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종이 자연에서 멸종하듯, 시대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도 종속할 수 없습니다. 일본 비난에 동조하면 무조건 옳다고 믿거나,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정치지도자나 국가의 성공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고 시대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 행동을 하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5개월이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입니다. GPF 군사력 정보 사이트를 보면, 세계 6위와 8위를 왔다갔다 합니다. 2027년이면 세계 3위가 된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국방비 예산도 우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무시하지 못하듯 일본도 적대시하면 안 됩니다. 외교는 국가이익이 우선이지 국민감정의 배설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치지도자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국가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국민을 유도해야 합니다.
지난 2023년3월,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배상문제 해법을 발표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더불어민주당은 ‘이게 웬 떡이냐?’며 기다렸다는 듯 비난에 열을 올렸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표는 ‘삼전도의 굴욕’, ‘계묘늑약(癸卯勒約)’, ‘친일 매국정권’이라며 비난했습니다. 당시 박홍근 원내대표도 “출연금을 내는 기업은 친일기업으로 낙인찍힐 것”이라고 대놓고 협박했습니다. 반일팔이로 재미를 본 문재인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죽창가’와 ‘토착왜구’ 타령을 재탕이었습니다. 정의당도 가세했습니다. 당시 이정미 대표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제의 식민지배는 합법적 통치의 일환이었다는 일본정부의 주장을 인정했다.”며 비방했습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야당이 보여준 모습은 크게 다섯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 스스로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과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김대중, 노무현 前대통령의 결단과 주장을 그들 스스로 부정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자기부정은 정당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환멸감만 고조시킵니다. 셋째, 상대를 가려서 기회주의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입니다. 정작 국가안보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할 일본, 미국에 대해서는 반감, 적대감을 드러내면서도, 정작 6.25전쟁을 통해 국민을 도륙하고 국토를 유린(蹂躪)한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늘 굴종적 자세로 일관합이다. 넷째, 국제정세나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 날로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중국을 지척에 두고, 자유 진영의 한 축인 일본을 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멍청하고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다섯째, 국제관계를 여전히 부락(部落)시대의 관계로 바라본다는 점이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논리로 은원(恩怨)관계에 몰입하는 것은, 닫힌사회에서나 통할 법한 근본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입니다.
19세기에 수상을 9년, 외상(外相)을 16년간 지낸 영국의 파머스턴(H. J. Temple Palmerston)은 “영원한 동맹국도 영원한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국익뿐”이라고 했습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것은 이미 고전적 상식입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도 “아무리 거북한 상대라도 꿀 같은 말로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자존심이 나라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일본도 힘이 셀 때는 러시아, 청나라(중국)와 같은 대국과도 전쟁했고 짓밟았습니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과도 달라붙어 진주만을 공습했던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렇지만 힘이 빠진 요즘은 어떤가요. 납작 엎드려 미국과 둘도 없는 우방이 되었고 필요한 안보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역사 인식 자체가 의미없다고 봅니다. 이승에서 개판으로 살아도 죽으면 부처가 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죄의식이나 사죄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역사는 오로지 승자의 기록’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백날 사과를 요구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서부개척사도 사실상 원주민인 인디언에 대한 학살사(虐殺史)였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을 당시 인디언 인구는 대략 3천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인구의 80%가 질병과 총칼로 죽었고, 1776년7월4일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미국 건국일 이후 1880년대에는 원주민 인구가 4만 명 정도로 감소했습니다. 10년 뒤인 1870년에는 다시 2만5천 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수용됐습니다. 그렇다고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현재의 미국 백인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돌려달라거나, 돈으로 배상해달라거나, 사죄하란 얘기를 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화 했을 때도 필리핀 인구의 1/6 이상을 죽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 필리핀이 4개의 미군기지를 허가하는 합의를 체결했습니다. 미국에서 볼 때 일본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우리 모습은, 美 대륙을 인디언에게 되돌려주거나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인디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저자 E. 사이드(Ssid)는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한 자이고, 어디든 고향으로 생각할 수 있으면 상당히 성숙한 자이다. 세계를 고향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완벽한 인간이다.” 라고 했습니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우물 안 개구리식 인식을 버리고 대승적 차원에서 멀리, 크게 봐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광복절 80주년에 또다시 이상한 이벤트를 벌이며 회복된 한일관계를 망치는 정략적 선동은 결코 없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