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6. 보헤미안 하이웨이 - 5

by 소라게

물론 우리가 포카라 수준의 숙소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건물을 통틀어 샤워시설이 아예 없으리라고는 정말로 예상 못했다.


당연히 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샤워를 생략한 채 출발했던 우리는 아주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마을에 달랑 하나 있다는 숙소를 묻고 물어 찾았으나 공용화장실만 하나뿐, 샤워시설이 따로 없단다. 얼이 빠진 우리 다리 밑으로 개와 닭, 새까만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지나간다.


객실은 더욱 가관이다.

문을 열고 목격한 방 상태는 고스란히 문화 충격이다. 객실은 도배도 장판도 일절 없다. 시멘트 처리만 간신히 해두었다. 3평 정도가 될까 말까 한 공간에 2개 놓인 매트리스 시트는 시커멓게 때가 타 원래의 색을 짐작조차 못하겠다. 굳이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아도 저기에는 벼룩과 이가 득시글대겠지.


오늘 저녁은 비옷 당첨이다. 숙면은 글렀다. 그럴싸한 식사도, 대궐 같은 방도 아닌, 그저 샤워시설이 있는 방을 원했을 뿐인데, 그것이 이렇게나 원대한 꿈이었을 줄이야. 그런 방은 포카라에나 있다는 숙소 주인의 말에 우린 나란히 합죽이가 되었다.


길에서 잘 순 없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객실료를 지불했다. 그리고 각자의 침대에 짐만 던져둔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우린 약속이나 한 것처럼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웃음이 멈추질 않아 나중에는 숨까지 헐떡였다.

와락 터진 웃음은 멈추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벌레나 잡자.”

“……”


우리는 벽을 타는 벌레가 침대 위로 떨어지지 않도록 침대를 벽에서 멀찌감치 떼어놨다. 천장에서 떨어질지도 모를 벌레는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포카라에서 구입한 모기향을 콘센트에 꽂아 켰다. 다시 객실을 나가 씻을 공간이 아예 없냐고 물었더니, 숙소 주인은 닭장 옆의 간이화장실 두 칸을 가리켰다. 안에 수도가 있단다.


나는 지혜부터 씻으라고 내려보낸 뒤, 그녀가 돌아온 즉시 목욕용품을 챙겨 아래로 내려갔다. 열악하다는 지혜의 전언을 듣고 각오가 남달랐던 터라, 막상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의 충격은 덜했다. 의외로 안은 깨끗한 편이기도 했고. (솔직히 객실이 아니라 간이화장실에서 자고 싶을 정도다)



화장실 구석에 굴러다니는 양동이와 바가지를 끌고 와서 쭈그려 앉아 수도에서 찔끔찔끔 새 나오는(…) 찬물로 씻기 시작했다. 이렇게 더운 날씨인데도, 산에서 끌어온 물은 얼음장 같다. 그래도 뙤약볕에 달궈진 몸이 단숨에 식으며 무척이나 개운하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기분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숙소 주인은 처음부터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바디랭귀지도 거의 통하지 않아서, 그가 밖에서 데려온 웬 청년이 임시로 통역을 맡아주었다. 그의 영어는 서툴렀지만, 적어도 서로 뜻을 이해할 정도는 됐다. 그가 아니었으면, 우린 점심도 쫄쫄 굶었을 것이다. 이 숙소 식당은 메뉴판도 없었으니까.


가능한 메뉴를 묻자 청년은 숙소 주인과 몇 마디 나누더니 “야채 볶음면, 맥주, 콜라, 물, 달밧.”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맥주 한 병과 야채 볶음면을, 지혜는 콜라와 달밧을 시켰다. 숙소 입구를 들어올 때 바로 보였던 주방 상태는 애써 잊었다. 그 편이 정신건강에 훨씬 좋을 테니까.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피부병을 앓는 개가 다가와 나를 말끄러미 본다. 끼니때를 귀신같이 눈치챈 파리들도 슬슬 꼬이기 시작한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시원한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자, 식도와 위가 불에 덴 듯 화끈거린다. 그래도 환장하게 좋다. 빈속은 알코올을 악착같이 빨아들인다. 맥주 한 모금에 몸이 젖은 종이처럼 축 늘어진다. 저녁에 잠들 침대 꼴을 생각하면 차라리 맥주나 실컷 마시고 진탕 취해서 잠들어 버리는 편이 낫겠다.


다음으로 나온 메뉴는 야채 볶음면이다. 널찍한 접시 수북이 담긴 야채와 볶음면은 아주 먹음직스럽다. 나는 면을 포크에 둘둘 말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지혜는 콜라를 홀짝홀짝 마시며 내 먹부림을 부러워했다.


“너도 먹어.”

“괜찮아요. 전 달밧 먹을래요.”


난 접시를 싹싹 비우고 맥주를 한 병 더 시켰다. 추가로 주문한 맥주와 함께 지혜의 달밧이 나왔다. 포카라에서 봤던 놋쇠 그릇이 아닌, 급식실에 산처럼 쌓여 있곤 하는 양철 배식판이다. 위에는 폴폴 날아다니는 쌀과 달밧 그리고 ……수저가 없다?


“수저 없네. 달라고 할까?”

“됐어요. 손으로 먹으면 되죠.”

“뭐? 손??”


깜짝 놀라 지혜를 보는데, 지혜의 손은 이미 밥에 쑥 들어가 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왜 굳이 손으로 먹어? 안 뜨거워?”

“원래 손으로 먹잖아요.”

“그런다고 진짜 손으로 먹냐?”

“괜찮아요, 괜찮아. 안 죽어요. 한 번쯤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나는 더 말려보려다가 내버려 두었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

난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지혜가 먹는 걸 지켜보았다. 손으로 밥을 집어 소스에 넣고는 조물조물 묻히더니 그대로 집어 입에 넣는다. 모양새가 제법이다. 손으로 과자 집어먹는 그런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될까? 하기야 샌드위치도 맨손으로 집어먹는데 뭐. 생각보다 거부감은 없다. 나중에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


“맛있냐?”

“먹을 만해요. 맛은 평범한데 먹는 방식이 재밌네요.”

“뜨겁진 않아?”

“별로요. 언니도 드셔 보실래요?”

“……아니. 너 많이 먹어. 다 먹어.”


나는 다시 맥주에 집중했다. 손끝으로, 발끝으로 퍼져가는 취기가 간지럽다. 서서히 졸음이 몰려온다. 2번째 병이 반쯤 비워졌을 때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지혜의 손이 우뚝 멈춘다.


“어……?”


맥주잔을 입에 댄 채로 지혜를 흘끗 보았다. 표정이 어째 심상치가 않다.


“왜?”

“…… 벌레…….”

“엥?”


소스라치게 놀라 의자에 늘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지혜는 넋이 나간 얼굴로 밥을 비벼둔 소스 한쪽을 가리킨다. 거길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파리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 징글징글한 다리가 오그라든 두 놈이 소스를 듬뿍 뒤집어쓴 채 뒹굴고 있다.


나와 지혜는 길게, 아주 길게 침묵했다. 그때 멈춰있던 지혜의 손이 다시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릇에서 손을 뗄 줄 알았던 나는, 밥을 쥔 손을 그대로 입에 가져가는 지혜를 보고 경악했다.


“야, 그걸 왜 입에 넣어!”


지혜는 입에 넣은 밥을 오물거리며 침착하게 대꾸한다.


“먹는다고 죽겠어요. 불에 볶았으니까 소독도 되지 않았을까요?”

“허……!”


황당해서 머리가 다 띵하다. 지혜는 파리들이 빠진 소스를 한쪽으로 치우더니 남은 밥을 전부 먹어치운다. 나는 지혜가 하는 양을 어이없이 보았다.


왜, 아예 파리도 같이 드시지.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비옷을 깔고 드러누웠다. 배낭을 메고 온종일 걸었던 낮보다 정신적으로는 지금 더 지친 것 같다. 간이화장실에서 씻고, 30년은 빨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매트리스 위에서 자야 하며, 하다 하다 못해 파리가 들어간 식사까지…….


짙은 회의감은 어쩔 수 없다. 쿤밍에서 라오스로 향하던 슬리핑 버스도 이보다 열악하진 않았다. 그래서 답을 찾지 못한 채 한동안 묻어두었던 그때의 의문이 다시 치민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려고?


낯선 길 위에서 방향과 목적지를 잃은 기분이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 것이 있긴 했을까? 문득 깨닫고 보니 길인 줄 알았던 곳이 미궁이었다, 는 감각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들어선 입구가 있으니, 출구도 있으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뿐. 이 여정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그 끝엔 무엇이 있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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