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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희 Feb 06. 2022

내가 음악을 포기한 이유

우리 집이 망하는  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아빠의 과실이 1% 없는 사고였다. 음주운전 트럭이 아빠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  .


이제는 하도 많이 들어서 내가 그 상황에 있던 것처럼 눈에 그려진다. 아직도 그 사고 장소를

지날 때면 ‘그때 이렇게 됐었겠지…’ 하는 생각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질끈 눈을 감아버린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지울 수가 없지만 말이다.

술이 문제다. 그 가해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겨우 운전면허 취소라는 형을 받았다. 겨우.

이제 10년도 지났으니 다시 운전면허를 취득해 또 술 먹고 트럭을 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린 겨우 몇천의 합의금을 받는 것으로 사건은 끝이 났다.

그렇게 부모님은 10년 동안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던 피자가게를 강제로 접어야 했다.

수입이 완전히 끊긴 채로, 친척들, 할아버지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아 몇 년을 살았다. 부모님의 주 거주처는 병원이었고, 나와 동생은 단 둘이 집에 있거나, 친구 집에서 숙박을 하거나, 친척들이 가끔 방문해 살펴주는 정도로 그 몇 년을 보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는 학교에 걸어서 15분이면   있는 아파트에 7년을 살았다. 그러다가 아빠의 사고 이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새로운 사업을 위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중학교 전학은 절대   없다고 울며 매달린 끝에 다행히 전학은 면했지만, 시내버스로 환승해가며 1시간30분 넘는 거리를 통학하게 되었다.

버스 좌석에 앉아있는  손에는 항상 작은 공책과 펜이 쥐어져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흥얼거리며 떠오르는 가사를 적는  취미였다. 한창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많은 노래를 김이나 작사가님이 작사하셨다는 것을 알게  후로는 결국 작사가라는 직업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희망 진로를 적어 낼 때도 작사가를 적었고, 특기는 노래, 취미는 작사라고 적었다.


수업시간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걸 녹여 시로 지어 냈고, 살을 붙여 하나의 노래처럼 만들어냈다. 작사 작곡은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악기들을 배워온 덕분에 악보도 볼 줄 알았고, 남들보다 음악적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독학으로 음악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졌다.


“엄마 나 작사 작곡 배워보고 싶어서 네이버 카페 같은 거 가입해서 차근차근 알아보려고 하는데 어떠려나?”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을  흔쾌히 좋은 의견이라고 해주셨다. 작사공모전에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응모도 해보며 꿈을 키웠다.

학교 동아리도 3 동안 오케스트라부에서 바이올린을 하며 음악인으로 살았다. 그러며 바이올린으로, 플루트로, 국악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친구들의 영향으로 나도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싶어졌다.


부모님께 이제는 정말 진정한 음악인이 되고 싶어, 작사 작곡을 배워 예술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엄마가 살면서 처음으로 “안돼라는 말을 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엄청난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롤모델인 김이나 작사가님처럼 대성한 삶을  준비를 마쳤는데, 안된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음악으로 벌어먹고 사는  얼마나 어려운데라고 하셨지만  귀에 해석되어 들린 말은 ‘내가 음악을 하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비용을 감당할  없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야기로 들렸다.


그날 한참을 울었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음악을 할 수 없고, 원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싫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혹 타고난 음악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썩히는 걸까 봐, 내가 엄청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면 어떻게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나에게 그동안 수많은 악기들을 배우게 해 주며 음악과 친숙하게 해 줬던 것부터, 주변에 음악 하는 친척들이 있는 것부터, 예고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 하고 싶다고 두 번 이상 말하지는 못했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친 몸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하신 아버지와 그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엄마를 볼 때면 눈물이 핑 돌아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결국 예술고등학교 진학과 음악은 그렇게 가슴 한편에 고이 접어두고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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