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복잡하고 마음이 어려우면 나는 잠을 청한다! 잠을 자도 자도 끝도 없이 잠이 밀려온다. 3일째 곰처럼 깊은 겨울잠을 잤다.
얼마 전 시험관 시술을 하려 서울 병원에 다녀왔다. 마지막 시험관 시술 이후 1년 9개월 만에 힘겹게 나는 다시 마음을 먹었다. 여태껏 다녔던 병원에는 더 이상 냉동 난자가 없었기에 병원을 바꾸기로 했다.
어느 병원을 갈까 고민도 되지 않았다. '어차피 될 거면 아무 데나 가도 되겠지'라는 생각과 '어차피 안될 건데.. 아무 데나 가자'라는 양가감정이 나를 힘들게 했다. 결국 최근에 아기를 낳은 동생이 추천한 곳으로 갔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3일 신선 배아로 해보자고 용기를 주셨다. "다음 생리할 때 병원 들리세요'초진을 보고 내려왔는데 마음이 힘들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내 마음의 우울함과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우울함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잠을 청해보아도 다시금 괴롭다! 내 깊은 곳에서 아기는 간절히 원하고, 내가 처한 현실은 가혹하다. 다시 피검을 해서 내 난자 상태를 알아볼 필요가 없다! 정말 마지막 단계다!
2년 전 브런치작가가 되고 "47살에 난임 30차!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라는 이름으로 첫 글을 썼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는데 나는 또 실패했다.
이제 49살에 난임 40차 이상이 되어 버렸다! 수도 없이 맞았던 배주사, 과배란으로 내가 만들어낸 난자와 정자는 결국 내 자궁에 안착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가버렸다. 실패하고 난 뒤 긴 겨울잠을 자고 돌아왔다.
결혼 17년 차에 34살 때부터 시험관 시술을 했으니 정말 오래 기간 동안 난임이라는 터널을 못 벗어나고 있다. 사실 마지막 시험관 시술 이후 거의 포기를 했다. 자녀 없이도 이제 우리 둘이서 즐겁게 살기로 했다. 그리고 1년 9개월이 지났다.
그러다 다시 마음이 돌아선다!
'그래도 아직 생리가 나오잖아!" 그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 가능성에 다시금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그동안 경험한 수많은 실패감과 좌절감에 내 발걸음이 두려움이라는 밧줄에 돌돌 묶여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길을 가고 싶지 않다. 다시 내 배에 주사를 놓고, 난자채취에, 이식까지 그 과정을 내가 다 견뎌낼 수 있을까? 아~~ 너무 두렵다! 시술과정이 두려운 게 아니라 맞닥뜨려야 하는 그 결과가 무섭다.
초진 보려 가는 날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나 서울 병원이야!"
"아이구 잘했네... 반갑다! 반갑다! 안 그래도 니 언제 병원 가나 기다리고 있었데이"
"빨리 병원 가라고 말하지 그랬어?"
"아무리 딸이라도 니 힘들까 봐 그 말은 못 하겠더라... 혹시나 시기를 놓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마지막 시험관 시술 이후 잠자고 있었던 1년 9개월 동안 우리 엄마는 내가 병원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다. 여든이 넘은 엄마는 막내딸 눈치가 보며 가슴속에 흐르는 눈물을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내 뒷모습만 보고도 눈물 흘리는 우리 엄마를 위해서라도 발걸음을 옮겨보자!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정말 이쁜 아가가 찾아와 내 손을 잡아 줄지.... 다시 마음을 먹었으니 용기를 내야 된다. 힘들어도 다시 한 발짝 움직여 보자!
"아직은 생리가 나오잖아! 그면 가능성이 있어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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