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헤미안 하이웨이 - 4
새벽 3시 40분. 거짓말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단번에 잠이 깼다. 지혜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1시부터 잠이 안 오더라고요.”
우리는 대충 씻고 헤쳐두었던 배낭을 꼼꼼히 꾸려 등에 짊어졌다.
“아침은 가다가 먹자.”
“그래요.”
둘 다 어서 포카라를 벗어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우린 자던 숙소 주인을 깨워(죄송) 잠겨있던 현관을 열고 길을 나섰다.
새벽 공기는 차고 맑다. 날이 밝으면 네팔 구석구석으로 출발하는 버스와 트럭 때문에 매연으로 더럽혀질 테지만.
(드디어) 포카라의 관문을 지나자, 답지 않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다. 그래 봐야 콘크리트로 지은 조악한 돌덩이일 뿐인데, 거기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며 설레어하다니.
사위는 새카만 정적에 잠겨 있다. 차도가 양분하는 들판의 어딘가에서 풀벌레와 개구리가 운다.
앞서 걷는 지혜의 손에 손전등이 들렸다. 나는 앞으로 맨 작은 가방 앞주머니에서 전등이 달린 볼펜을 꺼냈다. 여행 도중 만난 사람에게서 선물로 받았던 것 같은데, 정작 그가 누구인지는 잊어버렸다.
볼펜의 불빛은 작고 약하다. 고작 내 발 앞을 간신히 비추는 정도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린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지혜는 나보다 걷는 속도가 빠르다. 우린 그렇게 적정 거리를 벌린 채로 각자 걸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홀로 걸으며 몰두하는 순간이, 나는 진심으로 기껍다. 지혜도 그렇다는 걸 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동이 터온다. 동녘에서부터 번져오는 청색으로 물든 세상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마음 어딘가가 찡해지는 광경이다.
여명이 걷히며 세계는 좀 더 따스한 색으로 차오른다. 날이 완전히 밝자, 이제 모든 사물은 자신만의 색으로 힘차게 빛난다. 우기를 맞은 짙푸른 녹음이 들판을 가득 메우며 저어 먼 히말라야 산맥에 닿아 있다. 아침을 맞은 아낙들은 빨랫감이 든 바구니를 들고 걸어오더니 우릴 향해 천진하게 웃는다.
포카라 관문에서 한참을 지나도록 인가는 (의외로) 드문드문 이어진다. 이따금 갈림길이 나오곤 했는데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갈림길이 아니어도 5km에서 멀게는 10km마다, 포카라 이후 첫 번째로 큰 마을인 다마울리까지 남은 거리를 아라비아 숫자와 영문으로 적은 바위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포카라와 다마울리의 중간인 카이레니이므로, 대충 다마울리까지 남은 거리를 절반으로 잘라 계산하면 될 것이다. 첫 번째 바위를 발견했을 땐 나도 지혜도 너무 기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8시를 넘기자, 조용하던 도로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매연을 내뿜으며 자재를 싣고 달리는 덤프트럭들이 종종 보인다. 횟수는 점점 빈번해지더니 곧이어 여객 버스와 승용차도 섞인다. 차선은 분명치 않아서 저희들끼리 알아서 오간다.
오전 9시경 발견한 도로변 우물가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어제 먹다 남은 바나나와 망고, 비스킷이다. 물을 길러 온 여인들이 우릴 보고 저희끼리 웃으며 소곤댄다.
지혜는 포카라에 머물며 열심히 공부했던 네팔어로 그들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그네들은 인구의 절반밖에 쓰지 않는다는 네팔 공용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좀 떨어진 곳에서 멀거니 그 풍경을 보자니, 어쩐지 오늘의 아침을 오래도록 기억할 예감이 든다.
카이레니까지는 30킬로미터가 남았다. 확실히 도보여행 경험이 있는 지혜의 걸음은 어딘지 힘차다. 그에 비해 내 걸음은 느리고 무겁다.
지혜는 평소에도 쉼 없이 어딘가를 탐험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포카라에 있는 동안 산책보다 힘든 건 거의 해보질 않았으니 당연했다.
어깨가 배낭의 무게를 실감하기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차피 카이레니까지 가지 않고는 답이 없다. 포카라와 카이레니 사이엔 지도상에 표시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간혹 도로에서 마주친 현지인들은 길가에 선 채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곤 했다. 아이들은 뒤를 졸랑졸랑 따라오기도 했다. 한 번은 사람 몸집만 한 개가 끈질기게 우리 옆을 걸었다. 동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나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혜는 식겁하여 개의 움직임에 따라 거릴 두느라 오락가락 바쁘다.
어쨌든 우리의 행진은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오후가 되기 전 카이레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휴식시간은 1시간마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그러나 한계는 소리 없이 착실하게 찾아왔다.
20km를 넘긴 지점부터다.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의 무게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는 배낭끈이 어깨 살 속으로 파고들듯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25km를 넘자, 싫다 좋아 따질 여유도 사라졌다. 정말이지, 딱 죽겠다. 기온이 오르면서 땀도 비 오듯 쏟아진다. 다리는 그럭저럭 버티는데, 어깨가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너무 아프다.
“이 염병할 동네는 언제 나오는 거야?”
이 와중에 앞서 걷는 지혜는 온갖 레퍼토리의 노래를 불러대고 있다. 철 지난 유행가, 만화 주제가에다 국토대장정 때 불렀다던 노래까지 끝이 없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체력이다(아니, 내가 운동 부족인가?).
처음에는 나만 힘든 것 같아 짜증 났는데, 짜증을 넘어서자 이번엔 오기가 뻗친다. 나는 덩달아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어릴 적 만화영화 주제가를 줄줄이 메들리처럼 불러 젖혔다. 지나던 사람들이 미친 사람 보듯 하거나 말거나.
지혜가 갑자기 외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뭐다?!”
“엉?”
“카트만두! 카트만두!”
“미쳤냐?”
지혜가 날 휙 돌아보더니 또 외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뭐다?”
나는 멍청히 보다가 대꾸했다.
“카…… 트만두?”
그러자 지혜가 신이 나서 “카트만두! 카트만두!”라고 외친다. 보던 나는 얼떨떨했지만, 아무렴 어떠냐 싶어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순간 고됨에 자리를 빼앗겼던 설렘과 그리움이 왈칵 밀려오며 고갈된 줄 알았던 기력이 좀 돌아온다.
이래서 노동요며 구호가 있는 건가?!
어깨의 고통이 감각의 한계를 넘은 순간부터 두 다리는 신들린 듯 저 혼자 움직인다. 그렇게 가고 또 가다 보니, 기어이 30km를 넘어선다.
드디어 오매불망 그리던 카이레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십 대의 버스나 트럭이 드나드는 메인도로를 중심으로 시골 읍내와 비슷한 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생각보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그래도 나와준 게 어디야.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왔다! 왔어요, 언니!”
“그러니까. 미쳤다, 진짜.”
노골적인 시선들에 에워싸인 채, 우린 발과 어깨의 통증도 잊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기쁨은 머잖아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