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조기폐경이 옵니다
나는 40대 중반의 여성이다. 결혼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자녀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한다. 사람들의 눈높이와 생각의 범위는 큰 격차가 없는 듯하다.
결혼 후 30대일 때는 "왜 아이를 낳지 않아요?"
30대 후반에 들어서는 “아기가 몇 살이에요?”
지금 40 중반인 지금은 “아이가 몇 학년이세요?”
사람들은 희한하게 나이에 맞게 질문을 하는 듯하다. 30대 후반은 거의 아이들이 7~8살이 되었을 터이고 40대 중반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일 테니 저렇게 물어보는 것도 틀린 질문은 아니다. 근데 나는 그 대답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질문 받을 때마다 늘 하는 대답은
“아직 없어요. 기다리고 있답니다.”
나는 아이를 못 낳는 여자다. 너무 슬픈 표현이지만 맞는 말이다. 딩크족처럼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고 있다.
나는 32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하면 아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생기는 결과물인 줄 알았다. 처음 1~2년은 다른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신혼을 즐겼고 34살 때부터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자연 임신이 좀처럼 되지 않았다.
친구의 권유로 난임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정확한 배란일을 잡으러 갔다. 앞으로 일어날 기나긴 슬픔의 터널을 예상하지 못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암담했다.
“얼른 시험관 시술을 하세요. 1~2년 안에 조기폐경이 옵니다”
우연히 한 검사에서 나는 내 자궁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듣고 난 뒤 그 황당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표현…. 바로 그 느낌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교회에 가서 마치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슬픈 영화의 주인공처럼 울부짖었다.
“하나님,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남을 해코지한 적도 없고 그냥 내 삶을 열심히 살았을 뿐이에요 근데 왜 제가 난임인가요?”
그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몇 시간을 울었다. 병원에서 조기폐경을 확인한 후 급한 마음에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이용해 바로 시험관 시술에 들어갔다. 난임, 시험관 시술은 딴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되니 모든 과정이 무섭고 두려웠다. 난임 정보도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2~3년 안에 조기폐경이 온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불안해서 연달아 시술했다. 시험관 시술은 난임과정에 있어서 제일 마지막 단계이기에 시술하기만 하면 임신이 될 줄 알았다. 3번 연달아서 했던 시술은 모두 실패!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직장을 다니면서 시험관 시술을 연이어서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30대 중, 후반이었기에 아기는 금방 생길 것 같았다. 직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방학 기간을 통해 그리고 병가를 내어서 시술을 계속했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실패! 34살에 시작한 시술을 나는 42살까지 하고 있었다. 42살 때 나는 또 다른 결단을 했다.
“지금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결과와 상관없이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버리고 아기를 갖기 위한 백수가 되었다. 시험관 시술은 몸도 힘들지만, 병원 대기시간이 어마어마해서 직장을 다니면서 하기에는 무리이다.
그렇게 일을 그만둔 지 4년째 나는 여전히 아이가 없다. 나의 자궁은 제 역할을 못 하는 게 확실하다. 아직도 나는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다. 시험관병원에서 5~6차가 넘어가면 고 차수에 해당한다. 나는 아마 왕 고차수중 단연 1등을 하지 싶다. 기억하는 마지막 차수는 25차이며 그 이후로는 숫자를 헤아리지 않는다. 나에게 무의미하므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숫자이다.
정부 지원도 끝나서 자비로 시험관 시술을 하는데 한 차 수시 500만 원 이상이 든다.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야 할 지경이다. 저출산 시대…. 제일 먼저 없어지는 나라가 한국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왜 나라에선 난임 지원을 이것밖에 안 해주는지 개탄스럽다. 병원에 가면 대기시간은 기본 2시간이며 아기를 낳고자 하는 부부들이 정말 많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0커플 중 3~4커플은 난임이라고 한다. 정부에서 지원을 과감히 많이 해주며 좋겠다. 몸도 힘든데 경제적인 부분까지 감당해야 하니 힘든 건 사실이다. 가끔 나는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 언제까지 할 거니?”
12년 전 나에게 조기폐경 진단한 그 의사는 돌팔이! 생리양도 줄고 주기도 짧아지고 있지만 폐경이 오지 않았다. 다만 난소기능저하라 난자의 질이 좋지 않을 뿐이다. 아마 이제 곧 폐경이 올 것만 같다.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예전에 지금의 남편이 아닌 옛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한 적이 있다. 만나면 고작 1~2시간 보고 헤어지는데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보러 갔었다. 지리산을 넘어가는 굽이굽이 도는 버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야! 너 너무 멋져! 이렇게 사랑에도 최선을 다하는 내가 너무 좋아”
시험관 시술 하는 내 맘이 그때 그 버스 안에서의 마음이다. 주변 지인들은 이제 그만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아기를 간절히 원한다. 당연히 아기를 낳고 싶지만,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이 과정을 꿋꿋이 씩씩하게 이겨내는 내가 좋다. 시험관 시술을 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거나 어떤 요인에 의해 그만둘 수도 있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기에 나는 도착지를 바라보고 전력 질주를 하고 있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떡볶이를 먹었을 때 20년 뒤에 내가 아기를 못 낳는 여자가 될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아기를 못 낳는 여자이다. 여태까지 흘린 눈물은 큰 호수를 채우고도 모자랄 것이다. 그 눈물을 흘릴 때마다 내 마음은 더 단단해진다. 병원 가는 일이 일상생활이 된 것처럼 이제는 즐기면서 최선을 다한다. 나와 인연이 닿는다면 이쁜 아기가 분명 찾아올 것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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