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7. Falling down, Falling apart - 5

by 소라게



며칠의 고생이 허무하게도, 카트만두 도착까지는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버스 종착지는 카트만두를 빠져나올 때 보았던 혼잡한 사거리다.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타멜을 향해 걸었다. 잠시 택시를 탈까 고민했으나 흥정 때문에 실랑이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타멜은 나오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다. 결국 행인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 타멜까지는 두어 시간을 걸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는 150루피를 불렀고, 흥정은 생략했다.


눈에 익은 파크나졸 거리가 보이자, 집에 돌아온 것 같다. 가든하우스로 진입하는 주택가 골목 앞에 내려서는 마른 개똥이 자갈처럼 널린 익숙한 길을 걸었다.


가든 하우스는 내가 떠나갈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빠끔히 열린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있던 낯선 얼굴이 “Hi.”라며 인사를 건넸다.


“재인!”


마침 정원으로 나오던 마두가 날 발견하고 반갑게 외친다. 물 빠진 청바지와 푸른색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그는 손에 세탁물을 들고서 한 달음에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예정일은 5일 정도 더 남았잖아요. 다른 친구도 함께 온다면서요.”

“안녕, 마두. 일단 한숨 돌리고 얘기할게요.”

“마실 것 좀 갖다 줄까요? 이런, 꼴이 말이 아니네.”


마두는 나를 로비 소파에 앉히더니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가져왔다. 돌아온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캣이 함께였다.


“세상에, 재인!”


캣은 날 보자마자 긴 팔로 덥석 껴안는다.


“맙소사! 널 못 보고 떠날 줄 알았는데.”

“떠나? 어디로?”

“독일로. 봉사활동이 끝났으니까.”

“언제?”

“사흘 뒤. 아무튼 이렇게 작별 인사하고 갈 수 있어서 잘됐어.”

“응.”


캣과의 뜻하지 않은 재회로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조금 떠오른다. 카트만두에 돌아와 마두와 만나고, 캣과 반가움을 나누는 이 순간만큼은 지난 5일간의 사건사고가 까마득히 잊힌다.


“진짜 요 5일 동안 걸어서 왔어요?”


전에 쓰던 방에 여장을 풀고 씻은 뒤, 다시 로비의 소파에 널브러진 내게 마두가 묻는다. 그의 손에는 병맥주가 세 병 들려 있었다.


“100km 정도 걸었나. 다마울리까지는 갔어요.”


마두가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젓는다. 제정신이 아니군, 이라고 이마에 쓰였다. 옆에 앉아있던 캣이 묻는다.


“왜 그런 여행을 한 거야?”


난 어깨를 으쓱했다.


“우기 때문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하기 어렵고,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카트만두로 돌아오자니 아쉽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카트만두와 포카라 간의 도보여행이었거든.”


답변에 대한 캣과 마두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캣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며 환호했고, 마두는 왜 그런 미친 짓을 굳이 하느냐는 쪽이었다.


“그래서, 즐거웠어?”


캣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나는 대답을 망설인다. 그 여정은 간단한 감상으로 끝낼 수 없는 시간이었어서. 즐거운 순간도 또렷했지만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순간도 너무나 컸어서.


“살면서 몸과 마음이 그렇게 동시에 힘들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아.”


그 사이 새로운 병맥주를 가지고 돌아온 마두가 물었다.


“중간에 먼저 돌아온 거죠? 같이 걷는 친구는 어쩌고요?”

“그 친구는 지금 한창 길 위를 걷고 있을 거예요. 내가 먼저 돌아온 건……”


나는 잠시 말을 삼켰다가 다시 정돈했다.


“오다가 버스 전복 사고를 목격했어요. 그게 엊그제 일이에요. 커브를 돌던 버스가 무게중심을 잃고 그대로 절벽 비탈로 굴러 떨어지더군요. 나와 내 친구가 그 사고의 최초 목격자였어요. 우리 바로 눈앞에서… 고작 3~4m 앞에서 벌어진 사고였어요.”

“뭐라고요?”

“정말?!”


캣과 마두가 동시에 경악한다. 벌떡 일어난 마두가 로비의 카운터에서 신문을 들고 온다. 네팔어 신문이라 내용을 읽을 순 없지만, 1면을 장식한 커다란 사진만으로도 헤드라인이 충분히 파악됐다. 사진엔 한창 구조 작업 중인 버스의 전복사고 현장이 찍혀 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뭐라고 쓰여 있어요?”


신문을 읽어내리는 마두의 눈매가 침울하다.


“십여 명의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중상이래요.”


그리곤 덧붙인다.


“안타깝게도 네팔에서는 흔한 사고입니다.”


마두의 어조는 몹시 씁쓸했다. 현장을 보아 아는 나는 왜 흔한 사고냐고 되묻지 않는다. 캣은 느닷없는 무거운 주제에 마두와 내 얼굴만 번갈아 볼 뿐, 자세한 건 묻지 않는다.


신문에 실린 현장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날의 충격이 다시금 떠오른다. 마음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후회와 두려움이 다시 쑤석인다. 나는 아마 그 사고를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아니, 이 도보 여행 자체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계속 걷겠다던가요?”

“네. 저도 놀랐어요. 그럴만한 친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강하달 지, 무모 하달 지…… 아무튼 대단하네요.”

“……그렇죠.”


나는 새로운 맥주를 따서 입에 가져간다.






카트만두로 돌아온 뒤, 사흘 동안은 내쳐 잠만 잤다. 이틀 째에 잠깐 마사지를 받으러 가긴 했었다. 가든 하우스에 도착한 후, 긴장이 완전히 풀린 몸은 당일 저녁부터 끔찍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 몸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각종 근육이 통증을 호소하는 통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장육부가 아니리 오직 외과적인(?) 이유로 이렇게까지 호되게 앓은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5분만 걸어도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고, 그저 앉아있기조차 오래 버티지 못했다. 눕는 것 외엔 편한 자세가 없었다.


그래서 버티다 못해,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 자체는 시원찮았지만, 누군가 몸을 부드럽게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굳었던 근육이 많이 풀렸다. 그리고 마사지샵에서 만난 사장도 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마사지를 마친 나는 그와 차이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불안정한 네팔의 정세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거나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자 유학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이 주된 내용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며 가며 이야기를 나눴던 많은 네팔리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한국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지 않겠느냐. 적어도 이곳에서보다는 많이 벌 것이다. 한 달에 600~700달러는 가족들에게 송금해줄 수 있다, 등등.


그러나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처우 실태를 아주 모르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 남자가 직면한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가서도 문제지만, 한국에 가기까지의 문제는 더 심각했다.


한국에서의 취업활동을 위해 필요한 비자나 그 밖의 자격을 갖추는 데에 드는 비용은 3천 달러. 그 액수도 이곳 사람들에겐 엄청난 부담일 텐데, 개인과 한국 영사관을 연결하여 이 과정을 알선하는 에이전시의 부정부패가 극심하단다.


에이전시는 까마득히 밀린 비자 인터뷰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 8천 달러의 부당이득을 갈취한다. 이게 엄연한 불법임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단다. 신고해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현 네팔 정부는 민생을 돌볼 여력이 없다. 몇 백 년이나 명맥을 이어 온 왕정이 무너지는 대변혁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에. 거대한 시대 변화에 가장 크게 치이는 대상은 결국 힘없고 평범한 서민임은 고금을 막론하고 똑같고.


“자력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외부에서라도 도움을 청해야죠. 그래서 지금 해외 각국 외신이 카트만두에 와 있답니다. 네팔의 혁명적인 시기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세계로 전하기 위해서요."


외국인의 입장이란 퍽 재밌다. 대세가 거의 기울긴 했어도 아직은 껍데기나마 왕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자국민끼리 저런 이야기를 하기는 꺼려질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내게는 참 쉽게도 속내를 턴다.


어쨌거나 희망에 찬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치 국사 시간에 배웠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 사이의 역사를 다시 듣고 있나 싶기도 했고, 포카라에서 들었던 른진의 이야기도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팔의 상황이 어떻건, 대부분의 세계는 무심한 일상을 보내리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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