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沐浴)

by 권태윤

‘沐浴’이란 단어는 참 묘합니다. ‘목(沐)’자는 ‘머리감을 목’자입니다. 몸을 씻더라도 머리를 감지 않으면 온전한 沐浴이 아닌 셈입니다. 머리카락을 목숨처럼 중시했던 조선선비들의 유교적 유산이 반영된 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해봅니다.


어릴 적엔 잘 씻지 않던 아이들 머릿속엔 너도나도 ‘이(sucking lice)’가 있었습니다. 살이 촘촘한 참빗으로 머릴 빗으면 잘 여문 이가 여문 참깨처럼 바닥에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나마 여름철에는 들로 산으로 헤매고 다니며 수시로 개울물에 몸을 담근 덕분에 이도 적었습니다.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발가벗고 빗속을 뛰어다니거나, 처마 끝에 서서 정수리에 빗물폭탄을 맞는 재미도 쏠쏠했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철 목욕은 거의 연례행사(年例行事)였습니다. 아주 가끔씩 어머니가 가마솥 가득 물을 끓여 고무통에 부어 놓으면 올망졸망한 형제들이 줄줄이 그 통에 들어가 때를 밀었습니다. 말이 때를 민 것이지 실상은 그냥 때를 잔뜩 불리다 마는 수준이었지요. 하지만 목욕탕이 별도로 있을 리 없던 그 시절엔 추운 날씨 탓에 자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1986년의 강원도 양구 2사단에서도 그랬습니다. 훈련병 때의 목욕이란 것이 참으로 기묘했습니다. 수십 명을 발가벗겨 한 줄로 주욱 세운다음 한번 물을 좍 뿌립니다. 그럼 그 젖은 몸에 대충 비누를 발라 얼렁뚱땅 문지릅니다. 그리곤 다시 일렬로 물을 뿌리면 목욕 끝이었습니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3분정도. 몸 구석구석엔 비눗물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말이 좋아 목욕이지 여름철에 오이 씻어먹는 과정만도 못했습니다. 밤마다 그 찝찝한 기분으로 잠을 설쳤습니다. 조개탄(조개 모양 석탄)을 때는 러시아풍 난로인 페치카(pechka)로 물을 데우던 곳이었으니 오죽했을까요.


일찍 돌아가신 탓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벗은 등을 본 적도 아버지의 등을 한 번도 밀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의 몸을 씻겨준 기억도 전혀 없습니다. 사실 그런 무심함이 당시엔 우리 집만의 유독 특별한 사례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마을에서 아버지들은 자식과 살가운 정을 나눌 줄 몰랐습니다. 그 때문에 결혼하면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 다니겠단 생각을 늘 했었습니다. 아들 둘을 낳자 함께 목욕탕에 갈 수 있다는 기쁨이 참으로 컸습니다. 아들 가진 아버지들이 갖는 보통의 마음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걷고 뛸 정도로 자랐을 때 자주 목욕탕에 갔습니다. 탕 속에서 물장난이나 치며 노는 녀석들을 하나씩 데려다 때를 밀면 ‘아야, 아야’ 소리를 지르면서도 깔깔거리며 좋아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서부터는 두 녀석 모두를 목욕시키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그런 기쁨은 이어졌습니다. 등을 밀다 때가 나오면 ‘인간 지우개’라고 놀리며 그 ‘지우개똥’이 더 이상 안 나올 때 까지 아이들 등을 밀어주는 순간들이 좋았습니다. 목욕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중국집에 들러 함께 짜장면을 먹던 재미는 또 얼마나 달콤했던가요.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죽순(竹筍)이 자라듯 어느덧 쑥쑥 커서 코밑에 잔털이 돋은 녀석들은 아비와 목욕탕 가기를 꺼렸습니다. 겨우겨우 꼬드겨 데려가도 이젠 내가 힘에 부쳤습니다. 하지만 따라와 준 그 마음이 고마워 공들여 아들들의 등을 밀었습니다. 물론 뿌듯한 순간도 왔었습니다. 아이들이 나의 등을 밀어줄 수 있을 만큼 성큼 자란 것입니다. 아들들의 손목에도 제법 힘이 생겨 아비의 등을 잘도 밀었습니다. 그럴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자꾸 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등 뒤에서 아비의 눈물을 절대로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늙어 쪼그라든 아비의 등을 미는 나이든 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 부러웠습니다. 아비의 등을 보지도, 밀어드리지도 못한 아들은 한스러움과 죄스러움에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父子가 목욕을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때를 미는 행위가 아니라, 아비의 깊은 정(情)과 사랑을 나누는 어떤 의식(儀式) 같은 것입니다. 어느덧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란 아이들은 아비와 목욕탕 가기를 꺼려하지만, 그들도 더 자라면 늙고 초라한 아비의 작고 굽은 등을 밀며 울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떨어진 나뭇잎을 애잔하게 바라보는 나뭇가지의 보이지 않는 흐느낌처럼. 아비의 등을 미는 순간도 다 때(時)가 있는 법이니 한스러워 하며 울 일을 만들지 말 일입니다.

다운로드.jpe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