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7. falling down, falling apart - 6

by 소라게



마사지를 받으러 외출한 날을 제외하곤, 내내 숙소에서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었다. 그 마저도 질리면 뒤뜰 야외 테이블에서 멍하니 광합성을 하거나 장기 여행자들과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눴다. 강행군의 5일이 까맣게 잊히는 평온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뭔가가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무엇을 해도 진정되지 않았다.


둘째 날 저녁, 지혜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감이 썩 좋지 않은 수화기 너머로 그 아이는 벌써 다마울리에서 55km가 넘는 지점까지 와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 몹시 지쳐 있어서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 버스를 타고 오라고 권했다. 그러나 지혜의 완주 의지는 확고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그리고 카트만두에 돌아온 지 나흘째인 오늘 아침, 일찍부터 마두가 방문을 두드렸다.


“로비에 가 봐요. 당신을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날요? 누가?”

“그 도보여행 중이라던 친구 같은데요.”

“진짜요?!”


나는 마두를 스쳐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로비 입구에 서서 주위를 살폈지만 지혜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유심히 둘러본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소파 한쪽 구석에 정물처럼 앉아있는 지혜를.


그 아이를 보는 순간 기이한 감각이 나를 휩싼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은 지혜가 분명한데, 내가 여태 알던 그녀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인지된다.


검게 그을린 지혜의 얼굴은 적막하다. 무엇을 보는지 밑으로 내리깐 눈꺼풀은 무겁다. ‘초월’에 물리적인 형태가 있다면, 저기 앉아있는 지혜와 닮아있지 않을까?


불현듯 눈앞이 아찔하다. 지혜를 보며 내 안에 탁한 좌절감이 번진다. 도보여행이야 하다 말 수도 있는 걸 텐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패배감이 클까?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산다고 생각했던 나의 어디에 이런 맹렬한 승부욕이 숨어있었을까?


혼자 걷다가 포기했으면 기분이 이렇게까지 너절하진 않았을까?

아니, 이게 승부욕이 맞긴 한가?

그냥 여태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속이며 과대평가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인가?


……그만.


갈수록 아득해지는 시야를 붙잡고 급히 생각에 제동을 건다. 지금은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이다.


머릿속의 스위치를 끄자, 빗발치던 생각들이 거멓게 죽는다. 울렁거리던 뱃속도 가라앉는다. 나는 무념이 드리운 안온한 그림자 속으로 숨는다.


“지혜야.”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지혜는 대답하지 않는다. 여전히 밑의 어딘가를 고요히 응시할 뿐이다.


“김지혜.”


지혜가 고개를 든다. 초점이 돌아온 투명한 두 눈이 나를 담는다. 사위의 풍광을 오롯이 비추지만 제 속은 한 치도 내보이지 않고서 깊은 숲을 흐르는 강처럼. 내 속이야 어떻건, 그것은 어딘지 경건하고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는 순간이다.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은 실재일까, 아니면 내 좋을 대로의 해석이 덧씌워진 걸까?


“언니.”


지혜가 담담히 나를 부른다. 나는 조용히 지혜 옆에 앉는다.


“언제 왔어?”

“방금요.”

“몸은?”

“……모르겠어요.”


질문이 오니 답을 하고는 있지만, 지혜는 나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어딘가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일단 쉬자.”

“……”


지혜를 대신해 마두를 불러 체크인을 부탁했다. 숙박계는 내가 대신 작성했다. 지혜는 내내 말을 잊은 사람처럼 내 옆에 서있었다.


지혜의 짐을 들고 마침 비어있던 내 옆방으로 올라갔다. 뒤따라 온 지혜를 방에 데려다 놓은 후에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지혜가 현실로 완전히 돌아온 것(이라기보다는 현실감각이 온전히 돌아온 것)은 이틀이 지나서였다. 카트만두에 도착했던 나처럼, 지혜도 이틀을 꼬박 숙소를 떠나지 않으며 자고 먹기만 반복했다.


사흘째 아침, 꼭두새벽에 일어난 지혜는 자전거를 빌려 외출했다. 이 소식은 느지막이 아침을 먹으러 내려온 내게 마두가 알려주었다. 나는 100km를 걷고 회복하기까지 나흘이 걸렸건만, 얘는 200km를 걷고도 이틀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난다. 우린 무엇이 다른 걸까? 체력? 경험? 아니면, 정신력?


지혜는 오후가 돼서야 돌아왔다. 마침 로비에서 노트북으로 작업 중이던 나는 지혜를 붙잡아 앉혔다.


“어떻게 3일 만에 왔어? 원래는 닷새로 잡고 있었잖아.”

“혼자 걷는 게 무서워서 죽을 각오로 걸었죠, 뭐.”

“하루에 얼마씩 걸었어?”

“많이 걷지 않는 날은 20km도 안 돼서 멈췄지만, 마지막 날엔 50km 넘게 걸었어요.”

“50km? 너 미쳤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거든요.”


지혜가 말했다. 나와 헤어진 날 이후로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나,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혼자 걷고, 혼자 잠들 때였다고. 그건 정말이지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단다.


“카트만두가 가까워질수록 딱 죽겠더라고요.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지, 여자 혼자니까 와서 쓸데없이 집적거리는 남자들 천지지, 매연은 심하고, 버스나 트럭도 많아져서 도로 위험은 커지지……. 언니랑 카트만두로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시도 때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계속 걸었어?”


지혜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모르겠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가 처음 도보여행을 계획했던 마음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카트만두에 도착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굉장하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었죠.”

“그래서?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는 어땠어?”


지혜는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담담했어요. 오히려 뭐랄까. 그냥 그렇구나……, 다 왔구나……, 정도?”

“……뭐야, 그게.”

“그러니까요.”


지혜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러나 본인은 모를 것이다. 그 험한 길을 걷기 전과 후의 스스로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저런 무연한 얼굴을 하게 된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나는 영영 모를 것이다.




며칠 뒤, 우린 숙소를 옮겼다.

새 숙소는 타멜 촉 너머, 빙글빙글 어지럽게 얽힌 골목 어딘가 콕 박혀 있다. 처음 찾아오기는 어렵지만, 가든하우스와는 다른 의미로 인근이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 골목만 나가면 편의시설과의 접근성도 뛰어나다(가든하우스에서는 타멜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었다). 아름답고 아늑하고 내 집 같기로는 가든하우스만 한 곳이 없지만, 새 숙소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시설 자체는 오히려 더 깨끗하고 좋다.


무엇보다도 이 숙소는 모처럼 한국인들이 가득하다. 여행을 떠난 뒤로 이렇게 많은 한국인과 같은 숙소를 쓰기는 처음이어서인지, 고국에 돌아온 듯 마음이 편하다.


옮긴 숙소에서도 지혜는 여전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나 동네에서 보내는 나와 달리, 지혜는 아침 일찍부터 나가 종일 밖을 쏘다닌다. 그래서 포카라에 있을 때처럼 서로 마주치기가 힘들다.


나는 지혜와 같은 공간에 머무르면서도 그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이 기껍다. 이런 복잡한 심경을 겪어보기는 처음이라 원인이 뭔지,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도 이름 붙이기 어렵다. 내 안에서 최초의 어떤 일인가가 일어나는 중인데, 도대체 그게 뭔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그런 나를 당분간 그냥 내버려 둘 작정이다. 대신 새 숙소에서 새 얼굴들을 만나는 것으로 숨 돌릴 기회를 만들고 있다.


숙소를 바꾸던 날에는 그간 여러모로 나를 살뜰히 잘 챙겨준 마두와 헤어지기가 가장 아쉬웠다. 더욱이 카트만두를 아주 떠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숙소만 옮길 뿐이라서 미안함도 있고 그랬다.


체크아웃을 하는 내게 마두가 무척 서운해하며 물었다.


“카트만두를 떠나면 고국으로 돌아가나요?”

“아뇨. 아마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까요?”

“어디로……?”

“글쎄요. 네팔에서 오랫동안 체류할 예정으로 이 여행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그 사이 여러 가지 일을 겪어서 마음도 좀 많이 달라진 것 같고요.”

“그렇군요.”


원래 계획은 포카라에서의 장기체류였다. 도보여행을 계획하기 전만 해도 되돌아간 카트만두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포카라로 돌아올 참이었다(중간에 가까운 인도도 다시 다녀올 겸). 그러나 달랑 5일간의 도보여행이 앞으로의 계획을 몽땅 뒤엎어 버렸다.


누가 뭐래도, 어떤 일을 겪어도 나는 내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당연히 그런 사람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왔었다. 그래서 도보여행도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중도하차를 경험한 후, 나는 내가 몹시 낯설어졌다.


정확히는 여태 안다고 여겼던 나에 대한 모든 정보가 허상임을 알고 난 후의 탈력감에 짓눌려 있다. 단단한 실체인 줄 알고 쥐고 있던 것이 한순간 흩어진 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뭘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그저 막막하고 암담하다.



이대로는 네팔에 머문다 한들, 영원히 무엇 하나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답보 상태의 마음으로, 몸마저 한 자리에 머물러버리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무슨 이유로라도 움직여야 한다.

낯선 나와 함께 다시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온통 그런 생각에 잠겨있던 어느 날.

나는 타멜의 필그림 북하우스에 들렸다가 커다란 세계지도를 사 왔다. 그리고 잘 말려 햇빛 냄새가 나는 침대 시트 위에 그것을 펼쳤다. 그제야 콱 막혔던 숨통이 조금쯤 트인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세계지도가 아니다.

앞으로 내가 겪을 모든 가능성의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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