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헤미안 하이웨이 - 3
다행히 몸 상태는 날이 밝아올 즈음 열도 내리고 뱃속도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기력이 어느 정도 돌아온 이른 아침. 나는 침대 위에 놓아둔 배낭을 짊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묵직함이다. 새삼 새로운 여정임이 실감 난다. 벽시계는 새벽 5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다.
잠겨있는 리셉션 문틈에 편지를 끼워 넣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와 말없이 떠나게 돼서 미안하다는 내용을 적었다. 숙소 대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한동안 신세 졌던 흰 건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거리로 나섰다.
페와 탈과 히말라야는 아직 곤히 잠들어 있다. 나는 지혜와 약속한 캠핑 촉으로 향하며 레이크사이드를 눈에 새겼다. 이제 여길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캠핑 촉에는 지혜가 먼저 와 있다. 운동화 끈을 죄는 그녀의 상기된 얼굴에서 설렘이 일렁인다.
“언니, 우리 사진 찍어요.”
“나 사진 찍는 거 안 좋아해.”
“하지만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요. 기념비적인 순간이잖아요.”
결국 우린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캠핑 촉의 한복판에서 요란한 포즈를 취했다. 만세 삼창을 하기도 하고, 파워레인저 포즈로 서기도 했다. 마지막엔 차렷 자세로 서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을 찍고 난 뒤, 올드 바자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산보를 하듯 가볍고 여유로운 걸음이다.
오전 10시나 돼야 활기가 도는 레이크사이드와 달리, 올드 바자르는 이미 한창이다. 여행자 거리에서는 보기 드문 높은 상가 건물들이 대로 양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섰다. 차선이 무의미한 도로는 버스와 트럭, 사람과 각종 동물들이 뒤섞여 혼란하다. 각종 야채와 과일들이 길가 좌판에 힘없이 늘어져 있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 도착하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길을 가로지른다.
간단한 아침거리를 만들어 파는 리어카는 아침 장사에 열을 올린다. 여기저기서 어딘가의 지명을 외치는 고함이 난무한다. 느긋했던 페와 탈 주변과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거의 카트만두를 방불케 하는 활력이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펄떡 날뛴다.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우리에게로 기이함을 담은 행인들의 시선이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시선이 마주쳐도 눈을 피하긴커녕 더 뚫어져라 볼뿐이다.
나는 쏟아지는 시선을 최대한 모른 척하며 혼잡한 도로변을 재빨리 걸었다. 그러나 그도 잠깐.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아직 포카라를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아랫배가 싸르르하다. 그분이 오신 것이다. 변기를 몹시도 사랑하는 그분이…….
먹은 게 없으면 나올 것도 없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또 왜 때문인지 화장실이 급해 죽을 지경이다. 지혜는 걸음이 빨라 나보다 2미터는 앞서 걷고 있다.
나는 지혜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했다. 포카라를 벗어나면 15킬로미터 이내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적당한 뭔가가 있어주면 좋겠지만,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고민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대장을 양손으로 잡아 비트는 통증이 와락 덮친다. 삽시간에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솟는다.
아아, 한계다. 고민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여기서 멈춰야 한다. 안 그랬다간, 보는 눈도 많은 낯선 길 한복판에서 무덤에 들어서도 관 뚜껑을 걷어찰 흑역사를 쓰게 되리라.
“지혜야!”
못 들은 건지, 지혜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며 쥐어짜듯 외쳤다.
“지혜야!!”
그제야 지혜가 이쪽을 돌아본다.
“나, 화장실!”
그 한 마디에 지혜가 재빨리 뛰어왔다.
“배 아파요?”
“어. 어디 좀 들어가야겠는데.”
“많이 급해요?”
답할 기력도 없어 정신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내 안색을 살핀 지혜의 표정도 덩달아 심상찮아진다.
포카라 경계 관문을 100미터 전방에 앞두고, 우린 결국 게스트하우스를 급히 결정했다. 객실 상태 따위 아무래도 좋다. 화장실만 딸려 있다면.
숙소를 구한 즉시, 침대에 배낭을 던지고, 냅다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고 화장실을 나왔을 때에는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이까지 시렸다. 정말이지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지혜는 본인이 쓸 침대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다.
“오늘 여기서 끝인가요?”
“응. 관문 나가면 화장실은 둘째치고 건물이랄 게 있을지부터가 미지수니까. 길바닥에서 수치사하기는 매우 사양이야. ”
“그건 그렇죠.”
지혜는 천장을 잠깐 쳐다보더니, 작은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근처 약국에 가서 지사제가 있나 알아보고 올게요. 어차피 내일 필요한 과일이랑 물도 사 와야 하니까.”
“고마워. 부탁 좀 할게. 난 한숨 잘 테니 조심히 다녀와.”
“늦을지도 모르니 너무 걱정 마요.”
지혜가 간단히 짐을 챙겨 객실을 나갔다. 뱃속 난리가 가라앉자, 이젠 식은땀 때문에 몸이 오슬오슬 떨린다. 나는 침대에 누워 들어올 때 보았던 포카라의 관문을 떠올렸다. 관문은 도로 정중앙에 세워둔 아치형 구조물이었다. 그걸 코앞에 두고 멈췄다는 사실이 은근히 속을 긁는다.
그래도 이제와 뭘 어쩔까. 나보다도 사실 지혜에게 더 미안한 일이다. 잔뜩 기대했을 첫날을 남의 화장실 사단으로 그르치고 말았으니……. 그나저나 이래 가지고는 하루 20km는 개뿔, 10km는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얼마나 잤을까. 지혜의 인기척에 눈을 뜨였다. 지혜는 옆 침대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뒤적거리고 있다. 일으키는 몸이 한결 가볍다.
“왔어?”
“아, 언니.”
지혜가 이쪽을 보고 활짝 웃는다. 그리곤 봉투에서 손바닥만 한 팩 하나를 꺼내 던진다. 받아 들어 보니 오렌지색 바탕에 겉에 힌디어로 무언가가 쓰여 있다. 어렸을 적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백 원짜리 불량식품 같이 생겼다.
“이게 뭐야?”
“지사제요. 설사 멈추게 하는 데는 최고예요. 물에 타서 드세요.”
팩을 흔들자 안에서 착착, 하는 소리가 난다. 가루인가?
“이런 건 어떻게 알았어?”
“포카라 오기 전에 인도에 잠깐 있었어요. 그때 저도 설사병이 심하게 났었거든요. 약국에서 뭘 먹어야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그걸 주더라고요.”
“먹고 나았어?”
“네. 자고 일어나니까 멀쩡해지던데요.”
“그래?”
나는 생수 하나를 열어 팩에 든 가루를 부었다. 이걸 진짜 먹어도 괜찮은 걸까 싶지만, 내일까지 설사 때문에 출발을 못하게 되는 건 싫다.
가루가 어느 정도 희석된 생수병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그 즉시 바닥에 뱉어버렸다.
“퉷! 뭐야, 이건?”
버럭 고함을 치자 지혜가 까르르 웃었다.
“엄청 맛없죠.”
“구역질 나!”
한 마디로 어이없는 맛이다. 짠맛이 도는 바닷가 인근 수돗물에 오렌지 향이 나는 설탕가루를 슬쩍 타 섞어놓은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이걸 ‘맛’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 거야?
“이걸 진짜 다 마셔야 돼?”
“그게 복용량이래요.”
그러니까 다 먹으란 소리다. 하는 수 없이 코를 싸쥐고, 벌컥벌컥 남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지만 코를 막았어도 미뢰에 그 애매하고 기괴한 감각이 남아 환장하겠다. 불쾌한 혀를 도로 수납하지 못하고 빼물고 있자, 지혜가 망고 하나를 깎아 건넨다. 뚝뚝 떨어지는 즙 때문에 손이 끈적끈적해지거나 말거나, 아랑곳 않고 마구 씹어 삼켰다. 걸쭉하게 느껴질 만큼 진한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비스킷이랑 바나나도 사 왔어요.”
지혜가 연신 썰어주는 망고 조각을 날름날름 받아먹으며, 바깥 이야기를 들었다.
“좌판에서 꽈배기 도넛 튀김을 튀겨주는 할아버지를 발견해서 옆에서 얼쩡거리다가 집어먹고 오기도 했어요. 근데 기름이 오래된 건지 속이 느글거려요.”
“이번엔 네가 설사병 나는 거 아니야? 길에서 아무거나 막 주워 먹고 다니지 마.”
“괜찮아요. 콜라도 마셨으니까.”
뭔 헛소리야? 콜라가 무슨 상관이람.
일그러진 내 표정을 읽었는지 지혜가 헤헤 웃으며 덧붙인다.
“에이, 괜찮을 거예요. 아무튼 옆에서 꽈배기 먹으면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막 몰려오더라고요. 처음에는 한 명이 더니, 그게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네 명이 되고 그러다가 앗 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해졌어요. 나한테 이것저것 묻는데, 당연히 말은 하나도 안 통하지, 다들 막 손짓 발짓하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웃긴 거예요.”
지혜는 이번엔 바나나를 까먹기 시작했다. 한 다발이나 사 왔는데, 먹는 속도를 보아하니 내일 먹을 건 없을 거 같다.
지혜의 이야기에 의하면, 포카라 로컬 지역 물가는 레이크사이드에 비해 3분의 1 혹은 절반 가격이라고 했다.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곳이니 으레 그러겠거니 했지만, 그래도 막상 들으니 뒷맛은 쓰다. 이 와중에 지니아 식당의 라지는 그 사이에서 대단히 합리적인 가격을 받았던 셈이다.
우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동트기 전부터 걸을 작정이다. 내일은 30km 가까이 걸어야 한다. 오늘 걷지 못한 만큼 내일 더 추가해서 걸을 것이다. 또 낮 12시를 넘으면 뙤약볕 때문에 걷기가 몹시 힘들다. 그래서 우린 새벽 일찍 일어나 걷고, 가장 더운 시간인 오후 2, 3시가 오기 전에 일정을 끝내기로 여정을 재정비했다.
잠들기 전, 지혜는 “어서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나도.”라고 대답하곤 곧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