가 차림새 때문에 여기가 히말라야 산골짜기가 아니라 동남아 어느 유명 해안가인지 혼란스럽다. 주변 풍경과 옷차림의 괴리감이 어마어마하다.
이런 생각이 내 얼굴에 드러난 걸까? 날 보던 그가 빙긋 웃는다. 뒤늦게 무례한 짓을 했다는 생각에 얼른 시선을 거두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최대한 차 뒤로 깊숙이 들어가 몸을 구겨 넣었다.
차 안엔 나 외에도 히스패닉계의 여자 한 명과 덩치 큰 백인 남자, 호리호리한 젊은 백인 남자 두 명이 더 있다.
“패러글라이딩은 혹시 오늘이 처음?”
내 뒤에 앉아있던 젊은 백인 남자가 묻는다. 바싹 깎은 머리와 탄탄한 근육질이 꼭 군인처럼 보인다.
“네.”
“Cool. 사실 나도 처음이에요. 안 떨려요?”
“안 떨리는데요.”
“끝내준다! 정말로?”
그는 옆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하더니 처음인데 안 떤다니 대단하네 어쩌네 하며 자꾸 말을 붙인다. 그런데 정말로 안 떨리기는 했다. 알고 보니 나는 이런 일로 떨지 않더라. 그걸 이번에 패러글라이딩 예약을 하며 알았다. 두렵기는커녕, 순전히 기대에만 들떠 있었으니까.
나는 두 사람에게 대충 대꾸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둘은 더 말을 걸지 않고 저희끼리 시끄럽게 떠들었다.
차는 포카라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올드 바자르(old bazaar)로 뻗은 대로를 달렸다. 레이크사이드 근처까지는 상점가가 제법 있었는데, 조금 더 벗어나니 민가만 드문드문 서있다. 차는 곧 왼쪽 도로변의 갈라진 산길로 빠졌다.
비포장도로임에도 밴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달리는 동안 몇 번이고 차 지붕에 머리를 찧을 뻔했다. 자동차 바퀴에서 피어오른 흙먼지가 부옇게 번지며 멀어진다.
차는 산 중턱을 지나서야 멈췄다. 그리고 차 문이 열렸다.
“도착했습니다.”
아까의 히피다. 아주 낯선 억양의 영어다. 네이티브 같기는 한데, 강한 사투리로 들린다.
그가 가장 먼저 밖으로 내렸다. 사람들을 그를 따라 주섬주섬 내렸고, 먼저 도착해 있던 스태프들이 각자 몰고 온 차의 트렁크에서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꺼내는 중이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이륙 포인트가 있어요. 그리로 이동할 겁니다. 텐덤 비행이니까 겁먹을 거 없어요.”
“텐덤 비행이 뭔데요?”
나는 텐덤 비행이 뭔 줄도 모르고 신청했구나…….
“파일럿과 함께 비행하는 거죠.”
이 사람이 손님이 아니라 파일럿이었어?
내심 뜻밖이라 생각했지만, 아까의 무례도 있고 해서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외관만 보고 사람 판단하면 안 되는데, 지금 그 유혹을 떨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 비행… 괜찮은 걸까?
텐덤 비행이 뭔 줄도 몰랐을 때도 들지 않던 불안이 갑자기 불쑥 치민다. 그런데 마침 그가 내게 노랑 병아리색 헬멧을 내민다. 키가 족히 190은 넘는 남자가 손에 쥔 노랑 병아리 헬멧이라니……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남자가 다른 장비를 꺼내는 동안, 나는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는 척, 그를 다시금 찬찬히 보았다. 그러자 첫인상과는 조금 다른 면모가 눈에 띈다. 차림새와는 다르게 어딘지 단정한 이목구비도 그렇고, 무엇보다 푸른 눈이 무척 온화하다. 사투리 때문에 투박하게 들리는 그의 어조는 어딘지 다정한 구석이 있다.
마음을 살짝만 달리 먹어도 같은 사람이 이렇게나 달리 보인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이 내 파일럿인가요?”
남자가 뒤돌아 날 보더니 어쩐지 좀 당황한 표정이다.
“아니. 위에 올라가면 다른 파일럿들도 있으니 거기서 선택하면 돼요.”
“또 누가 있는데요?”
그가 히스패닉계 여자와 젊은 백인 남자를 가리킨다.
“원한다면 여자 파일럿과 타도 좋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파일럿을 한 명씩 본 나는 손에 들린 병아리 헬멧을 보고 답을 내렸다.
“당신 이름은 뭐예요?”
“라이언.”
“그럼 라이언. 나는 당신으로 할래요.”
그렇게 정하고는 들고 있던 헬멧을 머리에 써보았다. 내겐 너무 커서 헐렁하다. 턱끈을 줄이려고 해 봤는데, 이런 분야의 재주라면 예로부터 먹고 죽을 만큼도 없는 내 손은 성실하게 헛손질만 거듭하고 있다.
“이리 와봐요.”
대답 없이 하는 양만 보던 라이언이 피식 웃더니 날 제 앞에 세운다. 그리고는 바싹 허리를 숙여 직접 끈을 조정해주었다. 내 키가 160을 겨우 넘고, 그의 키가 190을 훌쩍 넘기다 보니, 그가 한참을 숙이지 않으면 눈을 맞출 수가 없다. 시선이 마주치자 라이언이 미소 짓는다. 웃음기 어린 그의 얼굴은 한층 더 선하고 부드럽다.
이륙 포인트는 멀지 않았다. 다만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앞서 가는 라이언이 몇 번이나 뒤돌아 날 확인한다. 하지만 내가 산행을 좋아하진 않아도 못하진 않는다.
이륙 포인트는 잔디가 짙게 깔린 야트막한 언덕이다. 한쪽엔 장비를 둘 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비행 타이밍을 기다릴 때 쓰는 걸로 보이는 작은 통나무집이 있다.
언덕 위론 숲이, 아래로는 페와 탈이 길게 누워 있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페와 탈의 왼쪽으로 레이크사이드가, 오른쪽으로는 첩첩산중이 자리했다.
“비행하기 좋은 날이군요.”
라이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이걸 착용해요.”
라이언은 벨트와 의자가 이어져 있는 텐덤 장비를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X'자 모양의 상부 벨트에 다리를 끼우고, 하부의 하네스 장착을 마쳤다. 하네스 장착이 끝나자 그는 재차 물었다.
“정말 나로 괜찮아요?”
“그렇다니까요.”
그가 묘한 눈길로 날 본다.
“어째서 나예요?”
왜 나냐니. 오히려 그 질문이 뜻밖이다. 아무나 고를 수 있다며?
곧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나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꾸했다. 진심이기도 했고.
“당신이 좋아서요(I like you).”
그가 놀란 얼굴을 한다.
“내가 좋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
라이언은 껄껄 웃더니 갑자기 주변의 다른 파일럿들을 향해 외쳤다.
“들었어? 이 분이 내가 좋다는데.”
그러자 비행을 준비 중이던 파일럿들이 왁자하니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웃을 일인가? 좀 어리둥절하지만, 어차피 오늘 보고 또 볼 얼굴들도 아니고. 게다가 나는 앞으로 (아까 먼저 보아두었던) 언덕 끝에서 뛰어내려야 할 판인라 저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라이언은 텐덤 비행 준비를 완료한 후, 글라이더를 바닥에 넓게 펼쳐놓고 가만히 서있었다. 적당히 바람이 불길 기다리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바람이 부나, 싶던 바로 그때. 군인 머리를 한 남자가 저 혼자 글라이더를 매고는 힘껏 절벽을 향해 달려 내려간다.
어어? 하는 사이, 그의 몸이 순식간에 하늘로 붕 떠오른다. 그가 어떻게 뜨는지는 보지도 못했다. 정말이지 창졸간의 일이었다.
글라이더는 유유히 날아 삽시간에 멀어진다. 속도감이라곤 없이 그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 보이는데, 눈을 한번 깜박였다 뜰 때마다 쑥쑥 멀어져 금세 손톱만 해진다.
“와, 이거 떨리는데.”
덩치 큰 남자는 젊은 남자 파일럿, 군인과 함께 온 남자는 여자 파일럿과 함께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는 얼굴이 희게 질려 있다.
나는 그들의 얼굴과, 곧 내가 뛰어내리게 될 절벽을 번갈아보았다.
“이리 와요.”
거대한 벽처럼 등 뒤에 있던 라이언이 하네스의 벨트를 쭉 잡아당긴다. 라이언이 내 하네스를 자신의 앞가슴에 단단히 잇고 벨트를 죈다. 그가 뒤에서 날 안은 자세가 되었지만, 체격 차이가 커서 공간이 꽤 남는다. 안정감이 있다고 해야 할지, 부족하다고 해야 할지……. 다시 ‘이거 괜찮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그때 라이언이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한다.
“내가 달려!라고 하면 달리고, 비행 중엔 왼쪽, 이라고 말하면 몸을 왼쪽으로 기울고, 오른쪽, 이라고 말하면 오른쪽으로 기울여요. 잘 따라주면 즐겁게 비행하고 무사히 내려올 수 있어요.”
“네.”
“무서워요?”
“아뇨.”
희한하게도, 걱정되는 부분이 아주 없진 않지만 패러글라이딩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없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그 적당한 바람은 언제쯤 불어오려나?
다른 파일럿들도 모두 준비를 마친 상태다. 모두가 좋은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가만히 있자니 좀 궁금하긴 하다. 그래서 물었다.
“이대로 못 뜨는 경우도 있나요?”
라이언이 대답했다.
“있기는 한데 꼭 그렇지마는…….”
그때였다. 순간 라이언의 눈빛이 달라지더니, 그가 외쳤다.
“지금이에요! RUN!”
그 말에 조건반사로 몸이 튀어나간다.
엉거주춤할 틈조차 없었다. 뒤에서 라이언의 커다란 몸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반쯤은 거의 떠밀리듯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