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헤미안 하이웨이 - 6
새벽 4시쯤, 어깨에서 심각한 통증을 느끼고 잠이 깼다. 양 어깨에 뜨거운 바위가 얹어져 살갗과 근육을 지지는 것 같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고통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양 팔을 들어 올릴 수조차 없다. 어제 잠들기 전만 해도 괜찮다 싶어 걱정하지 않았는데, 하룻밤 저녁이 복병이었다. 배낭을 어깨에 메자, 살갗에 붙은 불길이 뼛속까지 단숨에 집어삼킨다. 나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흘렸다.
지혜도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괜찮으냐고 물으니, 발에 물집이 하나 잡힌 거 외에는 그런대로 견딜 만하단다. 내가 엄살을 부리는 건지, 지혜가 무적인 건지 모르겠다.
막상 숙소를 나와 거리로 나서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통증을 한결 가볍게 해 주었다. 그러자 못 갈 건 또 뭐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시각은 다섯 시. 손목시계로 확인했다.
걷는 도중의 피로감은 첫날보다 이르게 닥쳐왔다. 전날 밤의 숙면은 술기운을 빌려서도 불가능했다. 몇 번이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이것은 피로가 풀린 것도 안 풀린 것도 아니다. 길을 나선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리에 바윗덩이를 매단 듯 발이 질질 끌린다. 이제 고작 2km를 왔을 뿐인데, 남은 거리를 어떻게 걸을지 암담하다.
앞서 걷는 지혜의 컨디션은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자는데 왜 쟤만 저렇게 팔팔하지?
“쉬었다 가자, 우리.”
고작 1시간 만에 쉬자는 말이 먼저 나왔다. 지혜가 걱정하며 물었다.
“많이 힘들어요?”
“죽겠어. 어깨가 너무 아파.”
“그럼 30분 정도 쉬었다 걸어요.”
3시간 남짓 걸었을 때, 다마울리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이정표 바위를 발견했다. 다마울리 20km. 두 자릿수를 확인하자 딱 졸도할 것 같다. 해는 슬슬 정수리를 향해 가고 있다. 전신은 이미 흠뻑 젖었고, 입에선 단내가 난다.
일단 쉬자. 일단은, 쉬자.
“뭐라도 좀 먹자.”
“그래요.”
우린 길바닥에 주저앉아 전날 사두었던 비스킷과 과일을 조금씩 먹으며 지도를 봤다. 다마울리는 꽤 큰 마을이다. 지혜가 기뻐한다.
“양질의 식사! 깨끗한 숙소!”
“가능하겠지?”
“양질의 식사! 깨끗한 숙소!”
“양질의 식사! 깨끗한 숙소!”
우린 시시하지만 절실한 구호를 간절히(특히 내가) 외쳤다. 지도에 유난히 큼지막하게 표시된 마을 이름을 보니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양질의 식사와 깨끗한 숙소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부푼다. 그것만으로도 어깨의 고통이 조금은 견딜 만 해진다.
20km쯤 갔을 때, 굽이돌던 계곡이 자리를 비키고, 산속에 숨은 평지가 나타났다. 그리 넓진 않으나, 편평한 대지는 풍성하고도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였다. 계곡길 아래로는 작은 실개천이 흐른다. 지금까지의 열 띄고 두텁던 밀림의 경치와는 달리, 어딘지 봄을 꿈꾸게 만드는 풍경이다.
커브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밑동부터 굵직한 줄기가 뻗어 오른다. 하늘을 움켜쥘 듯 사방팔방으로 뻗은 가지마다 잎사귀가 무성하다. 구불구불 뒤틀린 굵은 가지마다 태고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나무 뒤의 경사면 아래 계곡은 듬성듬성 고인 연못과 웃자란 수초들로 빼곡하다. 멀지 않은 계곡에 피어오른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이 숲 허리를 감싸고 있다.
투명한 모래와 깨끗한 물아래에 잠긴 자갈이 햇빛에 반사되어 사금처럼 빛난다. 길가의 나무 한 그루는 신화의 한 장면 같은 앞뒤의 두 세계를 경계 짓는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감각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월적인 광경은 육체의 모든 고통을 단숨에 밀어낸다. 나는 순수하게 압도된 채로 그저 서서 오래도록 이 풍경을 눈에 담는다.
남은 12km는 금방이었다. 유독 숲이 짙었던 구간을 통과하는 동안 스며든 미지의 힘이 내 신체의 한계를 넘게 해 주었을까?
한낮에 입성한 다마울리는 카이레니의 2배 규모다. 자갈로나마 포장된 도로가 마을 한복판을 가르고 있다. 양 길가에는 제법 큼직한 건물들이 늘어서 이런저런 식료품과 물건을 판다.
이곳에서는 숙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마울리의 입구 근처에 바로 한 곳이 있고, 내부 상태도 제법 양호하다. 카이레니에 비하면 호텔 급이다.
안내받은 객실도 하늘색 천장과 흰색 벽으로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었다. 객실 내에는 화장실이 비치돼 있으며, 바닥엔 타일도 깔려 있다(내가 이런 걸로 감동할 줄은 몰랐지만). 화장실 구석에 죽은 채 방치된 바퀴벌레 한 마리가 거슬렸지만, 그 정도야 뭐.
자리에 앉자마자 신발부터 벗었다. 퉁퉁 부은 발은 앉아만 있는데도 욱신욱신 저리다. 왼쪽 발의 발가락과 발바닥이 이어지는 부위에 큼직한 물집이 하나, 오른쪽 발뒤꿈치, 발바닥에 하나씩 또 있다. 오른쪽 것은 심하지 않은데 왼쪽 발이 문제다. 내일이면 상태가 꽤 심해질 것 같다.
“숙소 깨끗해서 정말 좋네요. 식당도 괜찮겠죠?”
“응. 희망적이다.”
“그러게요.”
짐을 정리한 뒤,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긴장이 풀린 발의 통증은 더 심해져서,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밥에 대한 집념 하나로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길의 끝에서 끝을 몽땅 뒤졌다. 그러나 괜찮다 싶은 식당은 없었다. 허탈해하며 숙소 방향으로 되짚어오는데 지혜가 말한다.
“아까 길 건너편에 팬케이크랑 감자튀김 프린트된 간판이 있더라고요. 거기 가볼까요?”
“어디서? 난 못 봤는데.”
“눈에 확 들어오던데요.”
“……앞으론 그런 걸 보거든 좀 일찍 말하자.”
식당은 숙소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간판에 프린트된 빛바랜 사진들만큼은 정말 먹음직스러워서, 다른 사실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우린 당장 그곳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