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처벌에 치중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

by 권태윤

지난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김용균씨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2021년 1월27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개인사업자나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2024년부터 적용됐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형사처벌 대타용’ 임원을 구한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으나, 그 생명은 사후처벌이 아니라 사전예방을 통해 지켜집니다. 처벌만 앞세우는 법은, 그 자체로 이미 흉기입니다. 세상에 어느 기업주가 근로자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어느 기업주가 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방치할까요.


진(秦)나라 효공(孝公) 때의 상앙(商鞅)은 강력한 인민통치법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왕자들에게 본보기로 형벌을 주고, 얼굴에 먹물을 새겨 넣는 악독한 처벌을 했습니다. 백성들은 이러한 처벌을 두려워해 상앙이 만든 법을 따르고 어긴 자를 고발했지만, 원성은 자자했습니다. 효공이 죽자, 아들 혜왕(惠王)에 의해 상앙은 모반자로 몰려 결국 거열형(車裂刑)을 당해 죽었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까지 잘라낸 기요틴(guillotine)은, 훗날 아돌프 히틀러가 자신의 정적 2만여 명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만들어진 법의 효과에 대한 검증도 없는 상태에서, 더 가중된 형량을 부과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한 것은, 정상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무지막지한 일을 우리 국회가 한 것입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가 지켜야 하는 의무 조항만도 무려 1,222개라고 합니다. 형법도 과실범과 고의범에 차이를 두고 형량을 차별하는데, 과실범에게 형법상 고의범 보다 과중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을 과연 이성적 법안으로 볼 수 있을까요. 만약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지켜야 할 의무 조항만 1,222개라면, 국회의원 하겠다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우리 산업안전분야는 전문행정 조직과 인력, 예방정책, 사회적 의식, 기술과 산업 수준 등 전반적으로 선진국보다 수준이 상당히 뒤처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기업에 대한 처벌만 영국제도를 차용(借用)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게다가 영국은 <산업안전보건청>이 따로 있고,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감독관과 전문관이 2천여 명 이상 근무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도 대표이사 등 경영진 개인에 대한 처벌은 없고, 도급인과 수급인의 사고발생 책임의 공동부담도 없으며,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기업의 안전규정 미준수 외에도, 근로자 개인의 부주의, 비용 감축과 공기의 압박, 산업현장의 안전문화 수준, 산재예방 조직의 전문성, 취약한 안전인프라, 정부의 제도 등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되고 있으며,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불가항력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는, 이렇게 대부분의 사고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음에도, 모든 책임을 사업자에게만 지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진적인 안전관리를 하고 있는 EU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재원 부족, 안전보건 역량 및 기술 부족, 그리고 안전보건 관련 정부의 가이드라인 부족에 있다고 보고, 제재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법체계, 관리 감독, 도급규제, 예방조직, 감독 인력, 사고조사, 안전인프라 등 전분야에 걸쳐 사전예방 중심으로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오로지 사전예방을 통해 지켜지며, 그 최전선에는 흉포한 법이 아닌, 선진화된 사전예방시스템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도(正道)를 가지 않고, 헌법과 형법의 기본원칙을 위반하고, 이중처벌 구조와 법체계상 형평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불명확한 의무와 과도한 법정형을 부과하는 법을 만든 건 문명국가로서 수치스런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재개정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새로운 ‘괴물’이 산업현장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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