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날다 - 2
눈앞으로 절벽 끝이 들이닥친다. 가팔라진 속도가 나와 라이언의 몸을 절벽 낭떠러지 너머로 밀어낸다. 달리던 관성대로 두 발이 허공을 휘휘 젓자, 알아차리지도 못한 순간 이미 몸은 하늘에 떠 있다. 내 발 밑으로, 나무의 머리들이 지나간다.
“우와!”
절로 탄성이 터진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 헐렁했던 하네스는 이제 단단히 내 몸을 받치며 나와 라이언을 잇는다.
하늘이 어디까지라도 뻗어있다.
바람이 모든 소리를 뒤덮는 고요한 세계.
위아래의 경계가 사라진 나는 완전무결한 침묵 안에 있다. 신체발부의 모든 기관이 중력의 족쇄를 술술 벗어던진다.
글라이더가 자유자재로 유영한다. 라이언이 마법이라도 부리는 걸까? 지상에서는 그렇게나 거추장스러워 보이던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다.
처음 직접 닿아본 하늘은 평온이다. 이러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두려움, 공포, 스릴, 흥분은 없다. 아득한 존재의 상냥한 품에 안긴 듯 아늑할 뿐이다.
대지를 저 멀리 내려다본다. 두 줄기의 땅이 모이는 곳에 페와 탈이 고여 있다. 산과 숲은 굽이치는 골짜기를 따라 건너편 대지까지 강건하고 우아하게 솟아오른다. 짙푸른 세계는 감히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너머를 향해 이어진다.
만년설을 입은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태고의 기억으로부터 아련히 돋아난다. 광료한 땅에 우뚝 선 신은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끈다. 하늘에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무엇도 없다. 여기는 신의 세계다.
“왼쪽.”
멍하니 잠겨있던 정신이 번뜩 돌아온다. 귓전에 울리는 라이언의 음성이 날 깨운다. 나는 이끌리듯 몸을 왼쪽으로 기울인다. 기울이자마자, 묵직한 바람이 우리를 왼편으로 미끄러뜨리며 더 높은 하늘로 쑥 밀어 올린다. 바로 이어 라이언이 말한다. “오른쪽.”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른쪽 방향으로 또 한층 더 상승한다.
놀랍다. 라이언은 바람을 읽는 걸까? 그것도 바람이 불어오기도 전부터?
고도를 높인 라이언이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원하는 어디든지요.”
“그럼 페와 탈.”
라이언은 주저 없이 그곳으로 날 데려간다.
호숫가로 물을 길러 온 여인들이 우릴 향해 손을 흔든다. 보트 위의 사공도, 물고기를 잡던 어부도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마주 흔든다.
“어지럽지 않아요?”
라이언이 물었다.
“전혀요.”
라이언의 나직이 웃는다.
“더 높이 가볼까요?”
“네.”
대답과 동시에 라이언이 또 마법을 부린다.
우리는 더 높은 하늘로,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른다. 구름 위로 사라질 것처럼, 지구 너머로 나아갈 것처럼. 누구도 들어본 적 없고, 가본 적 없는 세계로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날 것처럼.
“동행이 생겼군요.”
“네?”
“옆을 봐요.”
옆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곁에서 매 한 마리가 두 날개를 쫙 편 채 같은 기류를 타고 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문득 숙소에 붙어있던 패러글라이딩 광고 포스터가 떠오른다. 나는 내 바로 옆을 나는 매를 가만히 지켜보기로 한다.
매는 우리 곁에서 잠시 머물다가, 곧 다른 기류를 타고 훌쩍 멀어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저곳에 착륙할게요.”
마법이 끝나가고 있었다.
라이언이 가리킨 지점은 노스사이드가 시작되는 경계의 호숫가 습지다. 며칠 전, 헐벗은 채 혼자 요가를 하는 백인 남성을 보았던 곳이라 느낌이 묘하다.
“어떻게 내려가고 싶어요? 평범하게 또는 신나게?”
“신나게요.”
“좋아요.”
웃음기 어린 라이언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곧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하는 외침이 잇따른다. 나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바쁘게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패러글라이더가 팔랑개비처럼 빠르게 회전한다. 저 밑의 세상이 미친 듯이 돌며 내게로 닥쳐온다.
“Eeee-haaaa!” 라이언이 괴성을 지르며 말한다.
“두 발이 땅에 닿거든 아까 이륙할 때처럼 뛰어요. 그럼 넘어지지 않고 멈출 수 있어요!”
말인즉슨, 넘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냐. 그런 결말은 나부터 사양이다.
“알았어요!”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소리가 거칠어진다. 잠시 잊었던 시간과 공간, 소리와 중력이 순식간에 돌아온다. 드디어 두 발을 땅에 딛자, 제법 묵직한 충격이 관통한다. 얼마간 뛴 다음, 라이언의 지시에 따라 멈췄다. 모든 것이 끝났다. 찰나 간의 일이었다.
“어지럽진 않아요?”
하네스를 풀어주며 라이언이 묻는다. 나는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마음껏 날던, 이제는 까마득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도 곡예비행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다시 거추장스럽게 바닥에 축 늘어진 글라이더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정리, 도와줄래요?”
“네.”
나는 라이언이 글라이더를 접어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웃음이 피식피식 삐져나왔다. 보고 있었는지, 라이언이 묻는다.
“그렇게 좋았어요?”
“그럼요!” 즉각 대답이 튀어나온다.
날 보는 라이언의 눈이 멋지게 휜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웃어서가 아니라, 불쑥 내 머리에 닿은 라이언의 손 때문에.
라이언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푸슬푸슬 쓰다듬는다. 거칠지만, 상냥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난 그만 입을 헤벌리고 그를 쳐다봤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머리 쓰다듬을 한다고? 진짜?
눈이 마주치자, 그도 어쩐지 당황한 표정으로 동작을 멈춘다. 저도 모르게 한 건가?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짓기 직전의 얼굴을 기억한다. 마치… 아무 기대도 없던 제자가 크게 일취월장한 모습을 바라보는 스승의 얼굴 같았지…….
뭐, 나쁜 기분은 아니니 됐다.
일정을 마치고, 른진과 약속한 레스토랑으로 직행했다. 른진은 이미 와 있었다.
그녀가 반쯤 먹다 남긴 빵 접시엔 산새가 날아와 부스러기를 쪼고 있었다. 그녀의 발치엔 떠돌이 개가 늘어져 꾸벅꾸벅 졸고, 내가 앉을 예정인 의자에는 고양이가 부른 배를 드러낸 채 일광욕을 즐기는 중이다. 카메라로 그들을 찍던 른진이 환히 웃으며 반긴다. 나는 고양이더러 비키라고 하는 대신, 비어있는 다른 테이블의 의자를 추가로 가져왔다. 그러는 동안 비킬 만도 한데, 고양이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누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패러글라이딩은 잘 끝났어? 안 무서웠어?”
“하나도 안 무서워. 엄청 재밌었어.”
“진짠가 보네. 눈이 엄청 반짝거려.”
“그 정도야?”
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