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나를 믿을 때 나는 나를 의심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너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능력 있다, 재능 있다고.
뭘 해도 잘 될 것이라고.
지인을 통해 어쩌다 알게 된,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을 볼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너는 빛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빛은 별빛과도 같아서 첫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정도는 아니지만 곁에 두고 오래 볼 수 록 상대를 끌어당기는 빛이라고 했다. 네 소원 또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게 주위에서 알아서 도와준다고.
모든 것은 사회초년생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아마도 첫 단추를 잘못 꿰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한 살 빠르게 모든 걸 시작해서 어수룩했을까, 첫 취업을 대차게 망했다. 입사 3개월 차에 월급도 못 받고 회사가 없어졌다. 하루아침에 대표가 사무실을 정리하고 튄 것이다. 어찌어찌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지만 떼 먹힌 내 월급은 받지 못했다. 그 후 들어간 다른 회사 역시 급여를 밀리게 주었고 고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규직 전환 제안을 거절했다. 몇 달간 방황하다가 한 회사의 공채에 지원하여 입사하였다. 그곳에서 2년 반의 시간을 다녔다. 야근과 철야로 두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폐렴에 걸리고 깨질듯한 두통에 찍은 CT에서 물혹이 보인다고 했다. 모처럼 제대로 된 회사였고 연봉도 높았지만 퇴사했다. 건강을 추스르고 다양한 회사들에 입사하고 퇴사했다. 마지막 회사는 4년 반을 다녔다. 팀원들이 좋아서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폭이 좁은 범위의 업무에 한계를 느꼈고 좀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퇴사했다. 모두들 너의 능력을 발휘할, 더 걸맞은 대우를 해줄 회사를 갈 거라고, 잘 될 거라고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퇴사하자마자 정말 가고 싶었던, 이름을 말하면 모두가 알 외국계 회사 면접을 2차까지 보았다. 최종만이 남아있었는데 연락 텀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게 더 있는지, 얼마나 걸릴지 문의 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곧 좋은 연락 갈 거라고 회신이 왔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내가 지원한 포지션이 취소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갑작스러운 사업 방향 변경이 있었다고 미안하다고, 너의 자료들은 탭 해두고 포지션이 리오픈하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니 수용했다. 직위자체가 없어졌는데 어쩌겠어...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최근 그 회사의 본사에서 몇백 명이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긴 한가 보구나. 그 후 다른 외국계 회사 면접 제의가 들어와서 1차 면접을 보았다. 반응이 좋았다. 면접관도 같이 일할 날을 기대하겠다고, 다음 면접 일정을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면접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정자가 있었다고, 본인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면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도와줄 거라고, 너는 잘 될 거라고, 너는 능력자라고 모두가 그랬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어느 순간에는 나도 그 말을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어디선가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걸까. 나는 정말로 '잘 될' 사람이었던 걸까.
모두가 나를 믿는데, 나는 나를 의심한다. 그래서 나에게 미안하다.
이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브런치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