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복권된 조국 前장관 가족의 '된장죽' 사진이 유독 생각납니다. 4인가족 한끼 50만원의 식대가 많고 적음을 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과 염치를 생각합니다. 한때 그기 한 여러 해명 중에 별로 밝지 않은 나의 귀에도 유독 잘 들리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주변을 꼼꼼히 돌아보지 않고 직진만 해오다가 이번 기회에 전체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사냥개가 생각났습니다. 사냥개는 눈 양쪽 가장지리 부근을 가립니다. 오직 목표물을 향해서만 달려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주변을 꼼꼼히 돌아보지 않고 직진만 해왔을까요?
그게 ‘권력’이었음을 이젠 누구나 알게 됐습니다.
이미 권력의 사냥개 노릇을 하는 자나, 앞으로 권력의 사냥개가 되려고 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주변을 꼼꼼히 돌아보지 않고 직진만 합니다. 사냥개에겐 法이 중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수년전에 함께 일했던 당시 26살 인턴직원이 썼던 자기소개의 한 부분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많은 기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공부도 잘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연세대에 입학했습니다. 학과 대표로 뽑혔습니다. 연합조직의 회장도 맡았습니다.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꿈을 이루고 싶어 국회로 왔을 때, 주변에서는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냈습니다. 장녀의 어깨에 주어진 책임이 무거웠습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했습니다. 어머니께 밥 사먹을 돈이 없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7년을 살았습니다. 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버스비 내고, 관리비 내고, 밥값 내고, 동생 손에 용돈을 쥐어주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습니다. 빛나는 순간도 있고, 처연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좁은 방에 들어와 큰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같이 “힘들어 죽겠다”는 우리 사회에 여유와 관용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꿈이었습니다. 문짝만큼 작은 천장을 보며, 어떤 구조와 제도를 구축해야 하는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꿈은 쉽게 지나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회에 왔습니다. 아직은 다소 막연하지만, 이곳에서 매일 꿈을 현실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어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은 결혼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 남편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그녀의 가난하던 삶과 별빛처럼 빛나던 정신을 응원합니다.