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짐승을 너무 많이 키웁니다. 개나 고양이 그만 키우고 사람이나 길러야 합니다.”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저출산 이야기를 하다가 분개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웃고 치웠지만, 정말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인구의 증가가 저출산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말기준 국내 반려가구는 총 604만, 총 반려인은 약 1,45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전체 가구의 약 30%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며 치러야 할 막대한 비용과 감내해야 할 고통까지 생각한다면, 맹목적으로 주인에게 충성하는 반려견이나 키우며 사는 인생이 차라리 복장 편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2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인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3명이던 우리나라 출산율이 불과 8년만인 2020년 0.837명으로 급락했습니다. 2022년 출산율 은 0.77명입니다. 191개국 중 191위로 꼴등입니다. 참고로 190위가 출산률 1.19명입니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 1.59%, 유럽 평균 1.54명, 하다못해 저출산고령화로 경제가 망하고 있다는 일본 출산율(1.33명)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학교에는 학생이 모자라고, 군대에선 병력자원이 모자랍니다. 늘어나는 건 복지에 기대 살아가는 고령층뿐입니다. 불과 7년 전인 2018년 국민연금 재정계산 때 2030년 합계출산율을 1.3명으로 예상한 것도 엉터리가 됐습니다. 순전히 경제적 관점, 안보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히 두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출산 현상은,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물질적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자유가 신장(伸張)되면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실제로 지난 2세기 동안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1인당 GDP와 임금이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하락했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고소득자의 출산율이 더 낮습니다. 가족 중심의 사회가 철저하게 개인 중심으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는 이상 돈을 아무리 많이 쏟아붓고 시스템을 개선해도 저출산 흐름을 되돌리기엔 사실상 역부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본부터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지나치게 오래도록 돌보고(요즘은 30~40대가 되도록), 그럼에도 그 자식들로부터 노후 돌봄을 기대할 수 없는 비대칭적 생존구조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인도에는 마하트마 간디를 계승한 성자(聖者) 비노바 바베(1895-1982)가 있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도 많은데, 유독 한 가지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총량결정론(總量決定論)’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모든 것들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따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도하게 많이 먹고 마시면 그만큼 일찍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별인 이 지구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1년10월31일, 지구촌 70억번 째 아기가 탄생했습니다. 세계인구 10억 명을 돌파한 것이 불과 200여 년 전인 1804년입니다. 유엔(UN)이 ‘세계인구의 날(World Population Day)’을 맞아 지난 2022년 7월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해 11월15일부터 지구에는 80억 명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세기말에는 100억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는 우주를 떠다니는 독립된 존재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번 올라타면 죽을 때까지 다른 버스로 옮겨 탈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원은 유한(有限)합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다른 별로부터 무엇인가를 가져와 지구인이 연명(延命)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게다가 생명 유지에 필요한 공기와 물은 예기치 못한 환경적 변화에 의해 한순간 오염되거나 고갈(枯渴)될 수도 있습니다. 비록 멜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종말적 인구론은 다행스럽게도 빗나갔지만, 과학적 진보와 기술혁신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한계 상황은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은 갈수록 길어질 것입니다. 게다가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지극히 反환경적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원과, 소비되는 오염물질의 총량이 지구상 그 어떤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끔찍합니다. 여기다 반려견, 반려묘를 씻기는 데 소모되는 물과 세제 등은 또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늘 우리만 생각합니다. 지금의 세대, 그리고 내가 속한 땅과 국가의 경계 안에서만 오늘을 살핍니다. 100명이 타면 딱 좋은 생명선 1대만 있는데, 200명, 300명이 몰려들면 나머지는 거기에 오를 수 없습니다. ‘지구적 관점에서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을 두려워하기 이전에 지구인의 장수(長壽)를 걱정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소멸을 두려워하기 이전에 지구의 멸망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지구인의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저출산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즐깁시다. 인간 수명의 증가는 오히려 ‘저출산을 통해 균형을 맞추라’는 ‘지구적 명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출산만이, 고령화된 인간이 더 활기차게 생산적으로 일하며 더 건강한 노년을 살아가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神의 메시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평균 50대에 직장을 나와 70대가 되도록 20년 이상이나 노동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모순입니다. 복지에만 치우친 고령화 정책을, 고령자도 일하는 정책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지출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이는 구조만 만든다면 저출산은 오히려 우리가 반겨야 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저출산을 지구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수명이 늘어난 노년 세대와, 줄어든 숫자의 젊은 세대가 어떻게 슬기롭게 공존할지를 모색하는 일에 국가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지구인의 자세라는 생각을 새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