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아 2022

위로는 결국 위로가 된다

by 른다


새해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갑자기 왼쪽 가슴에서 무언가 만져졌다. 포도알 젤리 같은 이 낯선 것이 언제부터 있던 것일까? 나 아직 20대 중반인데. 하룻밤의 지독한 염려를 끝내고 찾은 유방외과에서 생애 처음으로 유방 x-ray와 초음파를 찍었다. 그 심각한 와중에도 몇 년 전 조정석 배우가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찍었던 장면이 떠오르며 웃음이 났다.


나보단 같이 간 엄마가 더 걱정이셨다. 초음파를 20분도 넘게 보고 나왔을 땐 정말 심각한 얼굴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뭐가 되게 많던데? 이것저것 체크를 한 참 하더라고.”


마치 남의 일 같았다. 내가 이걸 걱정하기 시작하면 그땐 정말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교수님은 모양이 나쁘지 않고 전형적인 섬유선종(양성종양) 같다며, 하지만 크기가 크고 만져지니 제거를 하는 편이 좋겠다고 하셨다. 이 뭉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살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알고 나니 불안했고, 더 자세히 알게 되니 감사했다.


그렇게 나의 새해 첫 스케줄은 유방외과 시술 날짜를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동문학 공모전 발표가 있었고 보기 좋게 낙방했다. 백수로 한 해를 보내며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10월의 열정이 그렇게 세상에 있음도 알리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몸에 이상이 생기고 기대했던 바가 어그러지면 늘 평정을 유지하던 사람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같이 널뛰는 사람은 오죽할까.


애써 괜찮은 척, 실망하지 않은 척, 무섭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완벽하진 않아도 나쁘지 않은 새해를 보내고 싶었던 나는 고여있는 감정들을 외면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쳐진 소리로 “어떻게… 괜찮을 거야.”하고 건네는 위로가 “저런… 버둥거리더니 너도 별 거 없구나.”라고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분명 나 스스로 할퀴는 상처였다. 누구도 내게 진심이 아닌 적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곱게 받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중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힘들었겠다. 고생이 많아요.”


나보다 더 한 사람도 많은데 뭘. 힘든 사람들 쭉 나열하면 나는 거기 끼지도 못할걸? 사실 다 약한 소리야. 흔한 자기 정당화.


“고생이 많아요. 너한테 말해주는 거야. 다른 사람도 힘들겠지만 나는 너를 칭찬하는 거야.”


전화도 아니고 카톡으로, 단 몇 자의 글로. 예상치 못하게 들어온 위로에 그만 코 끝이 찡해졌다. 어긋나 버린 기대와 우르르 무너져가던 자신감은 그렇게 외면하던 다른 이의 ‘위로’로 제 자리를 찾았다.


결국 위로는 위로가 된다.



instagram: 른다 ren_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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