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6. 보헤미안 하이웨이 -2

by 소라게


“미쳤군! 두 사람 제정신이 아니야!”


지혜가 머무는 숙소의 오너가 펄쩍 뛴다. 나는 멋쩍어 턱을 긁었고, 옆에 앉은 지혜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여행자들을 위해 옥상에 올려둔 탁자 위에는 주요 도로가 표기된 네팔 지도가 펼쳐져 있다. 사흘 전, 레이크사이드의 서점에서 직접 구입한 지도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 걸어서 가겠다니, 대체 그런 황당한 발상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예요?”

“이게 그렇게까지 안 될 일이에요?”

“말이라고! 여행자는커녕, 현지인도 안 하는 짓을 왜 젊은 아가씨 둘이서 해요? 그 길이 어떤 길인 줄 알아요? 대표적인 사고다발 지역이라고. 10년 전엔 호랑이까지 출몰했어요. 내가 직접 봤다니까. 지프를 끌고 달리는데, 들개인지 뭔지를 입에 물고 사라지는 호랑이를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10년 전이라면서요.”

“아, 글쎄, 그래도 위험하다니까요.”


그는 호랑이를 몇 번이나 강조하며 우릴 뜯어말린다. 나는 지도를 보며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 떠올렸다.


계기는 실로 단순했다.


우기가 찾아와 눈에 띄게 활기가 줄어든 포카라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포카라의 풍광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지만 익숙해진 생활은 차츰 질렸다.


해서 포카라에 온 후, 처음으로 트레킹을 고려해보았다. 그런데 막상 트레킹에 대해 알아보니 이미 우기라서 가기가 사납단다. 가려면 못 갈 건 없지만, 울창한 밀림과 불어난 계곡, 아울러 득시글거리는 거머리까지……. 여정이 꽤나 험난했다. 솔직히 그런 불편을 무릅쓸 만큼 트레킹에 대해 진심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쩔까?


고민 끝에 어쩌다 떠올린 것이 른진과 버스를 타고 온 도로였다. 딴에는 고속도로라는데 실상은 제대로 된 가드레일 하나 없이 천 길 낭떠러지 위를 굽이치던 계곡길이었다. 유일한 장점은 길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


어쨌든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의 거리는 약 200km. 하루 평균 20km를 걷는다고 했을 때, 예상 소요일은 10일. 더 걸려도 상관없다. 완주가 중요하지, 기간이 정해진 건 아니니까.


거기까지 대강 계산이 끝나자, 고민도 같이 끝났다. 나는 그 길로 레이크사이드의 서점에서 도로가 표시된 지도를 샀다. 그리고 이 계획에 대해 알리며 혹시 생각 있으면 같이 가겠냐는 권유를 적은 메모를 그녀의 호텔 리셉션에 남겼다.

몇 시간 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의 지혜가 숙소로 들이닥쳤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진짜 네팔을 만나러 가겠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길이 있다->중간 중간 마을도 있다->적당히 잘 데도 있겠지 뭐->그럼 가보실까’ 수준으로 단순하게 결정한 내게 진짜 네팔을 만나러 가겠다는 원대한 포부 같은 게 있을 리 없었으므로.


여하간 우린 일주일 동안 장기 도보여행을 위한 여장을 꾸렸다.

가장 귀찮은 일은 불필요한 짐만 먼저 카트만두로 보내는 것이었다. 수신 주소는 카트만두의 가든하우스, 마두 앞이었다. 나는 택배를 부치기 전에, 마두에게 보내는 안부 엽서를 동봉했다. 친절하고 상냥하던 그가 문득 보고 싶었다.


이 일은 지니아 레스토랑의 라즈도 알게 됐다. 지니아에서 지혜와 함께 아침을 먹으며 여행 계획을 짜다가 여러 도로가 만나는 지점마다 숙소나 식당이 있는지 확인해 두려고 라즈에게 물었다. 그런 건 왜 묻냐기에 고속도로를 따라 트레킹을 해서 카트만두까지 가겠다고 했더니, 라즈도 지혜네 숙소 주인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건 뭐 이야기를 꺼낸 사람마다 손사래를 치니까, 이젠 오기가 돋는다.

위험하다며 관두라는 반응들이 한바탕 지난 후 지혜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아 졌어?”

“아뇨. 더 가고 싶어 졌어요.”


지혜는 호기롭게 씩 웃었다. 하기야 주변에서 말리는 정도로 그만둘 거였으면, 그렇게 흥분하진 않았겠지. 나름대로 납득한 나는 여행 준비를 이어갔다.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지점의 큰 마을들을 볼펜으로 표시했다. 길은 당연히 험할 것이다. 영어는 거의 안 통한다고 봐야 하고, 사이사이 들를 지역의 정보는 희박하다. 라즈의 이야기에 따르면 크고 작은 마을이 10에서 20킬로미터 정도마다 있단다.


“하루에 20킬로미터 정도면, 힘들까?”

“글쎄요. 컨디션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평균적으로 그 정도는 걸을 수 있어요.”

“어떻게 알아?”

“한국에서 국토대장정 했었거든요.”


어쩐지 대뜸 하겠다고 하더라.


“정말? 완주했었어?”

“그럼요.”

“어땠어? 많이 힘들지.”

“그렇죠, 뭐. 한여름에 걸으니 더 힘들기도 하고요.”

“보통 하루에 얼마나 걸었어?”

“20킬로 이상씩 걷는데, 얼마를 걷든 꼭 오후에 레크리에이션을 해요. 피곤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적게 걸은 날엔 체육대회까지 하더라고요.”

“체육대회? 미쳤네. 인간 체력이야, 그게?”

“그래도 재미는 있었어요.”


지혜는 씩 웃었다.

언젠가부터 느끼고 있지만, 지혜는 나와 참 다른 사람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졌다.

섬세하면서도 밀도 높은 열정. 아무리 하찮은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예민한 관찰력. 대개의 것을 흐르는 대로 두며 관조하는 나와는 정반대다.


지혜의 뜨거움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나의 미온을 자각한다. 그리고 주변을 저토록 다채롭게 보는 저 아이의 시각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모든 사고, 모든 주어가 ‘나’로부터 시작되는 나에게 지혜는 태어나 처음 만난 미지와 같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미지.


어쩌면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지혜에게 이 여행을 알렸는지도 몰랐다. 함께 하다 보면, 그녀의 시야를 빌려 세계를 아주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아무튼 미지와 함께 하는 그보다 더한 미지의 여정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일부 짐을 카트만두로 부치는 일 외에도 준비해야 할 것은 많다. 우기다 보니 우비도 필요하다.


사랑콧 조난(…)을 겪었을 때 입었던 우비는 거의 쓸모가 없음을 몸소 체험하고 처분한 지 오래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한 의약품과 벌레를 쫓을 스프레이도 샀다. 벌레 물린 곳에 바르는 연고는 내게 남아있던 것과 더해 른진이 넘겨준 것까지 더해 넉넉하다.


출발 3일 전에는 비자를 연장했다. 하지만 카트만두에서처럼 포카라도 이민국 사무실 위치가 옮겨지는 바람에 애먼 동네를 한참 헤맸다. 덕분에 출발 직전 더위를 먹어 앓아눕고 말았다.


나는 종일 가벼운 미열과 메스꺼움, 설사에 시달렸다. 상태를 보러 온 지혜는 몸이 다 낫거든 출발하자며 출발일을 미루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심각하지도 않은 데다, 이미 마음이 떠서 하루라도 빨리 여행길에 오르고 싶었다.


출발을 하루 앞두고, 열이 채 떨어지지 않은 몸으로 지혜네 숙소 주인을 다시 만났다. 도시 간의 실제 거리를 알려주거나 조심할 것들을 언질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던 그는 내내 염려를 떨치지 못했다.


“정말 이대로 보내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요. 이제 우기라 비도 많이 오고, 엄청 더울 거예요. 중간에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지나가는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가요. 손 흔들면 세워줄 거야.”

“조심할게요.” 지혜가 말했다.

“이거 참 고집들이 어지간하네. 아무튼 조심, 또 조심해요.”

“네.”


숙소에 돌아와선 남은 숙박비 전액을 계산했다. 보통 일주일마다 한 번씩 몰아서 결제하곤 했으므로, 여주인은 으레 그러려니 하는 투였다. 나는 내일 떠날 거라고 얘기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말을 꺼냈다간 또 위험하다는 둥, 그만두라는 둥, 이미 잔뜩 들었던 잔소리만 한 바가지 더 들을 게 뻔했다.


여장을 마친 짐은 포카라에 도착했을 때보다 현저히 줄어있다. 그래도 여전히 무거운 편이다. 이 정도 무게의 짐을 지고 20km 걸어본 경험은커녕, 애당초 맨몸으로도 20km씩이나 걸어본 적이 없다.


나는 과연 이걸 지고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걱정과는 무관하게, 나는 내가 내일 새벽이면 이 짐을 모두 짊어진 채 길 위에 설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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