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강요되는 ‘존재감(存在感)’

by 권태윤

“싸우지 않는 자 뱃지를 떼라!”


지난 7월23일, 국민의힘 장동혁의원이 당대표 출마선언에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걱정과 우려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보수당의 어두운 과거가 새삼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前의원’. 그는 국회의원 임기 내내 文 前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공격에 ‘몰빵’했습니다. 말이 좋아 공격이지 거의 스토킹 수준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사실상 지역구 조직관리에는 손을 놓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그는 재선의원을 허용하지 않던 대구 중·남구에서 쉽게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文전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한 줄기찬 공격으로 언론노출 빈도를 높이며 TK(대구·경북)지역 언론과 유권자들로부터 소위 ‘존재감’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는 대부분 그 평가가 부정적입니다. 자신들이 사실상 정치 충원의 주체라는 시건방진 착각에 빠진 지역 언론, 입법부의 참된 기능과 역할에 무지한 후진적 정치문화가 합작한 괴이한 풍경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당 대표까지 지냈으면서도, 험지는커녕 ‘따뜻한’ 대구에 들어와 국회의원을 하다, 불과 2년 만에 그만두고 대구시장 자리를 차지한 홍준표 시장. 그가 쏟아내는 일련의 말과 글은 참으로 거침없었습니다. 몸은 비록 시장실에 있지만, 눈과 귀는 온통 여의도 정치판에 가 있는 듯 했습니다. 그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TK 의원들에게 소위 ‘존재감’이 미미하다며 “재선이상 TK 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 모두 물갈이해야 한다.”고 공격했었습니다. TK 지역 국회의원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였겠지만, 발언들이 지나치게 독선적이며 거칠고 오만(傲慢)했습니다.


과거에도 유독 TK 언론은 지역 정치인들에 대해 “존재감 없다”는 비난을 밥 먹듯 퍼부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존재감’이란 과연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좀 나서서 설치고 다니면서 전국적으로 이름도 알리고 중요한(?) 역할도 하란 의미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지금껏 우리 정치판에서 소위 ‘존재감’이 있다고 평가받은 정치인이 누구인가요. 그들 가운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고 옳은 일을 뚜렷하게 해낸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가요. 자신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존재감’을 드높인 정치인이 있기나 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소위 ‘존재감’ 있다는 정치인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고작 저급한 선동과 막말, 집단의 이익을 앞세운 수준 낮은 정치 또는 자기 잇속이나 챙기는 탐욕적 행위 외에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 ‘존재감’ 있는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가요. ‘존재감’ 있다고 TK 지역 언론이 추켜세우던 곽상도 전의원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故노태우, 박근혜, 이명박 前대통령은 물론이고, 故김윤환, 강재섭, 최경환, 이상득 前의원 등이 지역발전을 위해 무슨 공헌을 얼마나 했다는 것인지 자문자답해 볼 때입니다.


‘존재감’은 어느 일방의 주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고, 중요한 당직을 맡고, 높은 관직을 맡고, 사안마다 목청을 돋워 싸운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TK 언론들이 주장하는 ‘존재감’ 있는 정치인 하면, 막말과 수준 낮은 언동으로 말썽을 피워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저급한 정치꾼들이 대부분 아니었던가요? 도대체 22대 총선(2024년 4월10일)이 1년도 더 남은 정초(正初)부터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사실상 비난의 소재로 삼는 지역언론이 전국 어디에 또 있기나 한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건 거의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 낙인을 찍는 정치적 테러 행위에 가깝습니다.


세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들로 인해 유지됩니다. 우리 정치라고 무엇이 다를 것인가요. 어느 조직에서건 우두머리, 튀는 사람들로만 유지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의무(국정 감시, 법률 제・개정, 결산과 예산안 심사, 국민고통 해소 등)를 성실히 수행하는 정치인, 그런 정치인들이야말로 ‘존재감’ 있는 정치인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존재감’ 있는 정치인은 법(法), 글(文), 말(舌) 을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법문 하나하나가 시퍼런 칼날과 같아서 잘 만들면 만백성을 살리는 이기(利器)가 되지만, 자칫 잘못 만들면 만백성을 해하는 흉기(凶器)가 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글 한 줄 한 줄이 묵직한 철퇴와 같아서 잘 쓰면 무도한 적을 벌하는 무기(武器)가 되지만, 자칫 잘못 쓰면 죄 없는 이를 죽이는 흉기(凶器)가 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서운 독과 같아서 잘 놀리면 사람을 살리는 약(藥)이 되지만, 자칫 잘못 놀리면 사람을 죽이는 맹독(猛毒)이 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실속 없이 이리저리 나서며 이름과 얼굴만 많이 알리는 정치인을 ‘존재감 있다’고 본다면, 후진적인 정치문화의 포로 상태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 밖에 안됩니다. 이런 착각과 오만을 깨부숴야만 비로소 우리 정치에 미래가 있다고 한다면 지나칠까요?


정치는 상대와 씨우는 능력이나 재주가 아니라, 상대까지도 내편으로 만들 줄 아는 노련함에서 더욱 성숙되고 발전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싸움'은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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